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아빠가 엄마를 싫어한다고

“우리 아빠가 엄마를 엄청 싫어하는데 제가 노래하는 걸 보시고 (엄마한테서 물려받았으니) 엄마 덕이 크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몇 년 동안 엄마를 못 만났는데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TV로라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슈스케를 보는데 한 앳된 참가자가 그런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싸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큰딸 또래에, 길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 겪었을 그 친구의 고통이 웬일인지 생생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를 싫어한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수용하고 이를 심상히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 친구는 얼마나 많은 고독과 번뇌와 싸워왔을까.

언젠가 남편과 다툰 후에 막내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난다. “엄마,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알잖아요. 그러니 엄마도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해 줘야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는 우리 부부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논쟁이나 의견대립이 있을 때조차 ‘지금 엄마 아빠 싸우는 거예요?’라면서 따지고 드는 막무가내 평화주의자였던 것이다. 싸우는게 아니라 디베이트 중이라고 설명을 해도 ‘아니, 싸우는 거잖아요! 이게 싸우는 거지 …’ 라며 막무가내로 싸운다 치부하던 막내가 그 와중에 어찌 아빠가 엄마를 사랑한다 느끼고 내게 쏙닥쏙닥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모에 대해 샤프한 촉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사실 나는 아직도 아웅다웅 하시는 친정 부모님을 대할 때면 그 스트레스가 가슴 속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낀다. 때론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서로 위하고 존경하며 알콩달콩 사는 이상적인 부부상을 떠올리며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만 내 부모님이 이상적으로 사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자식의 본능인가 보다.

반면교사라고 한국에 온 이후 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다투는 일을 삼가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나는 불의도 참지 못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을 보면 즉석에서 따져 묻는 성격이라 남편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따져 풀곤 하는데 그리 하면 쌓이는 것이 없어서 부부간 벽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건만 옆에서 보는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거란 사실을 거꾸로 내 부모님을 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젠 남편한테 화나는 일이 있으면 혼자 방으로 들어간다. 반면교사 덕분인지 갱년기 증상인지 이상하게 싸워서 해결하고 싶지도 않고 싸워서 뭐하나,란 생각도 든다. 내가 맞고 네가 맞고를 따지는게 귀찮아졌고 기억력이 힘을 잃어 지난 일을 정확히 짚어내며 확인시킬 능력이 상실돼 그럴 수 없기도 하다. 이 나이쯤 되니 부부간 정말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를 잡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아니라 반쪽인 서로를 위하며 감싸주는 마음이라는 사실이 가만히 와닿는다.

누구나 그렇듯 부부싸움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사이인데다 평상시 부딪히는 것을 참고 쌓아둔 관계인만큼 자칫하다간 작은 불씨가 크게 번지기 십상인 것도 부부싸움의 특징이다. 그래서 좋아보였던 부부가 급작스레 이혼까지 가기도 한다. 그런데 부부싸움의 큰 희생자는 당사자들이 아니다. 아이들이다. 부모의 싸움을 보면서 슬프고 두려움에 떠는 동안 그 작은 몸에서 나쁜 호르몬이 나오게 되고 그 나쁜 호르몬은 버릇처럼 발달하면서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싸우며 함께 사느니 떨어져서 평화롭게 사는 게 낫다는 주장은 그런 이유때문이다.

내 아이가 마음으로부터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서포트 하는 일, 그 중 하나는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아빠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주는 일임을 나는 노래에 혼을 담아 부르는 그 어린 참가자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조용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