가족간 친밀해지는 노하우

동트는 아침이면 로즈마리와 다육이를 발코니 모서리에 모셔다 놓는다.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 볕이 드는 자리다. 로즈마리는 향이 참 좋다. 차로 마시면 혀 안에 머무는 담백함도 좋지만 마음의 안정도 돕는다. 로즈마리 화분을 식탁에 놓아두고 그 옆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면 좋은 냄새가 솔솔 나서 기분이 산뜻해진다. 손으로 훑으면 향이 피어나면서 손끝에도 머문다. 이렇게 좋은 향을 주니 참 사랑스러워서 잘 컸으면 하고 바랐다. 물은 조금씩만 주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어느 날 발코니 밖 신록이 짙어진 것과 대조적으로 로즈마리의 잎이 퇴색한 것을 발견했다. 물이 너무 모자랐는가 싶어 양동이에 물을 붓고 담가놓으니 화분이 묵직해지고 위의 흙까지 촉촉해 졌지만 잎의 생기는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향기는 여전히 풀풀 나는데 말이다. 하루에 꼬박꼬박 7시간 이상 직사광선을 쐬주었지만 이 아이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염려가 되긴 했었다. 며칠 후 집안에 있는 치자나무가 알려줬다. “그 아이는 죽었어요.” 살았다면 치자잎처럼 연두빛 작은 새끼를 키워낼법 했기에 “아무래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낮동안 발코니에 내어 놓는다. 향기가 여전히 좋기도 하고, 미안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혹시나 살아날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집엔 목이 마르면 눈에 띄게 생기가 없어지는 치자나무부터 목이 마른지 해가 그리운지 아니면 너무 따가운지 표현을 안 하는 로즈마리까지 몇 종류의 화분이 있다. 어떤 녀석은 베란다에 내놨다가 그늘이 걷히고 양지가 되자 잎새 끝이 타들어가서 깜짝 놀라 얼른 안으로 들여놨다. 어떤 녀석은 그늘에서 바람을 쐬주자 신바람이 났고 어떤 녀석은 처음엔 꼿꼿했는데 꽃대가 자꾸 쳐지기에 바람도 맞히고 영양제도 주지만 조금 나아졌다 금방 시들대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 재간으로는 처음처럼 생생하게 되돌리지 못해서 그 녀석만 보면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조금 목이 마르다고 축 늘어져 엄살을 피우는 녀석이 이쁘다. 마음으로 끙끙대지 않고 바로바로 알려주니 염려를 안 해도 되고 물만 주면 다시 탱탱해져서 생의 환희를 내뿜는 생명력이 놀랍고 기특하다.

우리집엔 화분들처럼 내가 돌봐야 하는 세 사람이 있다. 딸 둘과 남편 하나. 같은 식물이지만 종류가 다른 화분처럼 세 사람은 닮은 듯 사뭇 다르다.

질문을 하면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큰 딸, 그래서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려면 스무고개는 넘어야 하는 큰 딸. 엄마 말에 네,라고 대답하면서 제가 하고픈 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큰 딸.

제 마음속 생각을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며 모조리 쏟아 놓는 작은 딸, 그래서 제 고민을 엄마도 고민하게 만드는 작은 딸.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를 말하는 확실한 성격은 좋은데 아직 성숙되지 않은 의견을 신봉할 때는 논쟁을 벌여야 해서 내 에너지지수를 급감하게 하는 작은 딸.

평상시엔 자상하고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는가 싶지만 토라지면 억지를 마다 앉는 남편. 나이에 비례해 성숙함이 자라지 않아서 때론 아들처럼 돌봐야 하는 피터팬. 그 어떤 단점도 내게 잘 해주는 한 가지로 덮어왔지만 귀차니즘은 성하고 말귀는 어두워져 자꾸 한숨을 쉬게 만드는 남편.

그래서 각각의 화분처럼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하지만 인간에겐 ‘말’이라는 수단이 있어서 다행이다.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해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니 식물보다 소통하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말은 통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분명 언어라는 수단을 이용해 생각을 나누는데도 서로 간에 벽이 쌓인다. 말하면 할수록 벽이 높아져 식물과의 대화가 더 수월하다고 느껴진다.

결국 말은 수단에 불과한 기제다. 생각과 의사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다. 말은 잘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말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얻는 관건은 ‘원활한 교류’에 있다.

같은 가족이라도 마음속 이야기를 잘 나누는 관계가 더 긴밀해진다. 로즈마리처럼 말의 기능을 잘 활용하지 않는 큰 딸은 그래서 대화를 하려면 스무고개를 넘어야 하니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한 발짝 물러나 말보다 마음으로 무엇이 더 필요한지 세심히 신경을 써야한다. 한 퀘에 줄줄이 쏟아 놓고 내 생각을 묻기도 많이 하는 작은 딸은 언니와 정 반대다. 치자나무처럼 물 좀 주세요, 햇볕이 그리워요, 시끄럽게 울어대는 언어가 깊고 양이 과다해서 어떨 땐 버겁지만 확실히 벽도 없고 믿음이 생기며 상호 긴밀한 느낌을 가진다. 성격이 다른 남편과도 그럭저럭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건 대화를 나눠온 시간 때문인 것 같다.

누구와의 대화도 마찬가지이나 가족간 친밀을 위해 대화는 참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