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후배에게 초대를 받았는데…

남편 휴대폰이 거듭 띵띵 울렸다. 페이스 북에서 알게 된 중학교 여후배란다. 같은 주에 살게 되어서 반갑게 인사한 모양이다. 몇 마디 문자가 오간 후 집에 초대하겠다기에 그냥 형식적인 인사려니 했는데 바로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했다. 우와~ 정말 적극적이고 활달한 사람이다. 둘 사이에 아는 동문이 있어서 우연히 페북친구가 되긴 했지만 중학교시절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성인이 되서도 일면식조차 없던 후배라 남편도 어안이 벙벙했다. 같은 주라지만 2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이어서 어쩌나… 하다가 우리는 기꺼이 가기로 했다.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하룻밤 자고가라는 제안도 받았다. 아이쿠, 비명이 나왔다.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 부부인가 보다.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한 선배에게 이토록 친절을 베풀며 배려하다니… 처음엔 말 뿐이 아닌 행동에 적극적인 사람이어서 멋있고 감탄이 나왔는데 갑자기 문득 언젠가 경험했던 비슷한 기억이 떠올라 슬그머니 걱정이 올라왔다. 일명 학습효과인 셈이다.

남편 직장때문에 새로운 주로 이사 갔을 때였다. 유난히 우리를 반기고 달가워하던 분이 계셨는데 남편이 한국인 모임에 나가 알게 된 분이었다. 자녀 중에 우리 큰애와 같은 또래가 있다며 만난 당일,  늦은 시각에 아이와 함께 방문을 해도 되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각에?? 난데없었지만 아이들끼리 친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이유여서 우리는 기꺼이 환영을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은 어울려 자정무렵까지 놀았고 주말엔 당장 그 댁으로 초대가 되었다. 그 댁엔 알고보니 많이 아픈 자녀도 하나 있었다. 아파도 꾸준히 성장하며 잘 살아주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부부를 보며 참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고 너무 적극적으로 교제를 하고 싶어해서 약간 멈칫했던 마음의 벽을 누그러뜨렸다. 그분들은 다단계사업을 부업으로 하고 계셨고 그것이 아이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부모의 처지와 심정임을 이해한 때문이었다. 나는 회원으로 등록해 활동할 생각은 없지만 필요하다면 좋은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음을 확고히 했다. 그런데 그 사업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사업이라며 자꾸 회원가입을 하고 공부모임에 나오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공부? 오, 노!! 게다가 나는 이미 겪은 적이 있어서 그 사업을 한다고 하면 한발짝 물러서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부부의 아이에 대한 케어가 감동적이고 사랑이 충만한 가정 같아서 인간적인 교제를 지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결정적으로 화가 났는데, 그토록 고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멘토라는 분을 초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한 날, 게다가 우리가 전에 살던 주에 지부를 확장하기 위해 출장을 가는데 지인을 소개해달라고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냐고 했을 때, 더 이상 그분의 의도를 배제하고 인간적인 교제만 고집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과 사람간의 교제는 각자의 목적만을 고집하면 지속되기 힘들다. 사업이든, 사랑이든, 우정이든, 전투든 목적이 맞아야 연결고리가 튼튼해 진다.

나는 아직까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사귀어본 적이 없다. 그냥 인간적으로 좋으면 사귀고 그렇지 않으면 끈을 놓고 싶다. 그런 이유로 혹여라도 남편의 후배가 또다른 목적을 가지고 우리 부부를 초대한 거라면 돌아오는 2시간 반 동안 실망감에 시달리게 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반, 사람의 호의를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내 오염된 심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 찰나…

10년도 지난 그분의 눈빛이 불현듯 생각났다. 방학동안 그 댁 모녀가 한국에 갈 예정이라는 소리를 듣고 “혼자 적적하시겠네요” 라고 남편이 무심코 말을 했는데 “혼자요? 우리 **하고 같이 있는데요” 라며 침상에 누워있는 아이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그때 나는 보았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투명인간 취급한 데 대한 노여움이 깃든 눈빛… 아,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당장 정중히 사과할 것이다. 말로만 그분의 입장을 이해한다 했지 마음으로 진정어린 이해를 하지 못했음을 자각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나한테 이유가 있듯이 상대에게도 사연이 있으리... 이렇게 생각하면 혹시 목적이 같지 않은 만남이 이루어지더라도  슬프거나 노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곧 후배 부부와 만나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