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할머니,

지난해 할머니의 구순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촌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어요. 처음에는 생소하게 여겨지던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이 온 세상을 뒤덮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0일 정도였어요. 우리는 이 신종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어요. 2021년 3월 현재 1억 2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270만 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으며,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고, 우리 모두 평범한 일상을 빼앗겼어요. 

코로나바이러스가 더욱더 깊숙이 생활 속에 스며들면 스며들수록,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분노와 반목을 확대 생산했고, 우울과 상실의 깊은 한숨이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요. 각 나라는 국민의 안전과 엄격한 방역을 위해 하늘길과 뱃길을 막았고, 육로를 통한 여행도 쉽지 않게 되었어요. 그렇게 단절과 고립 그리고 불확실성의 정서가 젖은 담요처럼 우리를 갑갑하게 짓눌렀어요. 

할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이 편지의 머리말만 읽으셔도 한쪽 눈이 일그러질 만큼 가슴 아파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올해 할머니 생신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저의 신세 한탄이 아니에요. 제가 할머니께 진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 역경이 그저 괴로움으로만 머물지는 않았다는 점이에요.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시련: 겪어 내기 힘든 어려움’으로 시작해서 ‘시련: 의지나 사람됨을 시험하여 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음을 할머니께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평소 저는 할머니 생신 편지로 지난 일 년 동안 마음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 또는 일상 속에서 할머니가 떠올랐던 순간을 글로 나누고는 했었죠. 물론 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 주제였어요. 그런데 제가 지난 일 년 동안 위기와 대면하며 깨달은 것은, 어느 유명 학자나 철학가의 명강연보다 할머니께서 나눠주신 가르침이야말로 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에요. 

그러기에 지난 한 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암울했지만, 저에게는 할머니를 가장 가까이서 느낀 시기이기도 했어요. 우리의 대처법이 몹시 안타깝고 실망스럽던 순간마다 할머니의 가르침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올라 저의 머리와 마음을 맑게 해주었거든요.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제가 일상 속에 숨어있는 소소한 행복과 감사의 순간을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오롯이 할머니 가르침 덕분이었어요. 

그럼 더 늦기 전에 할머니께서 평소에 당부하신 말씀을 적어볼게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 누구도 업신여기지 말아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가라.”

“모르는 것은 흉이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염치가 있어야 한다.” 

“돈을 귀하게 여기고 낭비하는 습관을 버려라.”

“밥상 앞에 앉으면 감사의 마음을 챙겨라.”

“인사는 인간의 기본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음을 명심해라.”

“너의 사람 됨됨이가 너의 인생을 가른다.” 

“어려울 때는 나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을 생각해 너의 처지에 감사하고, 잘될 때는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보며 교만함이 없도록 주의해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라.” 

“말은 차분하게 천천히 하고, 항상 진심으로 사람을 대해라.”

“누구에게든 배울 점이 한 가지는 있다.” 

“너보다 어린 사람은 너그럽게 대하고 나이 드신 분은 공손히 예를 갖춰 대해라.” 

“남에게 베풀 때는 대가를 바라지 말고, 도움 준 일이 있다면 빨리 잊어라.” 

“가장 먼저 너의 건강을 살펴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듣는 귀를 가져라.”

“뿌린 대로 거둔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욕심이 과하면 화(禍)를 부른다.”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맞이해라.”

“네가 머물렀던 곳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해라.”

“인복이 있으려면 부지런히 덕을 쌓아라.” 

“평소의 말투가 인품이 된다. 그러므로 항상 말 습관에 유의해라.” 

“너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엄마로서 자식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최고의 가정교육이다.”

“사람의 그림자도 함부로 밟지 않도록 주의해서 걸어라.” 

“여유가 있을 때일수록 주위를 돌아보고 너의 주변을 챙겨라.”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감정을 소비하지 말아라.” 

“시간 약속을 엄중히 지켜라.”

“공부는 끝이 없으니, 평생 배우고 익혀라.”

“너의 몸을 잘 살피고, 피곤하면 반드시 쉬어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라.”

“네가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라. 그것이 할미에게 하는 최고의 효도이다.”

할머니께서는 이 귀한 말씀을 나눠주실 때마다 “늙은이 잔소리라고 귓등으로 듣지 말고 마음에 새겨두면, 살면서 한두 개 정도는 생각날 때가 올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제가 할머니 말씀에 제법 귀를 기울이기는 했었나 봐요. 할머니, 이렇게 귀중한 유산을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자애롭고 훌륭하신 우리 할머니의 아흔한 번째 생신을 축하드려요. 그리고 할머니의 깊은 사랑의 가르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의 안팎을 잘 살피며 노력할게요. 할머니, 어느 무엇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우는 봄이 왔어요. 할머니께서 유독 아끼신 꽃과 바다가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곳,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서 맞이하는 할머니의 91세 생신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감사하네요. 제가 어느 곳에 있든, 할머니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존경심은 늘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여전히 아주 많이 보고 싶어요.

2021년 3월 17일 (음력 2월 5일)

수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