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살기 좋아요? 미국이 살기 좋아요?

짧지 않은 생의 2/3를 한국에서 살고 1/3을 미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한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 지 사람들은 궁금한가 보았다. 이 질문 참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귀국한 지 3년 반이 지난 지금도 간단하게 여기요, 라고 답할 수 없는 건 여전하다. 솔직히 이 질문은 어렵다. 입장과 처지와 성향과 가치관과 환경과 이상향 등등이 서로 내 안에서 간섭되기 때문이다. 나는 변덕쟁이처럼 어떨 때는 한국에서, 어떨 때는 미국에서 살고 싶다.

그래도 한가지 절대적인 기준을 꼽으라면 이렇게 말한다. 교육할 자녀가 있으면 미국, 자녀가 다 성장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한국도 살기 좋아요!

미국이 (한국과 비교해) 아이들에게 행복한 나라라는 말은 무근거한 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전인교육을 시키기 어렵다는 말이 핑계처럼 들렸다. 하지만 겪어보면 누구도 그 단단한 억압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아이들은 정말 빽빽하게 공부를 한다. 공부할 시간에 책을 읽고 취미생활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 위험에 빠진다. 그 위험이란 학업에서 도태되는 현실을 의미한다. 학업 이외의 재능을 따로 키우지 않는 한 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만 하는 아이들틈에서 놀기도 하면서 성적을 잘 받기란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 어찌하여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혹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는지… 그래서 난 이 땅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둘째에게 참 미안하다.

한국이 좋을지 미국이 좋을지 어른의 입장에서 조금 더 따져본다면,

자연과의 교감을 깊이 사랑하면 미국이, 인간과의 교류가 더 재미나면 한국이, 고즈넉한 사생활이 중요하면 미국이, 투철한 참여의식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엔 한국이 더 살 맛나고, 고도화된 의료기술이 필요하거나 지체가 부자유하면 미국에서 혜택을 더 받을 수 있고, 자잘한 질병이 있으면 한국이 편하다. 성형이나 피부미용이 생활에 침투되어 있으면 한국이, 친인척과 교류가 원만하지 않으면 미국이(친인척이 한국에 있는 경우), 정신적 소양보다 물질문명에 가치를 두면 한국에서 갈등 없이 살겠고, 맑은 공기와 합리적 사고와 글로벌 인맥을 추구하면 미국이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다 보면 대중교통이 편하면 한국이, 운전이 즐거우면 미국이, 영어를 못하면 한국이 영어에 자신이 있으면 미국이… 까지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니 다 접어두고 큰 그림을 그려보자. 삶에 있어서 내게 최우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따져서 그 가치에 부합한 땅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리라.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처음엔 그리운 고국의 품이라 눈물나게 반가웠고, 눈이 핑핑 돌아가게 변해버린 이 땅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갈피를 못 잡을 때는 익숙한 미국이 그리웠고, 말쓰기가 자유로워 한국이 좋았다가 1,2 년 지나보니 어찌 이리 양은냄비처럼 가볍고 깊게 우려내지 못할 그릇으로 변했는가, 개탄할 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 변해버린 당신이 야속해서 불끈불끈 붉은 한숨이 치솟았다. 한국은 무엇보다 물질만능주의가 민족정신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돈이 만사의 기준이 되었다. 소유와 존재를 갈라 이론을 정립한 에릭 프롬의 프레임에 비추면 한국인 대다수는 소유론에 해당될 것이다. 슬픈 한국이다.

미국은 합리성과 실용성(프래그머스즘)을 바탕으로 건국된 나라라 옳은 말을 하면 그것이 잘 통한다. 한국처럼 ‘자고로 옛부터 선조들은…’ 에 눌리고 쌓인 옹고집과 억지가 없다. 현명하고 우수한 지도자들이 다져놓은 제도에 국민은 순종한다. 하나로 통합되기에는 지독하게 다양한 국민이 살고 있지만 그 다양성을 기초해 근본(헌법과 법률)을 정하고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 이성적 논리가 발달해서 언뜻 차갑게 느껴지지만 존재론적 안목으로 보면 더 인간적일 수 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한국은 돈이나 외모, 보여지는 숫자 등을 중시하는 소비론적 안목이 강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가치관이 형성되지 못한 부작용이 오히려 진정한 인간미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중상층이란 개념을 보면 한국은 부채 없는30평대의 아파트, 500만원 이상의 월급, 2000cc급 이상의 자동차, 1년 1회 이상의 해외여행, 통장 잔고 1억 이상 소유해야 중산층인데 반해 미국은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고,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줄 알고,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비평지를 구독하는 자가 중산층이다. 이것만 보아도 두 나라의 차이점은 극명하게 드러나며 미국이 더 인간중심적 사고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은 (조금은 개선이 되었지만) 아직도 본질을 따지기 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체면과 겉치레가 요란하고 4,50년 전의 정치가 무늬만 바뀌어 판을 치는 사회다. 속으로는 언론이 탄압되고 정경유착이 벌어지나 그 트랙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익숙하다. 최순실게이트로 이 사회의 뻔뻔한 껍질이 갈갈이 찢겨지지 않았다면 그 속살을 순진한 국민들은 먼 훗날 역사교과서를 통해 알게 됐겠지. 오히려 이번의 격한 통증으로 개헌도 되고 정치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잣대가 달라져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새옹지마의 진리가 구현 되리라.

이런 것이 한국의 흉이라면 자랑거리는 무엇이 있을까.

정치는 후지지만 민족의 정서는 그래도 200만개의 촛불이 덥혀낸 대기처럼 곳곳에서 따스하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과 팽목항에 가는 사람들, 전국 각지 뿐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과 소녀상에 둘러진 목도리가 따스하다. 죄값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치소로 들어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움도 함께 품는다. 우리 민족은 따뜻한 사람들 맞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리자면,

시스템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국은 미국에 뒤쳐졌다. 정치도 경제도 의식도… 그런데 왜 나는 미국도 좋지만 한국에서도 살만하다고 느끼는가? 그건 바로,

한국은 너네 집 맞다는 주인의식을 주고, 말의 사용이 자유롭고, 혈육과 추억과, 추억 속 사람들이 살고, 다 차치하더라도 한국은 내 조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