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매직

지금 사는 옥탑방으로 이사 온 다음부터 내게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에 온 이후 늘상 주말이면 아파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굳이 어디를 간단 말이야? 하며 귀찮아 졌다. 이런 하루아침의 변화에는 분명 원인이 있을 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는 산 속에 지어진 발코니 너른 우리 옥탑방이 바로 휴양지 모양새고, 하나는 원하면 언제든 시골길을 달릴 수 있는 내 차가 생긴 덕이었다. 5년동안 꿋꿋하게 뚜벅이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은 웬만한 곳은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곳은 도로변에서 1.5키로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가용 없이는 생활이 불편하다. 주변엔 오롯이 산과 나무와 집들만 있어서 뭐라도 필요하면 동네밖으로 나가야 한다. 딱 미국 같은 환경이다. 무엇보다 막내 통학이 큰 문제여서 차를 한 대 렌트했다. 그러다보니 더우기 자유로운 발이 생겨서 갇혀 산다는 느낌따위는 훨훨 날아갔다. 그래서 굳이 집을 떠나 어딘가 가고 싶은 욕망이 안 생기나 보다.

우리 옥탑방은 구조상 반절도 안 좋게 좋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남향인 발코니에 면한 거실과 식탁 놓은 자리만 좋고 안방, 화장실과 부엌, 막내의 침대가 놓인 뒤편 베란다 입구는 천장이 급경사로 내려앉은데다 북향이라 좁고 춥다. 특히 옷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외투정도만 걸어 놓고 이사 올 때 싼 비닐안에서 옷을 꺼내 입는다. 원래 화장실인 곳을 쪼개 싱크대를 들여놓아 만든 부엌+화장실은 그래서 천장이 서로 통하는데 간혹 찌개를 끓일 때 누군가 큰 일을 보는 일도 발생한다. 때때로 화장실 쟁탈전도 벌어진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이 집에서 진작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이곳이 좋아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 짧은 휴가동안 잠시 머물기엔 멋진 뷰가 환상이지만 막상 생활을 하기엔 불편한 점 투성이인 우리 옥탑방이 나는 왜 그리 좋을까? 뷰가 좋아서? 뷰가 밥 먹여주나? 진짜 밥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포만감은 준다. 에~또 아랫집 주인분들이 좋아서? 그것도 그렇다. 주인 복 없는 우리한테 웬 횡재냐는 생각도 들었다. 넓은 아래층에는 직장을 은퇴하신 칠순의 두 분이 사신다. 주무시기 전에 손을 꼭 잡고 기도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또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는 멋진 분들이다. 권사님은 매끼 밥상을 차리면서 남편한테 감사의 말씀을 전하신다. 혼자 밥 먹으려면 이렇게 풍성할 수 없을텐데 당신 덕분에 잘 먹어요,라고… 장로님은 식사준비때부터 도와 설거지는 당신의 책임으로 아신단다. 그 뿐이 아니다. 두 자녀를 어려서 유학시키느라 아끼며 사셨는데 그 부담이 끝나자 몸이 불편해지기 전에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서 해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이번엔 대출받아 한 달 반 동안 유럽여행을 계획하셨다. 정말 딱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노부부상이다. 이분들의 기운까지 받아 우리 옥탑방은 한없이 평온한가 보다.

뷰가 좋고 주인분들이 좋고… 그래서 좋아?

라고 묻는다면 한가지 더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일찍이 현인들은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 하셨지, 그래서 나는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삶의 메카니즘을 진작에 받아들였는데… 하나를 얻느라 포기한 다른 하나를 확실하게 버리면 온전하게 좋은 느낌만 남는다는 사실을 이 집에서 알게 되었다. 집의 남쪽을 얻은 사실을 너무나 기뻐한 나머지 북쪽 부분의 불편함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마냥 기쁨만 남았다. 그래서 이집이 그렇게 좋은 것이다.

살면서 포커스를 어디에 두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둘다 얻지 못해서 발을 동동거리며 살지, 하나를 얻느라 하나를 버리긴 했는데 아쉬움에 자꾸 미련을 둘지, 얻은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며 온전한 기쁨을 느낄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노하우를 알면서 실천도 하는 사람이다. 행복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와준 이 집이 그래서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