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소독은 독 

이제 열대야는 폭염과 함께 일상이 되었다. 낮에 몸 속을 파고든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으니 잠을 설치는 건 예사요, 짜증도 불뚝불뚝, 아침마다 얼굴은 푸석푸석 이다. 더위가 쉼도 없이 못 살게 굴어서일까, 난데없이 큰아이 낳을 때 생각이 났다. 머리가 유난히 컸던 아이는 산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6시간 동안 휴지기 없는 진통을 겪었는데 그땐 정말 몸에 꽂힌 주사바늘을 다 빼버리고 출산 안하겠다고 강짜를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귓부리에 가슴 언저리까지 벌개지고, 고개를 들어 배꼽을 쳐다보는 자세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힘을 주고 또 주고,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는 의식이 나를 점령했을 때 가까스로 태어난 아기의 두상은 영화에서 본 외계인처럼 길고 뾰족했다. 사람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한계에 부딪히면 다 포기하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경험했다.

노회찬,

그가 갑자기 스스로 명을 끊었다. 고통의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산고는 아기가 태어나면 기쁨으로 승화해 죽고 싶도록 아팠던 과거를 잊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불 보듯 뻔하게 치욕이 치욕을 낳았으리라. 그가 느낀 고통의 무게는 본인만이 알테지만 그의 지인들은한결같이 스스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어떤 정치인은 나라를 풍비박산 낼 지경에 내몰았어도 꿋꿋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어떤 이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국정농단을 일삼고도 버젓이 살아가는데 사람이 얼마나 깨끗하면 그 정도 수위에서자살할만큼 타격을 받고 마음을 다치고 괴로워했을까. 어쩔 수 없이 받아 든 4천만원의 불법 정치후원금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를 못견뎌한 그의 결벽증이라 더욱 통탄스럽고 안스럽다. 돈이 있어야 선거를 치루고 정치인이 될 수 있는데, 그가 이제껏 펼친 정치 행보를 보면 그 돈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란 사실이 자명한데, 삼성과 검찰을 고발하다 의원직을 상실한 후 다시 의원이 되어야 했던 과도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4천만원은 특활비 몇 달치 모으면 되는 금액이다.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특활비를 스스로 반납한 후 특활비 없애는 법률 만들기에 앞장섰겠는가? 삼성을 대적하고 노동자를 껴안겠는가? 뇌물,이란 돈을 받고 대가를 주었을 때 성립되는 단어다. 그의 4천만원과는 거리가 먼 말이다.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미국은 현역이든 아니든 기부를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현역의원만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의원직 상실중이던 그가 받은 후원금은 불법이 되었다. 즉 지금 시스템으로 본다면 한국은 본디 돈이 있어야 의회로 입성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좋은 학원에 가고 이어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구조는 알면서 돈이 있어야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시스템에서 4천만원이그에게 절실했을 지 모른다는 사실은 이해불가인가? 단 한번이지 않았는가. 그는 국회의원이 되어 선민법을 만들고 약자를 위한 틀을마련하고 싶어했지 4천만원으로 해외여행과 부인 명품백을 사주려던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그런 섭리를 속 깊게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빈소와 영결식을 찾은 수많은 국민이 그들이다.

노회찬,

아주 싹수 있는 정치인, 나는 그를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을 이을 다음 대통령감으로 마음속에 그를 꼽아 쥐었다. 인터뷰나 토론회 때 지켜본 그는 이런 사람이란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른 말 잘 하는 걸 보면 마음이 곧은 사람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이성의 소유자 같고, 해학에 촌철살인의 명인이란 평가는 정신의 여유와 예리함을 구비했다는 증빙이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의당을 일으킨 걸 보면 인지상정에 리더십도 갖추었고, 정치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삼성을 고발한 것을 보면 배포 크게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 맞고, 국회의원 특활비를 없애는 법안에 앞장선 사실만 보아도 사리사욕이없는 사람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사실을 이 나이쯤 되니 알게 되었다.

노회찬,

그의 죽음을 나는 폭염을 피해 들어간 찜질방에서 접했다. 처음엔 믿기지 않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 속보를 전하는 TV만 뚫어져라응시했는데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몸을 던졌을까란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몹씨 아팠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할아버지들의 이런 대화가 들려왔다.

돈을 받았으니 죽었지. 쯔쯧…

그러게요. 뇌물을 먹어 지 발 저려 죽었구먼…

사실 그가 돈을 받았다는 고백이 충격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이런 일차원적인 생각을 한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앞뒤전후 사정도 모르고 그가 평생 일궈낸 행적이 있는데 그리고 대가성이 없는 돈이라는데 뇌물이라니, 그래서 지 발 저려 죽었다니… 그는 이런 대중이 무서웠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목욕탕으로 내려갔다. 곳곳에 설치된 TV에선 계속 노의원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을 받았대, 라거나 불쌍하게, 라는 말을 했다. 나는 멍하니 안마탕에 서서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물줄기를 무감각하게 맞았다. 조금 후, 출입문이 열리고 옷을 입은 여인이 종이컵과 음료병을 들고 들어왔다. 여인은 액체를 컵에 따라 탕마다 뿌리고 다녔다. 네다섯군데의 탕을 돌아 안마탕으로 왔다. 여인이 홍초병에 든 액체를 물위에 뿌렸다. 가까이 있던 내게 락스냄새가 확 끼쳐왔다. 그게 뭐냐고 묻자 소독제라는 말만 남기고 여인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탕입구에는 ‘우리 목욕탕에서는 화학약품을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나는 조용히 탕에서 나와 샤워를 했다. 락스물에 목욕하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누구는 밥 먹 듯 많이 하고 누구는 어쩔 수 없을 때 조금 한다. 누구는 뻔뻔하게 하고 누구는 조마조마해 하며 한다.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누구는 쓸데없이 더더 욕심을 부리고 누구는 꼭 필요해서 유혹을 받는다.

사람들은 깨끗한 걸 좋아한다. 그래서 목욕물에 락스를 뿌리지만 섣부른 소독은 독이 된다. 소독을 하려면 나쁜 균만 제거해야 한다. 

정녕 드루킹은 잡고 노회찬은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