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새 생활이 시작되고…

막내의 새 삶이 시작되었다. 더불어 우리 가족의 생활패턴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막내는 2주만에 중 2에서 high-schooler가 되었다. 한국학교와 외국인학교의 학사일정이 다른 탓이었다. 덕분에 이번 여름방학은 있는 듯 마는 듯 했고 한글세계에서 영어세계로 건너 오는 짧고 굵은 방학이 되었다. 요즈음 나와 남편은 일단 6시에 눈을 뜬다. 하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는 법은 없다. 결국 20분쯤 비몽사몽을 헤매다가 불현듯 일어나 허둥대며 집 안을 뛰어다니다가 6시 50분이 되면 대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래도 너무 졸려서 하품을 하며 비틀비틀 걷는다.

학교는 고속도로를 타고 꼬박 1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집 렌트가 나가면 막내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려 했는데 푹푹 찌고 흥건히 젖은 7,8월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근 4 주만에 다리가 나아 어제는 내가 운전을 했다. 월요일이었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교통체증이 있었지만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무사히 왔나 싶었는데 슬슬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어느덧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지아 생각이 났다. 조지아에는 때때로 스콜이 내렸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앞이 보이지 않아서 결국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워야 하는데 길어도 5 분정도 기다리면 비가 뚝 그쳤다. 이후 거짓말처럼 청명한 하늘이 펼쳐지곤 했다.

10 분이 지나도록 비가 잦아들지 않았다. 와이퍼는 가장 높은 단계로 돌아가지만 시야엔 물줄기가 그득했다. 시속 100 키로로 흐르던 속도가 80 으로 줄었다. 하지만 길이 아우토반으로 뻗어 있지 않고 차선은 좁으며 연이어 회전 구간이나 경사로도 있어서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5차선을 제법 메운 차들은 대부분 비상등을 켜고 시속 80 키로의 흐름을 탔지만 혹간에는 차선을 바꾸며 빨리 달리는 차들도 있었다. 4 년 동안 거의 운전대를 잡지 않은 내게 폭우 속 80 키로로 달리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다. 이러다 학교길이 아니라 황천길을 타는 건 아닌가, 문득 두려움이 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원래 스피드는 즐기는 편이었는데 말이다. 미국에서는 120 마일(약 190키로)로도 달려봤건만… 물론 아우토반이었고 폭우도 없었고 너른 차선에 오직 우리 차만 있었다. 마침 가랑비가 내려서 수막이 형성된 덕에 바퀴가 떠있는 착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 날아가는 느낌이란?? 말할 수 없이 짜릿한 느낌!!

나이 탓일까?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오르던 산 정상에서 눈 앞의 나무들이 빙빙 돌았고, 맨 뒤에 앉아 두 팔을 올리며 환호성을 내지르던 바이킹이 생에서 요원한 배로 둔갑한 것도 나이가 들어 생긴 변화였다. 뇌의 기능이 쇠퇴해 스피드를 견디지 못하게 된 건 나이 탓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요인도 작용한 듯싶다. 미국에서는 자의로 스피드를 즐겼지만 어제 아침엔 빠른 흐름에 억지로 발맞추어야 하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이다. 혼자 스피드를 늦추는 건 위험할 수 있고 또 천천히 가다가는 지각이 틀림없으니 나는 두려움을 안고 계속 폭우 속을 달려야 했던 것이다.

문득 이 상황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과 교차된 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생각을 전환하려다 든 생각이었다. 조금 천천히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가. 남들이 초등생 때 중등학습을 하고 중등 때 고등교과를 배우니 거기서 벗어나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학창시절 내내 선행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못하면 루저라는 시선에 시달리는 청년들, 남이 30 초반에 내 집을 사니까 나도..., 남들은 진작에 동유럽에 다녀왔으니까, 남들은 아기때부터 이런 교육투자를 하니까, 남의 자식들은 이런 효도를 하니까, 남들은…

어려서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는 남들의 흐름에 끼여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들다. 물론 예외도 있다. 허나 다수의 모습은 그렇다. 이는 무엇보다 남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고 경쟁하는 데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이다. 좁아서 그런가? 좁아서 그렇다. 물리적인 거리도 좁고 사고의 폭도 좁고 경험의 다양성도 좁고 학습의 컨텐츠도 좁고…

그렇다면 이 좁은 관행을 어디서부터 깨뜨리면 넓게 물꼬가 터질까. 이는 첫째도 공교육 둘째도 공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가정교육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학교교육이 변해야 한다.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워서 시험을 보게 하는 교육 말고 질문과 실험과 연구와 브레인 스토밍을 하는 교육으로 사고의 다양성과 창의성과 독창성을 키우고 바른 자의와 자존이 존중되고 정립되는 사회로 이끌어야 한다. 남과 조금 달라도 상관없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맞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사실도 알려야 한다.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워서 그냥 외운대로 시험보는 교육은 그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학교교육에 맞서려다 높은 벽을 느끼고 겨우 아이를 빼내는 것으로 새 길을 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보낸다는 부모들도 많다. 그런 공감을 하는 것만도 그들의 의식은 깨어 있다는 말이다. 부모들은 깨어간다. 공교육도 함께 깨어져야 한다. 정 모르겠다면 교육이 우수한 나라의 시스템을 열심히 연구해서 한국에 접목시켜야 한다(그냥 카피 말고).

원하지 않는 흐름, 빠른 흐름에 질질 끌려다니면 두려움이 생긴다. 이 두려움이 오래 지속되면 병이 난다. 자존감도 낮아지고 행복해 질 수도 없다. 20 여분쯤 후에 폭우가 잦아들자 내 두려움은 곧 잦아들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두려움이 잦아들기를 기원한다. 이 정부의 교육개혁이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많은 한국아이들에게 새 삶이 열릴 수 있기를… 이렇게 1시간 이상 운전해서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