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의 시작과 함께 우리 가족은 랄라의 대학교 탐방길에 올랐다. 랄라는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자립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레인소나타 다이어리>는 랄라가 21개월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절 나는 남편의 빈번한 해외 출장으로 오랜 시간 혼자서 아이를 돌보느냐 몹시 지쳐있었다. 내 옆에는 항상 랄라가 있었고, 아이가 예쁘면서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몹시 갑갑하고 답답했던 시기였기도 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글쓰기였다. 지금처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꿈에서만 가능했던 시절, 나는 랄라가 낮잠 자는 시간에 집안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항상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기에, 깊이 생각하거나 많은 이야기를 글로 남길 수는 없었지만, 간략하게나마 하루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듯했고, 남은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지금도 글쓰기를 통해 잠시 쉬어가는 연습을 하며 살고 있다.

머지않아 대학생이 될 랄라에게 세 가지의 능력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열린 마음과 열린 귀와 열린 눈을 선물해 주고 싶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단 한 가지만 줄 수 있다면 답은 '사랑'이다. 심리치료를 막 시작한 내담자의 대부분은 자기 안에 담긴 아프고 쓰라린 상처의 고름을 짜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무렵, 많은 내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냐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험을 종종 한다. “네? 벌써 한 시간이 지났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심리치료가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치료사와 내담자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상호 존중의 관계가 맺어지면, 내담자는 나의 안부를 묻거나 개인적인 질문을 편안하게 던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선생님께서는 왜 이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힘들지 않으세요?” 이 모든 질문의 답도 사랑으로 귀결된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나 자신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막상 공부가 깊어질수록 나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 여정을 끝내기보다는, 많은 사람과 그동안의 지식을 나누고 싶어 졌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차츰 심리치료의 경험이 쌓이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듣는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랑은 쉽다고도 하고 어렵다고도 한다. 나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이토록 중요한 ‘사랑’이라는 화두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참구 해본 적이 있었나?라고 자문하던 시절 만난 책이 한 권 있다. 이제는 오래된 친구 같은 책, 독서 치료를 통해 많은 내담자의 마음에 단비를 내려준 책,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한국어 번역본 <사랑의 기술>을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그래서 더욱 귀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