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듣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며칠 전 일이 생각난 때문이다. 먼저 라디오의 사연은 이러하다. 

딸 셋을 데리고 한 엄마가 영화를 보러 갔다. 차를 파킹시키려고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는데 돌다가 딱 한 자리를 발견했고 일자주차를 하는 곳이었다. 상영시간이 임박해와서 할 수 없이 익숙치 않은 일자주차를 시도하는데 이건 몇 번을 넣었다 빼도 같은 자리에서 맴돌 뿐 제대로 주차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다 10 세 부터 15 세 사이의 세 딸이 늦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통에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앞뒤 차 사이에 반듯하게 제 차를 집어넣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버린 순간 차창 밖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엄마는 용기를 내어 그 남자에게 주차를 부탁했다. 남자는 흔쾌히 운전석에 앉았고 차를 앞으로 슝 빼더니 핸들을 순식간에 돌려 퍼팩트 하게 주차시켜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딸들이 저 아저씨는 한번에 하는 것을 엄마는 왜 수십번을 해도 못 하느냐에서부터 아빠보다 잘한다까지 재잘재잘 대는 소리를 듣는동안 남자는 사라졌고 엄마는 아차 싶어서 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고마운 마음에 음료수라도 대접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엄마는 이렇게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보냈다.

이 스토리를 들으면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던 나의 사연은 이러하다. 요즈음 나는 가끔 운전을 하기도 한다. 단 주차장이 널직한 곳만 골라서 다닌다. 그 때도 일자주차나 전면주차를 할 수 있는 곳만 골라서 주차시킨다. 후면주차는 두군데 이상 비었을 때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선 안에 집어넣는다. 우리차는 혼다 오디세이인데 좁은 주차선에 맞춰 넣더라도 가끔 옆 차때문에 운전석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면 조수석을 통하거나 뒷좌석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것이 한국 주차장의 현주소다.

각설하고,

3월부터 막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저렴한 시립수영장에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어 옳타꾸나, 했는데 차량지원도 안 되고 시간도 저녁이라 차만 있다면 라이드를 주고싶었고 그날은 집에 차가 있어서 라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딸아이 레슨을 위해 운전을 하니 미국 생각도 나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그때는 라이드만 안 할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가졌는데 추억은 아름답다고 슬몃 그 시절 그 라이드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하라면 나는 역시 노우, 땡큐 할 것이다. 라이드를 안 주고도 딸과의 추억을 쌓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겠다^^ 어쨌거나 딸아이의 안내에 따라 수영장 건물 가까이 갔는데 사위는 어둑졌고 주차장 입구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양쪽으로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돼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면 잘 빠져나올 수 있을 지 걱정이 된 것이다. 알고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프로배구 게임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차장 안은 간신히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모퉁이를 돌면서 옆 차를 긁을 것만 같았고 만약 저쪽 모퉁이에서 빠져나오는 차가 있다면 나는 영락없이 후진을 해서 비켜줘야 할 입장이었다. 몇 미터를 전진하는 중에 내 더듬이는 이 선에서 아이를 내려주고 후진해 나와야 한다는 확신을 뇌로 전달했고 엄마의 후진실력을 아는 막내는 자진해서 서둘러 내렸다. 진땀은 삐질삐질 등줄기를 적시기 시작했고 아까 입구에서 내려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사정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어쩌랴 그 외길 앞뒤로 누군가 쳐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나가는 수밖엔... 일단 조심조심 좌우앞뒤를 살피면서 후진을 시작했다. 몇 미터 안 되는 거리를 수분에 걸쳐 겨우 운전해 입구에 도달했을 때였다. 갑자기 밝은 빛이 여기저기서 몰려오더니 한꺼번에 수 대의 차가 도로 양방향에서 주차장 입구쪽으로 들어왔다. 어어… 내 입에선 시답잖은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내 차를 보고 일단 조금씩 뒤로 후진을 했지만 겨우 지나갈만큼만 벌려놓은 상태일 것이니 고난은 또 시작된 것이다. 일단 창문부터 열었다. 혹시라도 어떤 도움의 소리가, 예를 들면 오라이 오라이 라던지 스톱이라던지…,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위기상황을 알려준다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때문이었고 다른 차에 부딪치더라도 조금 더 민첩하게 알아차리기 위해서였다. 이어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아가며 천천히 후진을 했다. 방향까지 틀어야해서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더딘 행보였다. 키작은 사람이 미니밴을 운전하면 뒤를 보더라도 가늠이 잘 되지 않아서 백미러와 사이드미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내 운전경력은 미국에서가 전부이고 미국에서는 한번도 좁은 길에서 백미러를 보며 후진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건 뭐 생초짜나 다름 없었다. 그때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평소엔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한 ‘오라이오라이’ 소리! 하지만 들려온 음성은 걸쭉하게도 ‘아, 거 왜 이렇게 뒤로 못 빼~!’ 였다. 내가 자꾸 회상하면서 헛으로 웃게 되는 건 그 다음에 내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 때문이다. 대체 무슨 순발력으로 또 만용으로 또 배짱과 무례로 “못해요, 운전을... 그러니까 쫌 기다리세요!!”라고 소리를 쳤단 말인가. 그것뿐 아니었다. 방향을 틀어 겨우 전진을 하게 된 순간 '누군 이렇게 운전하고 싶어서 하나~'란 자조섞인 외침을 그 사람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내뱉은 것이다. 세상에, 내가… 이 김 여인이… 그런 무례와, 배째라도 그런 배째라를… 아무튼 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한 게 하나도 없어서 썩소를 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