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자던 공주가 조금씩 꼼지락 움직이며 열심히 자고 있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조심스럽게 공주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조용히 그 예쁜 이마에 뽀뽀를 하자,
"엄머...엄머..아.." 하며 잠꼬대하듯 공주가 중얼거렸다.
지칠듯모르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신우가 다시 내 침대곁으로 앉았다.
자세히 보니 아직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상처가 남아있었다.
정말 그 악몽같은일들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대체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평온하게 누워있을수 있는걸까?
"당신. 누구예요."
"이신우라고 했잖아요."
"말해요. 제발."
"슈퍼맨이예요. 지금 이 셔츠 입고있어서 그렇지, 이거 벗으면 저 날라다니고 막 그러거든요."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이신우가 피식 웃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 봤다.
"안정해야 된다고 했어요."
"안정할수 없을만큼, 불안해요
지금. 얘기해줘요."
이신우가 나를 똑바로 보며, 다짐하듯 한숨을 쉬고는
내손을 조심스럽게 쥐며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공주는...
산책중 제가 빼돌렸어요.
일하시는 아주머니와 그 놈 와이프가 공주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
그 와이프가 놀이터가 더럽다고 불평을 해서 아주머니가 구두를 바꿔주고, 시중을 들던중,
공주는 미끄럼틀에 혼자 올라왔고... 기회를 노리던 저는, 그때 공주를 안고 택시로 빠져 나왔어요.
공주가 좀 놀라긴 했지만... 엄마 모습을 보더니...곧 안정됐어요."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짓을 벌일생각까지 했어요?"
"공주 데려오는건, 오히려 쉬웠어요. 애가 워낙 가벼워서."
"그럼 나도...?"
"그러니까, 평소에 다이어트좀 하지.." 하며 그가 웃는다.
나는 너무 놀래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그가
잠시 할말을 잃었다.
내가 더 불안해 할까봐?
고생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자산이랄까...
배운것도 별로없는 내가 가진 특기랄까..
어쨌든, 나의 눈치는 속일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어딘가 초조한 구석이 있었다.
아직,
준혁이에게서 완전히 벗어난것이 아니구나.
짐작할수 있었다.
"나.
더 이상 놀랄 일도 없는거 알죠.
그리고 그렇게 얻어 터지고, 난리치고도 겨우 이런 간단한 수술이면 되는거...
나 지독하게 건강하고
독한 사람이예요.
쓸데 없이 질질 끌지 말고 어서 말해줘요.
어떻게 나를 데리고 나왔는지.
왜 우리를 도와주는지."
"며칠동안 잠복하면서 기회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기회가 왔을때, 지수씨를 데리고 나온거예요."
왠지 너무나 요약된 그의 대답이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왔지만,
하기야, 그런 방법이 아니고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
"그럼...우리 아직... 쫓기고 있는거네요."
커튼이 열리면서, 간호사분이 들어오셨다.
"여기 전복죽 배달왔어요. 천천히, 조금씩 드셔보세요. 많이 시장하실거예요."
"아, 빨리왔네요,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신우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전복죽을 풀어내고 준비하여 내 입에 한 스푼 가득 떠서 내밀었다.
할말을 잃은 나는 잠시 그를 보았고,
"조금 먹어봐요. 어서 회복해야"
"도망을 칠수 있겠죠?"
"아니예요. 걱정말아요. 이곳, 쉽게 찾을수 있는곳은 아니예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이 많이 허술하긴 하다.
도시가 아니구나.
하긴 도시였다면 전복죽을 전화로 주문하는건 당연한건데, 간호사에게 물어봐야 했던걸 보니...
시골인가?
"그런데 왜 공주와 나를 도와줘요? 당신이 왜?"
"내가 아니면. 누가 당신을 도와줘요?"
주위가 잠잠했다.
물어볼말이 더 많이 있었는데, 잠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게...무슨 말도 안돼는...이유인가요?"
"이유라는게...뭐 꼭 말이 돼야 하나요?"
"어쩌려고 그래요, 이신우씨는"
"내가 뭘요."
"나와 공주는 다시 잡혀가면 그만이겠지만, 당신에게는...
준혁이가 보복할거예요."
"두사람의 목숨이 달린일인데...뭐요?
다시 잡혀가면 그만이라뇨?"
"내말이 그말이예요. 우리는 죽이지는 않을거라구요"
"윤지수씨."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를 조금 놀라서 바라보았다.
"내가 전에도 말했죠. 자신을 좀 아껴보라고!
지금, 이상황에서
다른사람이 무슨상관이예요.
죽이지는 않는다고? 그렇게 사는게, 그럼 사는거예요?"
나는 당황했다.
나를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을 감행하고,
또 나를 위해 이렇게 화를 내주는
이신우...
이사람은 대체 누구길래...
"왜...화를 내고 그래요.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요...당신이 너무 위험할꺼라는"
"그러니까 다른사람 상황을 생각할때가 아니라는거예요. 우선 잘 회복할수 있도록" 그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자, 어서 먹어봐요." 하며 전복죽을 뜬 숫가락을 내밀었다.
"누구예요, 당신. 내가 신경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왜 나와 공주를 이렇게 도와주는데요."
"사람이니까요. 그냥 지나칠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
꼭 나의 눈치가 아니더라도, 나의 눈길을 피하는 그를 보면 누구든 쉽게 알았을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보통사람들은 자기 살길을 찾느라...
이렇게 까지 돕지는 못하죠.
당신은 미국에서 한국까지 왔고,
자신의 안전을 내치고
남의집에 잠복을 하고,
위험한 납치를 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모든것을 내려두고?"
머리가 띵해왔다.
아무리 독한 나지만,
수술도 그렇고
약기운도 그렇고...
긴소리를 하고나니,
눈앞이 하얘질것 같이 힘이 든것이 순간 느껴졌다.
"괜찮아요?"
찡그리며 눈을 감는 나를보며 그가 호들갑을 떤다.
분명.
그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
잠시 곰곰히 생각 해봐야겠다...
그가 처음에 식당에 나타났던 그날부터...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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