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이후 내게 생긴 변화

가슴이 한가해졌다

뭐랄까…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언젠가부터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도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거나 바쁜 일상도 아닌데 항상 좇기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스트레스 만땅인 이런 증세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내게 벌어졌을 때 참말 낯설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천하태평 부류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 아니었다(안타깝게도 과거형이다~~). 아마도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붙잡고 망연자실하기 보다는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버릇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바쁘니 가슴에서 무언가를 못 느낀다. 개인적인 문제는 노력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새옹지마를 염두에 두고 살았고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엔 하나님의 뜻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불교를 믿는 분은 부처님의 뜻이 있으려니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눈 앞의 나쁜 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인생을 속 편하게 살아가는 최고의 비법이다!!

문제는 일상에서 벌어진 개인사가 아니라 나로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사회현상에 가로막힌 경우다.

한국에 간 이후 가장 심한 장벽은 대기오염이었다. 미세먼지 같은 것 무시하면 되지, 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미각과 후각이 예민한 나는 숨쉴 때마다 매케한 냄새가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으며 느끼지 못했더라도 나중에 두통이 생겼다. 대중매체에서는 허구한날 미세먼지의 해악과 심각성을 떠들어댈 뿐 아니라 외출을 삼가하라 권고하고 하늘은 잿빛에다 공기청정기를 틀어도 집 안에는 시커먼 먼지가 쌓였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대상이 달라서 누군가는 돈에, 누군가는 사람에게, 누군가는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면 나는 나쁜 공기질과 먹색 하늘에 늘 막막함을 느꼈다. 실내에 앉아 수다를 떨기보다 자연속 소풍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선명하고 푸른 하늘, 좋아하는 초록이나 연두색이 아닌 그냥 하얗기만 해도 감사한 구름을 그토록 갈망하며 살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더 몰랐던 사실은 하늘이 미세먼지에 덮이면 가슴에서 짓눌리는 느낌을 받게 될 거라는 저주였다.

미국에 오자 공기가 달랐다. 상큼했다. 청량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 아니면 하늘은 늘 파란 바탕에 하얀 무늬가 박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에서 몽글몽글 무언가 피어 올랐다. 간지러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달랑 옷가방만 들고 온 우리는 침구부터 비누나 후추까지 사느라 정신없이 분주했다. 몇 년치 쇼핑을 한꺼번에 하는 느낌이었다. 쇼핑에 능하지도 않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사고 싶어서 동분서주 하다보니 피곤이 밀려왔다. 하나를 사서 돌아오면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현상을 보며 우리의 생활이 잘 갖춰진 각종 물건들 틈새에서 편했다는 깨달음이 생겼고 그런 것들을 만들고 사용하며 사는 인류의 문명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물질과 문명에 길들여졌지만 우리는 결국 자연안에서 힐링을 얻고 위안을 받아서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은 더욱 우리 곁에서 더욱 맑고 푸르러야 하는 것이다.

한달 보름동안 필요한 물건들이 하나씩은 구비되어 이젠 제법 불편없이 생활하게 되었음을 자각했을 때 나는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 가슴이 한가해진 것이다!! 무언가에 좇기지 않고 작은 갈등이나 노여움에도 가슴이 옥죄이던 이상한 증상이 사라졌다. 공기주입을 해서 다시 탱탱해진 타이어 같달까...

이는 단지 깨끗한 공기와 매력적인 하늘 덕만은 아닐지 모른다. 나는 한국뉴스를 덜 접하며 살고 있으므로 개탄의 혀차기를 덜하고,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면 웃으며 땡큐를 말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살고 있다.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기보다 부모자식간 진정한 관계를 맺으며 행복을 기원하는 목소리를 듣고, 예전같진 않지만(메릴랜드의 분위기가 타 주와 다른 건지??) 보행자가 있으면 멀찌감치 서서 기다려주는 몇몇 운전자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며 살고 있다. 모르는 것을 물으면 그런 것도 몰라? 하는 시선도 안 받고 주말에는 강아지까지 네 식구가  자연속을 거닐며 남편과 막내는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깔깔댄다.

내 가슴이 한가해진 이유는 이 복합의 결과인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