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빠르게 변해, 이럴 땐 이렇게...

봄이면 알러지로 고생 쬐께 하는 나는 보스톤에 살 때 마스크를 쓰고 월든 폰드에 간 적이 있다. 꽃가루를 흡입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 마스크를 쓰고 나의 운동코스이자 산책로인 트레일을 열심히 걷는데 서너 살 되 보이는 여아가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제 엄마를 불렀다. 흘끗 쳐다본 엄마는 흠칫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이어 아이의 손가락을 거둠과 동시에 아이를 감싸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등을 보이고 서있었다. 처음엔 어라? 내가 강도처럼 보이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좁은 트레일에서 최대한 떨어져서 빨리 지나쳤다. 곧 아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엄마 왜 저 아줌마는 마스크를 끼고 있어요?” 처음엔 모른다고 했지만 곧 아픈 모양이야,라고 정정하는 엄마의 목소리도 또렷이 들려왔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어서 나를 보호하려고 썼어,라고 대답해 주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려서 그냥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미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병원의 의료진이나 뉴스 속 강도 정도를 봤을까… 동시에 두가지 상념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하나는 이 눔의 미국문화, 낯선 게 끝이 없고나~, 또 하나는 마스크를 쓰면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구나… 이후엔 꽃가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더라도 사람들이 보이면 벗어서 손에 들고 숨을 참았다. 좁은 트레일에서 공연히 타인에게 위기의식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3월 23일자 MBC 뉴스 데스크에서는 ‘마스크가 부끄러운 미국인들’이란 타이틀로 워싱턴 공원에서 사람들이 이런 시국임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이유를 인터뷰했다. 한국에서는 질병관리본부가 마스크 쓰기를 권장해왔고 이로인해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곧 바이러스감염이라는 위기의식까지 퍼진 마당이니 말이다. 시민들은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기 위해 쓰는 도구로서 마스크를 쓸 정도면 밖에서 활동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은 아프지 않다면 마스크를 살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고 데비 벅스 백악관 조정관은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시민들의 말처럼 아픈 사람이 쓰고 남을 보호하는 용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인들의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의미는 이런 식으로 확고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도 않은 3월 27일자 뉴스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많은 시민들을 취재했다. 키트가 보급된 이후 보균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이제 확진자 수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최대 감염국이 된 시점이었다. 이제 무증상 보균자로부터의 감염을 막기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쓰게 된 마스크. 세상은 코로나 때문에 문화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실 요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매끄러운 일상의 결이 뒤집히고 멈추고 비틀리고 꺾였다. 국가 차원에서는 코로나 방역에서 처음부터 주판알을 튕기지 않고 목숨을 중히 여기는 인본정책을 편 한국정부를 모범답안으로서 지켜보며 도움을 청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진리는 비껴가지 못하므로 비록 경제는 침체의 골로 빠졌지만 경제도 사람이 살고 봐야 의미가 있다는 대한민국의 노선이 보이고, 어차피 매년 독감과 폐렴으로 죽는 이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법, 산 사람이라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타국 정부의 노선도 보인다. 이 후자가 어쩌면 미국의 노선이 될 수도 있는 지금… 미국 사는 우리는 문정부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트럼프의 실용주의정신에 입각한 정책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써야 할까, 장갑을 착용해야 할까, 자가격리는 필수인데… 미국 정부의 리더가 A라고 말해도 한국뉴스를 통해 코로나 방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똑똑히 지켜본 우리는 B로 하는 것이 맞을텐데… 란 조바심이 일고 그래서 더욱 정신이 산란하다. 게다가 세계적 대유행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 미리 감지해서 밝히고 경고하고 투명하게 보도를 한 결과때문에 마치 이 사태가 한국의 책임인양 잘못 착각한 외국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개인테러도 우리를 흔든다.

하지만 물 속의 수풀처럼 계속 흔들리면 해결 될 일은 없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지를 정하고 꿋꿋이 걸어야 하리.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중심을 세워야 할 부분은 다름 아닌 ‘나와 함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일 것 같다. 내가 너무 두려워서 나쁜 상상을 하면 주변 사람들도 자꾸 불안해 한다. 내가 이걸 싹쓰리 하면 꼭 필요한 다른 이가 곤란을 겪을 수 있다. 내가 보균자가 되면 평균 네 사람을 감염시킨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이 많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잘 구분되리라.

영국의 한 간호사가 48시간만에 교대근무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마켓에 갔는데 텅텅 빈 매대를 맞닥뜨리고 울면서 하소연 하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뻔히 알고 있는 이런 글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