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나이 먹었다는 증거

윤식당이라는 TV쇼를 보는데 갑자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유혹이 심하게 일었다. 해변가 작은 레스토랑, 비취색 바닷바람을 들이키며 내가 제일 잘 하는 음식 서너 가지를 만들어 팔면서 그렇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여행객들)에게 한 겹 더한 행복을 입혀주고 그들따라 나도 한번 더 웃고, 손님이 없을 땐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거나 모래밭을 거닐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떠다니고… 그런 상상을 하니 진짜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져서 가슴이 벌렁벌렁 했다.

TV 방송 ‘자연 애(愛) 살다’를 보는데 저 사람처럼 깊은 산 속에서 살아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불현듯 치밀었다. TV,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거 없애고 오지랖 넓게 한국 걱정, 미국 걱정, 지구 걱정 같은 거 떨쳐내고 흐드러진 피톤치드 속에서 찌르레기 소리, 구름 소리, 꽃봉우리 터지는 소리 들으며 비가 오면 비를 보고 봄이 오면 꽃내음 맡고 버섯으로 차를 끓이고 머위꽃으로 튀김을 만들어 먹으면 정말 평온하고 살맛 날 것 같았다.

그냥 좋아보이네, 평화롭네, 정도의 감흥이 아니라 내가 그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는 것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엉감생심, 그런 삶을 꿈꾸어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만 좋다 했고, 미국에 살던 때에는 맨하탄에 가면 고향에 온 듯 감동을 받았고 뒷마당에 상추니 깻잎이니 방울 토마토 같은 걸 심는 일을 불가침 성역처럼 높은 내 인생 밖의 일로 여겼다. 나는 꽃나무 이름도 잘 모르고 나물 종류도 구분 못 하는 그저 그런 도시 아줌마일 뿐이었다. 자연과 시골 여행은 좋아하지만 도시의 삶은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한 지인이 뒷산에 고랑을 파서 깻잎을 심었다며 누런 흙밭을 보여주는데 문득 그 옆에다 싹 난 감자나 고구마를 조각내어 심어볼까란 유혹을 느끼거나 층층이 쌓인 딸기박스를 보면서 저걸 사다가 잼을 만들어볼까란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랄 일인 것이다. 누군가 쑥 캐러 가자는 말에 펄쩍 뛰며 좋아하질 않나, 이제껏 의례 예쁘니까 꽃이지 뭐, 했던 꽃들에게서 길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전원주택을 보면서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중얼대는 자신을 이 봄에 발견했을 때 문득 나는 낯설었다.

내가 왜 이러지? 평생 살아오면서 해 본 적 없는 생각들을 하네… 남편한테 이야기하니, 나이 들었다는 증거지 뭐~ 하며 따뜻한 손바닥으로 등을 토닥토닥 한다. 매우 정답이어서 나는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든다. 사실 속으로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의 입을 통해 듣는 결론이 낯설지 않았다. 이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자연과 가까워지는 마음이 나이를 먹는 증거라는 사실은 거듭 생각해도 슬프지 않다. 참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