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결혼 20 년차가 말하는 부부 사랑의 의미

우리는 올해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어요. 20년 전 결혼식 날,  **씨가 들러리로 함께 해주셨던 그 고마움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그때 많은 분들 덕분에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저희 부부는 2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두 분께서도 저희처럼 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지천명을 앞 둔 나이에 초혼을 치룬 남편친구 **씨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들 부부를 위해 한마디씩 기원을 하라기에 어쩌다보니 나는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사회자가 시키는대로 남편하고 러브 샷으로 원 샷을 하고 키스도 하라 해서 그렇게 했다. 결혼을 한 건 **씨네인데 왜 우리 부부가 그런 퍼포먼스를 해야하는 지 의구심이 일었지만 무르익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20년된 부부답게 별스럽지 않게 뽀뽀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0년동안 매일매일 어찌 한결같기만 했을까. 싸우고 권태를 느끼고 실망하고… 그런 날들을 빼면 정확히 18년 몇 개월 정도라고 말해야 했을 지도 모르겠다. 허나 늦은 나이에 만나 동거를 하다가 부부란 끈으로 꽁꽁 묶이고 싶어하는 그들에게 격한 기운을 주는 것도 나쁜 생각이 아닌 듯 해 그렇게 말했다. 20년? 그럼 우리는 앞으로 30년 그렇게 살지 뭐…  이런 오기가 발동하기를 바라는 기원이기도 했다.

둘 다 40대인 나이에 초혼인 그들은 그닥 뜨거운 사랑을 해서 결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첫 만남 이후 사귀게 된 계기, 동거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듣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더욱 늘 처음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웠던 순간은 식기 마련인데 식었다가 덥혀진다 한들 남녀간 사랑이란 게 처음만큼 뜨거워지기는 어렵지 않은가. 처음부터 미지근하게 시작된 관계는 어떤 계기를 맞아 처음보다 뜨겁게 덥혀질 수도 있는 법이다.

세간에선 흔히 부부간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믿음, 의지, 의리를 꼽는다. 서로에게 믿음이 없다면 서로를 의지할 수 없다면 그리고 서로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참답게 지속되기 힘든 관계… 예전에 나는 부부간 사랑은 언제까지나 에로스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길어야 몇 개월 지속된다는 에로스를 남들이 어떻든 우리라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오기를 갖기도 했었다. 만약 그 시절에 **씨 커플과 같은 부부를 봤다면 안타깝거나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저렇게 뜻뜨미지근한 남녀가 어떻게 결혼까지 하지? 하고 말이다. 둘 다 불타오르긴 힘들지만 한 쪽이라도 좋아죽겠는 눈치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결혼을 해서 20년을 살다 보니 부부가 사랑을 하며 산다고 하는 기본 바탕에는 그 구성성분이 에로스가 아니라 믿음과 의지와 의리가 뭉쳐져 승화된 다른 색깔의 사랑이란 생각이 어느새 자리잡고 있었다. 열정적인 20대나 알만한 30대가 아닌 곧 하늘의 뜻을 깨달을 나이의 그들이 뜨거움 없이도 부부가 되는 모습이 그래서 지금은 석연치도 이상하지도 안타깝지도 않다. 부부는 어차피 뜨거운 에로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뭉근한 다른 색 사랑으로 이어가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호탕한 신부가 부산 사람이라 광안리 조개구이집에서 가졌던 피로연, 결혼식장에서 자리를 옮기는 도중 장대같은 비를 맞아 속옷까지 쫄딱 젖은 온 몸을 연탄불에 말리며 관망해본 ‘부부 사랑’의 참의미는 붉고 동그란 열꽃 위에서 익어가는 조가비처럼 내가 20년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살아오는 사이 어느새 무르익어버린 생의 철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