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절대적으로 좋은 점

나는 한국이 좋아요.

막내가 한 말이다. 뭐가 좋냐고 물으니 그리운 친구들이 있고, 집이나 학교 주변에서 쉽게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좋아하는 버블티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아주 단편적인 이유지만 그 나이에 생각할 수 있는 한국의 장점은 그런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엄마처럼 복잡하지 않아서 좋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지척의 문화에 지배를 받는 법이어서 열 살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지만 이후 6년동안 머물렀던 한국의 문화가 이젠 막내의 정서가 되었다. 막내는 나중에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렴, 너는 자유인이므로… 나는 웃으며 대꾸한다. 미국에서 살던 한국에서 살던 중요한 건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적어도 막내가 한국을 ‘돌아가고 싶어할만큼’ 좋아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조금 더 커서 세상을 한 겹의 눈이 아니라 두 세 겹씩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 또 다른 모습에 실망할 지 모르지만 지난 6년동안 한국의 좋은 모습을 머리에 담고 행복하게 기억해준 사실이 고맙다.

단 막내는 그 또래 청소년들과는 다른 생활을 했다.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학원에 다니거나 소위 공부에 치여 살지 않았다. 적어도 1등을 부러워한다거나 1등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없었다. 스스로 무거운 마음에 주말을 반납하며 살긴 했으나 12시까지 학원에서 버티며 새벽까지 학원숙제를 한 적이 없다. 한국이 좋게 추억되는 이유는 그 덕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막내만큼은 한국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꿈을 버렸다. 한국의 구태의연한 교육이 매우 싫어서 막내를 그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내 학창시절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수업방식은 둘째치고 아이들의 삶이 엄청 피폐해졌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약 35년 전에는 중학교에서 만점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전국구로 찾는다면 어딘가엔 있을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막내의 주변에는 여럿 있었다. 하나 틀리고 안 틀리고로 전교 석차가 달라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그건 불필요하게 꼬아서 누군가는 실수로라도 틀려야 변별력이 생기는 시험을 억지로 의미 있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언뜻 보면 실력같지만 실제로는 엉덩이 실력이고, 그 실력의 탄생은 24시간 공부의 구렁텅이에 빠져 지내야 이루어지며 학원에서는 내내 과열되게 달리면서도 시험 한 달 전부터 비상체제에 돌입하여 비슷한 예상문제를 풀고 또 풀어서 어떤 문제에도 내성이 생기게 만든 시스템의 결과다. 수학은 숫자를 바꾸고 국어는 토씨와 단어를 바꾸어 연습하므로 아이들은 실력을 쌓는 게 아니라 문제 맞추는 기계가 된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1등을 찬양한다. 1등들은 1등대로 10등들은 10등대로 안간힘을 쓰면서 공부한다. 공부에 자질이 있거나 없거나 대다수가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수시로 만점을 받는 막내의 친구를 데리고 서울 구경을 두어번 간 적이 있었다. 기차 안에서도 걷는 도중에도 그 아이 손에서 단어장이 떠나지 않았다. 학원에서 시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초 3이 아닌 중 3이 만점을 받는구나, 알 수 있었다.    

지금 막내와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2주간의 유럽여정인데 막내는 대중교통의 노선과 갈 곳에 대한 선별과 식당 등의 정보를 계획표에 넣어 알뜰하게 엄마를 인도한다. 길치의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두 길치가 엄청 헤매다 지쳐서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잘 찾아갔을 땐 기쁨의 환성도 지른다. 문득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생각하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딸과의 여행을 언제든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때고, 현재는 품 안에 있는 자식이면서 곧 성인이 될 아이의 마지막 순간에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하루가 아깝다. 막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상 구경을 다니지 못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열심히 달려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다 공부가 될 수 있는 환경이어서 나는 교육환경은 절대적으로 미국이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