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작과 함께 나는 한동안 곁을 주지 않았던 밀짚모자와 장갑을 챙겨 정원으로 향했다. 매년 여름이 오면 더위 때문에 밖에서 일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행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정원을 잘 보살펴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 집 정원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는 건 사계절 쉬지 않고 돌봐주시는 정원사의 손길 덕분이다. 언제든 망설임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으니, 새삼 마음속으로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처서를 지나면서부터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그윽해진 풀벌레 소리와 고슬고슬해진 새벽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이마를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만날 때마다 9월이 오면 다시 호미를 들고 정원을 누벼야겠노라고 조용히 다짐하곤 했는데, 이제 8월을 보내고 9월을 맞이하였으니 다시 잡초를 뽑고 텃밭의 농작물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우물쭈물 미루다 보면 해야 할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고, 지금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일주일 후에는 등 떠밀려 하는 일로 둔갑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바로 일어섰다.

9월이라고 해도 오전 10시만 넘으면 햇볕은 뜨겁고, 잠시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다 보면 이마와 목덜미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다행히 그동안 정원 일을 해오면서 체득한 이치에 따라, 시간대에 맞춰 그늘진 곳만 찾아다니며 잡초를 뽑다 보니, 반가운 실바람을 만나 더위를 잊는 호사도 누린다. 점차 일이 손에 익어갈수록 자연스럽게 눈앞의 잡초에만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게 되고, 어느새 흐르는 땀도 더운 열기도 서서히 내 감각 세계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참에 머릿속의 번뇌 망상도 잡초와 함께 하나씩 뿌리째 뽑아보자는 의지에 불타게 되고, George Winston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잡초 뽑기’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올여름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몇 해 전 그녀가 하는 사업이 갑자기 번창하면서 몹시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의 건강에 바로 적신호가 왔고,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온몸에 피부병이 퍼져서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양한 치료를 시도해 보았지만, 좀처럼 차도가 보이지 않자 마음마저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쉬어가야 한다면 심신 수양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어느 절에서 하는 수련회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도량에 머무는 동안 ‘잡초 뽑기’ 울력을 맡게 되면서 많은 뉘우침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고,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회복되었지만, 그녀는 지금도 빠짐없이 매달 한 번씩 산사를 찾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잡초를 뽑는 울력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며 밝은 얼굴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앞뜰과 뒤뜰을 오가며 무수한 잡초를 뽑다가 문득 그녀의 싱그러운 웃음을 떠올렸다. 그녀의 경험담 속에는 꾸준한 노동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까지도 성찰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말라’는 백장선사의 가르침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어집(禪語集) 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순간마다 생명력을 가진 활구(活句)로 수행자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음을 ‘잡초 뽑기’ 덕분에 배우게 되었다. 올가을에는 “일이야말로 지혜를 닦는 아주 좋은 장”이라고 말씀하신 스승의 뜻을 잊지 않도록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볼 생각이다. 열심히 잡초를 뽑다 보면 내 마음의 뜰에도 지혜의 꽃이 홀연히 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9월 3일.

미국의 노동절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