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의 블라인드 데이트에 임했던 자세

솔직히 말하면 나는 불타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심장이 욱신거리고 귓볼이 홧홧거리는 사랑을 경험한 자의 시선으로는 내가 시시하거나 불행한 여인일 수 있겠다. 허나 하나님이 처음부터 미지근하게 세팅해 놓으신 탓에 나로서는 남편과 최선의 사랑을 했다고 착각한다. 계산 없이 순수하게 사랑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비록 한 남자하고만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완전 쑥맥은 아니다. 대학교때 블라인드 데이트를 백 번이나 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 1학년 1학기 때 했고 100 에서 모자라는 숫자는 2학년 초반에 채웠을 것이다. 이후로는 지겨워져서 그만 두었다. 어떤 하루는 세 탕을 뛴 적이 있었고 하루 두 탕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 학생 수첩을 뒤적이며 숫자를 헤아렸을 때는 제 발이 저려 백 번이나 했군, 했는데 지금 그 숫자를 곱씹다 보면 혹시 50번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인다. 백 번은 정말이지 너무 많은 것이다.  ……. 여하튼 지금까지는 내가 백 번 하고 남도 백 번 시켜주었다고 기억하고 말해왔다. 그 시절, 엄마는 혀를 차며 미팅 주선하러 대학에 들어갔다고 탄식을 하셨다. 주선에 도가 터서 전화로 장소, 시간을 정하고 알아서들 만나게 했는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전화를 사용하다 보니 내 마담뚜 노릇이 다 들통나고 만 것이다. 덕분에 지인 세 쌍이 결혼에 성공했고 그래서 천당행 티켓을 일찌감치 거머쥐었는데 하나님은 참고해 주실 지 모르겠다^^. 범인의 학생이 그런 행보를 걷다 보면 성적은 바닥을 기기 마련이다. 학사경고 면한 최저 학점부터 시작해서 4학년까지 계단식으로 쉼없이 올라갔어도 그리 훌륭한 총점에 도달하지 못한 건 그로인한 내 슬픈 역사다.

나는 단지 다른 세계에 사는 남자를 만나서 그 사람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 여중고를 나와 여대를 다니게 된 내게 남자들의 색다른 세계는 여행처럼 재미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멋진 남자에게 반해 그 여행을 그만두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여행지를 탐방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는 일은 긴 인생길을 함께 할 사람이 나타났을 때 시도한다는 순진무구?하고 고지식한 의식 같은 것이 있어서 모든 만남은 한 번으로 끝냈다. 두 사람만 빼고… 한 사람은 주선한 선배의 강요에 의해 두 번 만났고, 한 사람은 나에 대한 열정이 정말 남달랐던 사람이었다.(그 추억은 다음 기회에…)

블라인드 데이트 백 번을 속사포로 채우고 그 세계에 대한 환상 같은 걸 접었다. 그들의 세계를 어느정도 섭렵했다고 할까. 이후로는 누가 제안을 해도 거절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 누구 숨겨둔 애인 생겼지?” 나는 원래 남자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 블라인드 데이트에 임하는 철학이 남달랐을 뿐이었다.

나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나쁜 남자, 제 멋에 취한 남자, 배려 없는 남자는 제 아무리 잘나도 관심 밖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면서 자상하고 듬직하고 외모 준수하고 성실하고 남자 답고 야망 있는… 그런 사람이 어딘가 있지 않겠냐고 긴 시간 버틴 걸 보면 블라인드 데이트 백 번은 역시 낯 선 여행지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를 탐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뛰어놀았던 세계에만 관심을 두었기에 세상엔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고하지 못 한 것이다.

소회 1) 만에 하나 있더라도 내 차지는 아니될 주제이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