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속살

소설가 전경린 씨는 과거 네팔을 여행하는 동안,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속살이 물어뜯기는 고통을 느끼곤 했나봐요. 그의 여행기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를 읽다가 알게 된 사연이에요. 그녀의 속살은 아마도 열 달 동안 품고 있다가 세상밖으로 꺼낸 두 아이의 집, 자궁일지도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글속에 언뜻언뜻 비쳐진 바로는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가정에 안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작품활동에 빠져 살면서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 돌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심한 자책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전경린 씨는 네팔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께 명상법을 배우고자 부탁드려요. 제대로 명상을 하면 혹 아픔이 치유되지 않을까… 속살을 물어뜯기는 느낌, 그것은 그녀의 표현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한두번의 극심한 고통, 혹은 질기게 달고 살아 무뎌졌지만 실은 무디지 않은 통증이겠지요. 죽음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만한 고통은 사실은 마음으로부터 오므로 그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 중엔 명상이 있다는 깨달음을 다음 글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전경린-

…

아침 8시에 스님 방을 찾아가 바닥에 담요를 깔고 마주앉았다. 동쪽 벽에 긴 창이 나 있어 방 안에 햇살이 가득했다. 간단히 나를 소개하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스님의 달처럼 둥실 뜬 검고 커다란 동공이 나를 향한 채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이마 위가 뜨겁고 아득해지더니 누가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수증기를 불어내듯 눈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난처해라, 이걸 어쩌나 싶은데 눈물 콧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그렇게 햇살이 쏟아지는 환한 방에서 젊지도 않은 여자가 닦을 손수건도 없이 울고앉아 있자니,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눈물이 수습되자 스님이 물으셨다.

“무엇이 제일 아프냐?”

“앞도 뒤도 양 옆도 모두 캄캄합니다. 성냥갑 속에 갇힌 것 같습니다.”

“허, 저런…… .”

스님은 가엾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셨다.

“보살은 성냥갑에 갇힌 자신이 누군지 아시는가?”

나는 그런 류의 선문답은 싫었다. 낯이 간지러워졌다.

“나는 성냥갑에 갇힌 내가 누군지 몰라서 늘 고놈을 바라본다네.”

세상에…… 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갇힌 것이 포박의 고통이 아니라, 응시가 없음이 고통이었구나…… .

“늘 자세를 바르게 잡고 고 갇힌 놈을 가만히 보게나. 흔히 명상을 무념무상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 생각을 쫓아내느라 애를 쓰는데, 오감의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상념 없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명상이란 상념을 끝까지 바라보아서 반전시키는 것일세…… . 그래서 무념의 의도 없이 무념에 이르고, 응념의 의도 없이 응념에 이르는 것이지, 모든 허구는 바라봄 속에서 스스로 재가되는 것일세. 갇힌 자신이 타자가 될 때까지 바라보게나, 그러면 보살은 바깥에 있지 않겠나. 바깥에서 늘 안의 그를 보살펴야 하네. 그를 구하고, 자유롭게 하고, 도를 주고, 신의를 주고,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돌보아야 하네.”

“스님, 자기가 저지른 잘못들, 혼자 알고 있는 죄책감이 속살을 물어 뜯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은 이야기지. 신은 인간을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네. 실은 신은 선악에는 관심이 없어요. 궁극에는 도덕과 부도덕이 없어요. 선악이 있음은 규칙이며, 규칙의 경계를 넘어 삶이 꿈인 줄 아는 것이 궁극이지. 그러니 세상의 관념으로 스스로 묶은 포박을 푸시게. 다시 묻겠는데 보살은 자신을 아시는가?”

“…… .”

“소크라테스는 나는 나를 모르는 나를 안다라고 말했네. 내가 모르는 내가 한 일로 마음을 괴롭히지 말게나. 삶에서 일어나는 열렬한 감정을 샅샅이 느끼고 바라보고 그대로 즐기시게. 다 사는 일이니, 괜찮지 않은가. 자신이 지은 업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들, 생각들, 느낌과 인식들, 괴로워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하는 나를 최책감도 나무람도 없이 바라보시게…… . 응시하는 사이에 더러는 저절로 소멸되고 더러는 스스로 반전될 게야…… . 그리고 가능한 충일하게 살고 매사를 즐거운 것이 되게 돌리시게.”

스님은 나의 명상 자세를 잡아 주셨다. 됐네, 됐어…… . 아주 가볍게 등과 허리를 세워 주고 목을 고즈넉하게 숙여 주고는 다 됐다, 하셨다. 우리는 함께 거리로 나가 아침을 먹었다. 스님은 야크 치즈가 들어간 야채 샌드위치와 강한 맛의 네팔 커피를 아주 좋아하셨다.

-12화 열려라 눈꺼풀 속의 생이여, 중에서 -

저는 이 글을 읽고 과연 전경린 씨는 어떻게 밖으로 나와 안에 갖힌 자신을, 속살을 치유해 주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짐작가는 바는 없습니다. 저와는 많이 다른 세계를 살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저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지만 큰그림을 그리면 결혼 이후 줄곧 아이와 남편을 위해 살아온 생입니다. 남편에게 좋은 상황, 남편의 미래, 아이에게 나은 환경, 아이의 장래… 거기에 저를 살포시 얹어 방향을 잡고 살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이해한 후에 허용되는 범위에서 ‘나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을 다해 그들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인과 함께 있을 때, 그 순간만큼은 타인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죄책감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잘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십의 나이에 내게 쌓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스스로 만족할만한 자신의 모습이 없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가끔은 이런 자신을 바라보다가 보상의 말을 해주지 않는 가족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이건 더욱 잘못되었다는 각성이 찾아옵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는데 누구를 원망하는가. 저는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기로요. 그래요, 딸들은 컸습니다. 남편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저는 저를 돌보며 살아도 될만한 자유의 몸입니다.

내 아픈 속살인 나한테 앞으로 더 당당하게 살려고 합니다. 이 현상이 빈집증후군일지 모르지만, 전경린씨처럼 살아도, 저 김연아처럼 살아도 결국 누구에게나 아픈 속살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 어느 즈음인가에서는 이 속살도 돌보며 살 때가 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