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뉴스를 보다가 욱해서요.

언니들

메릴랜드에 봄이 왔어요. 지난주에 눈이 살짝 내려서 아직 겨울인가 했는데 며칠 전 산책길에서 로우지가 낮은 수풀림에 코를 대고 엄청 킁킁거리는 거예요. 아무래도 봄내음을 맡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봄이 왔나보다 눈치 챘지요. 동물이 어찌나 능기적거리면서 식물냄새를 음미하는지 한편으로는 신비롭고 웃겨서 혼자 킥킥댔어요. 말은 못하지만 음, 좋구먼, 어라, 향기롭네… 하면서 새봄의 냄새에 도취된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그래, 내가 이래서 너랑 함께 산다, 라고 말할 뻔 했어요. 우리 아파트에는 부엌과 욕실을 제외하고 누런 카펫이 깔려 있는데 제(로우지)만 빼고 세식구가 나가면 영락없이 카펫에 응가를 누거든요. 평시엔 욕실 배변패드에 잘 누면서요.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그러는 거여서 아주 얄미워요. 해드릴 것만 잔뜩인 주제에 뭘 그런 심술까지 부리는지… 그런데 뒤뚱대며 걷는 모습이나 꼬리를 살랑대며 애교를 부리거나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귀한 생명임을 일깨울 때 너무 신비하고 멋져서 괘씸한 마음이 싹 사라져요. 그저 이쁨만 남지요.

오늘도 봄볕이 좋아서 차를 타고 인근 공원에 와봤어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온 사람들이 제법 있네요. 미국에는 큰 개들이 많아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더 그렇겠죠? 그런데 개를 안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길에서 주인 품에 안겨 있는 개들을 자주 봤지요. 그럴 땐 이런 의문이 들어요. 저 강아지는 품에 안겨 있는 것을 행복해할까, 제 발로 졸랑졸랑 걸어다니는 것을 행복해할까? 우리 로우지는 산책이 생애 최고의 기쁨이라, 산책만 나가면 실내에서 잠을 자며 비축해 놓은 에너지를 광폭하게 발산해요. 사춘기때 큰언니가 쇼핑몰에 가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축지법을 쓰듯이 구경하고 다니는 모습을 그대로 닮았어요. 목줄이 우리 몸에 감기기 일수여서 매번 풀어야 하고, 건너편에서 사람이 오는데 제 관심사에 빠져 꿈쩍도 않으면 서둘러 우리가 로우지 쪽으로 비켜서야 하지요. 어떨 땐 걷다가 목줄 잡은 팔에 툭하고 강한 텐션이 느껴져 몸을 비틀거릴 때도 있어요. 깜짝 놀라 뒤를 보면 목줄이 팽팽해져 있고 로우지는 말뚝처럼 박혀서 냄새를 맡고 있지요. 기다리다가 하도 안 와서 목줄을 잡아당겨도 어떨 땐 놀랄만큼 강한 뚝심으로 버티고 있다니까요. 그러니 로우지는 틀림없이 걸어다니면서 온갖 냄새를 맡으며 모험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그런데 과연 품에 안겨 나들이를 해 버릇한 강아지들은 걷기보다 안기는 것을 더 좋아할까요? 강아지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우리집에서도 남편이 로우지를 아기처럼 안고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한번은 질문을 했지요. 왜 자꾸 로우지를 안아주나요? 부드럽고 따뜻해서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으나 우리는 잘 생각해 봐야 해요. 주인인 내가 강아지를 함부로 나 좋을 식으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작고 귀여운 우리 로우지를 무서워해서 피하곤 했어요. 작고 어린 아이들뿐 아니라 크고 건장한 사람들도요. 목줄을 짧게 붙들고 비켜서서 ‘안 물어요’ 하고 말해줘도 안심을 못 하고 ‘안고 계시면 안 되요?’ 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요. 한번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너무 무서워하는 여자분이 있어서 얼른 안았어요. 그 여자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내 남편의 품에 얼굴마저 파묻고 있었지요. 대단한 트라우마가 있는 분이란 생각에 다음부터 그분이 보이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어요. 그런 경우는 우리 쪽에서 많이 조심해야 할 듯 해서요.

한국에서는 개가 귀엽거나 무섭거나로 갈리는 반응이 많았다면 미국에서 개는 사랑스럽고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라는 인식이 잘 정립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도 대놓고 꺼려하는 티를 내거나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지요.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집을 지키거나 식용으로 대한 탓도 있어서 언뜻 인간우월주의에 빠진 오류를 범하곤 하지요. 내게 생명이 하나인 것처럼 개에게도 생명은 하나니까, 그리고 소와 닭처럼 식용이 일반화된 동물도 살아있을 땐 그 생명을 존중해주어야 해요. 이세상 귀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반려동물의 장례문화를 한번 들여다 보아요. 한국에서는 보통 키우던 동물이 사망하면 야산이나 뒷마당에 묻곤 했잖아요. 그런데 현행법상 이건 불법이래요. 매장면적 부족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쓰레기봉투에 담아 폐기하던가(폐기물관리법) 동물 장묘 업체를 통한 화장(동물보호법)만이 합법이라네요. 선진국에서는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일찍부터 정립돼서 프랑스는 현재 저가(공공)와 고가(사설)의 시설을 운영하고, 미국은 1896년 첫 반려동물 묘지가 만들어졌으며 장례 시설이 600곳을 넘는다네요. 한국은 현재 33곳이 있구요. (by 조선일보/안영 기자)

기자의 말대로 한국에서는 반려동물의 최후가 극과 극이네요. 쓰레기 봉투 아니면 고가의 화장. 현재 공공시설이 추진되고 있다니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돈으로 인해 더 깊은 아픔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니들,

오늘 제가 왜 우리 로우지 이야기를 했는지 아세요? 사실은 요즈음 한국뉴스를  보다가 욱해서요. 1미터짜리 물푸레나무를 나눠준 것도 모자라 지켜줘야 할 국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리고서도 끝끝내 죄가 없다며 망언을 하는 한 남자와, 다수의 이상한 남자들, 성접대, 성추행, 성매매를 일삼는 그야말로 개만도 못하게 살아가는 그들보다 봄내음을 만끽하고 사람에게 기쁨과 경이를 선사하고 외로움을 달래주고 장애에 도움을 주는 모든 반려동물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누구에게나 한 번만 주어진 생, 모두에게 귀하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