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사실을 실감하는 때

기생충 상영관이다. 평일 오전인데 관객들이 제법 많다. 며칠 전 오스카 시상식이 있었으니 매진 안 된 것이 다행일까. 관객층은 주로 노년과 중년 아줌마들이다. 나는 기생충 관람이 두번째다. 한번은 컴퓨터로 봤다. 화면도 작았고 아무래도 처음이라 전체적인 스토리 맥락을 파악하며 기발하고 색다름에 매혹되었다. 두번짼 디테일이 눈에 잘 들어온다. 연기자들의 표정과 대사도 샅샅이 훑고 음악과 영상의 조화, 재치와 유머, 슬픔, 상징, 철학, 끈끈한 가족애도 잘 인식된다. 처음보다 더 재미있고 감명 깊게 본다. 요소요소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키득키득 웃는다. 깜짝 놀랄 부분에선 두 팔과 상체가 들썩인다. 가끔 낮은 탄식도 내뱉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혼자 웃거나 옆에 있는 남편과 함께 웃거나…

소재가 빈부격차이다 보니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은 공유하지만 아무래도 낯선 한국의 삶이라 일반 외국인들에게 어필되는 부분은 현실적인 공감보다는 유머라고 했는데…?? 어쩌면 자막으로 읽느라 디테일을 캐치하지 못하는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난 후에 맞이한 고요 속, 다리와 심장과 귀와 눈이 침잠한다. 사람들도 바로 일어나지 않고 앉아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것을 느끼는가. 비록 웃거나 탄성을 지르거나 끝난 후 잘 다듬어지고 훌륭하게 완성된 이 활동사진에 박수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가지 못할 만큼의 여운은 느끼는가? 음악이 흐르고 무언가 찐득한 것이 서서히 올라오는가 싶더니 눈에서 조용한 눈물이 흐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꿈꾸는 희망이 먹먹해서 가슴에 이런 물결이 이나 보다. 그저 잔잔하게… 그 나약하고 무능하고 쥐뿔도 없는 아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여야 그 대저택을 구입해서 냄새 때문에 굴욕을 느끼고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그 집 지하벙커로부터 꺼내 밝은 햇살속으로 걸어 나오게 할 것인가… 그의 희망이 깜깜해서 눈물이 찔금찔금 난다.

느지막이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두어 명의 할머니들이 영화속 배우들과 닮은 형상의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는다. ‘너, 한국인 맞지? 이제 알 것 같아’, 눈빛으로 말한다. 그들은 앞으로도 혼동을 일으킬 것이다. 뚜렷하게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없으므로 나조차도 엇갈리므로… 다만 ‘당신 한국인입니까?’ 하고 물을 가능성은 늘어났다. 영화에서 봤거든요… 경험에서 우러난 자신감으로…

볼일을 보는 동안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 화장실에는 이제 두 명의 타인과 내가 있다. 그들은 나를 의식해서인지 소곤소곤 속삭인다. “좀 이상했어…” “맞아, 이상하더라”

나나 남편만 웃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영화관계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평가를 받은 영화지만…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다 다르니까.

…… .

기생충을 보고 극찬하는 동료, 친구, 일반인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들은 일부러 영화에 대한 화제를 꺼내고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싶을 만큼 인상깊게 영화를 본 사람들일 것이다. 허나 어떤 이에겐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처럼 이상할 수 있겠다. 사람마다 취향, 인지력, 영화에 대한 이해도, 깊이와 가치가 다르므로. 그래서 모든 일에 한가지 생각과 반응이 나타나진 않는다. 1층, 중간층, 꼭대기층을 좋아하는 각각의 사람들이 모인 고층아파트. 모든 사람이 꼭대기층만 원한다면 아파트는 존재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 이치를 다 알고 이해하는데 화장실을 나오면서 괜시리 서운해졌다.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던 밤, 상을 받을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내질렀다. 작품상에 Parasite가 호명되는 걸 들었을 때는 꿈속 같았다. 멍해진 양손바닥이 멀리서부터 달려와 맞부딪혔다. 천천히 격하게 여러 번… 나는 이런 순간만큼 자신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때도 드물다. 한국에 있으면 이렇게까지 미국 속 한국을 응원하게 되진 않는다. 나는 외로운 애국자가 되어 한국의 영광에 박수를 치며 눈물을 글썽이고 그래서 때로는 당연한 일에 서운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