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의 수다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조금 포장해서 말하면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꾼이었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목소리 크고 말 많고 감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말로 풀어내야 했고,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 또한 말로 호소해야 직성이 풀렸다. 바른말을 하는 것이 정의라 생각했고, 말을 통해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고 사고를 전달하며 그렇게 서로와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집안에서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할머니와 이모들과 엄마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면 그것이 드라마 시청이고 영화 관람이었다. 난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배웠다. 

그런 나의 수다 인생에 걸림돌이 처음 감지된 것은 외국에서 거주하게 되면서였다. 수다를 이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의 존재도 처음 알았다. 모국어라면 자유자재로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감질나게 슬픈 이야기는 애틋하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낯선 외국어는 내 혀의 움직임을 둔탁하게 만들었고, 답답함이 명치끝까지 차올라왔다. 그렇다고 말없이 살 수도 없는 법, 우물도 목마른 사람이 먼저 파야 하듯 외국어도 아쉬운 내가 먼저 공부하는 것이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면서 나는 듣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다. 쉬운 단어 하나라도 모방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청이 중요했다. 그리고 잘 듣기 위해 두 귀는 쫑긋 세우고, 두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입은 꼭꼭 닫고, 남의 말을 들어야 했다. 누군가 이야기할 때 함께 떠들면, 나의 이해력만 떨어지고 결국은 말과 생각이 따로 논다는 경험도 그때 했다. 특히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침묵은 필수조건이었다. 그렇게 외국어를 습득하면서 남의 말을 끊거나, 참견하거나, 화제를 돌리거나 하는 나쁜 습관도 서서히 교정되었다. 

그 이후부터 또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환경에 놓일 때마다, 내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말부터 잘 듣고 침묵하는 과정이 반복되었고, 이것은 점차 내 인생에서 아주 효과적인 외국어 학습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단 귀와 입이 트이고 어느 정도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 또다시 이전의 ‘수다’가 도지는 것이었다. 사람의 오래된 습관은 무섭다. 더군다나 나쁜 습관일수록 그 수명은 길고 질겨서, 습관을 바로잡기 위해선 한결같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어떤 필요나 목적에 의해서가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침묵을 마주하게 된 계기는 10년 전 할머니를 여읜 후, 미국에 돌아와 새벽예불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매일 새벽 5시에 할머니 영정 앞에 앉아 있노라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고요한 정적이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침묵이 큰 위안이 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수행이라는 것에 진지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점차 고요와 가까워질수록, 내가 지금껏 내뱉은 수많은 말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휘발성 감정 소모에 지나지 않았는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곧 할머니 10주기를 맞이한다. 그렇다면 내가 침묵에 대한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도 10년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 시점에서 나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침묵할 때 침묵하고, 말해야 할 때 말했는가?” 

앞서 말했듯이 습관은 무섭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마음공부도 독서에서부터 시작했다. 수행이 내 삶의 일부가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책의 도움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침묵에 관해 공부할 때, 나에게 아주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 있다. 혹시 침묵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18세기 초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나 '세속 사제'로 활동한 문필가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의 <침묵의 기술>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더불어 이 책에 실린 "침묵의 14가지 원칙"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2.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3.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4.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5.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 

6.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7. 중요한 말일수록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뇌어보아야 한다. 

8.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9.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10. 침묵은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 

11.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12. 용감한 사람의 본성은 과묵함과 행동에 있다. 양식 있는 사람은 항상 말을 적게 하되 상식을 갖춘 발언을 한다. 

13.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14.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