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미국, 다른 삶(5)-나이들면서 아름다워지는 법

토마토에 소금을 뿌리면 맛나다는 걸 알지만 고춧가루를 뿌릴 생각은 못 해봤다. 불룩한 배와 두터운 허벅지를 가릴 방도는 자율적으로 모색해봤지만 그녀들의 아름다운 팔다리 조차 가려야 하는 율법이 있는 줄 몰랐다(지금은 상식이 되었지만…), 설령 내게 여동생이 있고 남편에게 남동생이 있다 한들 그 둘이 결혼할 수 있다는 착안은 해 본적이 없다(드라마에서는 보았지만…). 육류를 살 땐 신선하고 요리에 적합한 부위를 고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떤 친구에게 대접하기 위해선 도살방식도 살펴야 함을 배웠다. 나는 편한 복장을 좋아해서 외출복조차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하는데 집에서도 칼 주름 잡은 바지와 털이 부숭부숭한 앙고라 스웨터와 하이힐을 신는 파리지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고기는 소고기대로 돼지고기는 돼지고기대로 음미할 맛이 다르건만 본인의 입맛과는 무관하게 소고기만 혹은 돼지고기만 먹고 사는 운명도 발견했다. 밀레니엄 시대에도 부모가 점지해 준 남자와 결혼해서 잘만 살고 있는 많은 커플을 보며 옛 선조들의 지혜를 떠올려 봤다. 미국에서는 좁은 아파트에 살지만 본국에 돌아가면 저택에 거느릴 도우미가 기본 셋이라는 친구를 사귀었다. 보통은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고 오면 되는 길에 목숨을 걸고 어둠을 타고 온 친구도 사귀었다…

ESL 학교를 다니면서, 필그림의 정착과정과 땡스기빙의 유래와 터키 만찬의 정형과 미국에서의 바른 매너와 남북전쟁을 배움과 동시에, 실생활에서는 Deep South인 조지아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한 탓에 KKK단의 소행을 생생히 접하고 이 꼴 저 꼴을 경험했으며, 인종차별이란 백인이 흑인에게 행사하는 무지하고 구태의연한 행패라 생각했건만 이건 뭐 피부색만 다르면 사람을 제 2의 종으로 구분지어 바라보려는 색깔사회임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나는 위에 열거한 세상도 알게 되었다.

입술이 의도치 않게 벌어지고 작은 눈이 동그래지던 수많았던 순간들… 물론 무지하게 기발하게 기막히게 놀라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런 시간의 축적을 통해 배운 것은 더 엄청난 가치였다.

다양성에 대한 자각과 인정과 존중!!

누군가의 세상을 내 잣대로 재고 평가하지 않는 버릇을 키웠을 뿐 아니라, 나와 달라도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결혼은 종속이 아닌 대등한 인격의 결합임에 대해, 참을 인(認) 세 개가 아닌 이혼에 대해, 효가 아닌 사랑에 대해, 여성의 권리에 대해, 부당한 문화를 거부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이 확장되었으며 나아가 국가에 대해 정의에 대해 바른 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게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많은 걸 경험하면 많은 것이 보이고 많은 것이 보이면 안목이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단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틀을 깨고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해외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과 교제를 하는 환경은 진정한 혜택이 된다. 때론 구시대적이고 익숙하지 않고 까다로워서 ‘다 싫어, 현재의 내 세계가 가장 편하고 좋아…’ 라는 감상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제자리 걸음으로 나이를 먹게 된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도 성숙해지지 못하고 지혜와 현명이 늘지 않는다. 좋은 건 그대로 배우면 되고 좋지 않은 건 반면교사로 배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이 들면서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여담을 좀 하려한다.

조지아에서 큰아이가 킨더에 들어갔을 때였다. 나는 낯선 미국학교 시스템에 대해 아이 베스트 프렌드 엄마에게 궁금한 걸 묻곤 했다. 그녀는 신중한 사람이었는데 첫마디가 자기도 조지아주에 처음 살아봐서 잘 모르지만 이러이러 할 것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 ?그럼 당신도 외국에서 왔나요? 라고 되물었다. 중앙정부만 존재하던 당시 한국의 사정을 대입하니(한국은 전국이 똑같았다) 그런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그녀가 웃으며 자기는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왔는데 미국은 주가 다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미합중국은 지방자치제의 나라라고. 정말 주별로 법, 제도, 풍습이 달랐다. 도로시스템이나 대형마켓도 달라지고 물가도 달라진다. 사람들의 표정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나라가 바뀐 듯 훌쩍 달라진다. 나는 나중에 남부 서부 동부에 살아본 후 이런 사실을 실감했다. 당시의 내 모습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매우 단편적이지만 또 우스운 일화가 있어서 소개해 볼까 한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여기저기 다녀봐도 나는 세상에서 한국 여성이 젤로 예쁜 것 같아요...” ㅋㅋ 희망인가 바람인가. 나는 그녀의 여기저기가 궁금해져서 혹시 외국 어디를 가보셨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시아권 나라의 이름이 나왔다. 나는 속으로 이 여인은 미국에 한번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왜? 다양한 인종을 한번에 접할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파리가 미끄러질만큼 광나고 윤나던 어느 흑인 여성의 피부와 놀라운 볼륨, 그토록 지적이며 매력적일 줄 몰랐던 초록색 눈동자(개인취향 이지만), 아무리 긴 옷을 입고 차도르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덮어도 아름다움이 가려지지 않던 중동의 여인… 세상은 넓고 예쁜 여인은 상상외로 많다는 사실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그런 식의 확신은 가질 수 없으리라. 그러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 같다. 인종마다 예쁜 사람들은 그 독특한 특색으로서 빛이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