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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시회가 있었던 그 날.
“형. 그만해. 이런건 안돼! 너무 위험하잖아!” 민우가 애원을 하고,
“짜식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지금까지는 연습이었고. 이제부터 진짜라고.”
“이건 아니야. 이런건. 범죄잖아!”
“야, 민우야.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올바른 시티즌이었다고 이렇게 오버를 해? 너 지금까지 내가 키워준거 고마워하면서 잘 배워왔잖아?”
“형. 내가 형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왔던거. 알지? 형은 나에게...아버지같은 사람이니까.”
“그래, 나도 널 친동생같이 키워왔어. 이제와서 왜 이러는데?”
“지금까지 해온건...그래. 사기? 조금은 과장된 세일? 잘못된거였지만 법적으로 문제되는 일은 아니었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고, 엄연히 사고싶어하는 사람들끼리 원하는 가격을 서로 경쟁해서 가져갔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는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협박해서 가져가고 그 놈들에게 무조건 넘기는건. 범죄야! 그리고 그 놈들, 약까지 팔라고 시켰다면서!”
“이 새끼가, 어디서 선생질이야? 내가 다 알아서 해. 넌 그냥 시키는대로 하라고.”
“형!”
“미친놈. 빨리 안해?”
민우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건..아니야. 안돼, 형!”
“우와. 시간없는데 이 미친놈이! 야, 현수 오라그래. 이새낀 끝날때까지 여기 가둬놓고.”
창고문이 닫히고, 완벽한 어두움만이 남았다.
이제...그들은 돌이킬수없는곳으로 가고있었고. 민우는 이제 철저히 갖혀버렸다.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날카롭게 밝은 빛이 보여, 민우는 눈을 뜰수 없었다.
헉! 하며 놀라는 소리가 들렸고.
“누구야, 뭐예요? 거기, 괜찮아요? 아니 왜 여기 사람이 있어?”
눈이 동그래진 여자가 민우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그녀가 민우곁으로 다가와 가까스로 눈을 뜬 그를 의아하게 살펴보았다.
“누구...세요? 여기 창고에서 뭐하시는거예요? 잤어요?”
풋. 자? 내가 여기서 자게 생겼나?
“그러는 당신은 여길 왜…?”
“나야, 우리 아부지 심부름 하려고...아! 저기있다!” 그녀는 금새 밝아진 표정으로 구석에 기대어선 그림하나를 낑낑대며 들고 나왔다.
“저기...정말 죄송한데요, 이것좀...쪼금만 같이 들어주실래요? 아주 잠시면 되는데...이게 엄청 귀한거라서..제가 들고가다가 어디 부딫히거나...그럴까봐요. ”
민우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아, 아니예요.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그녀는 금새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낑낑거리며 그림을 들고 걸어나갔다. 나가다말고 돌아보더니,
“근데, 거기 더 계실래요? 문 닫아요?” 하다가, 잠시 후, 아….하는 표정으로 민우를 돌아보았다.
“혹시…” 그녀의 두눈이 시무룩해졌다.
“뭐...가져가려고...거기 있었어요? 뭐...찾으려고?”
민우가 한숨을 쉬고, 그녀의 뒤로 다가와서, 낑낑대는 그녀의 커다란 그림을 받아들었다.
“어디까지 가면 돼요?”
그녀가 고맙다는듯, 다행이라는듯, 싱긋 웃었는데.
그냥 웃었을뿐인데
아주 평범한 인간의 표정중 하나. 미소…
그저 그거였는데
민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종알거리며 이 그림이요, 어쩌구 저쩌구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화가가 되고싶은데 자기는 재능이 없다는둥. 이 그림은 아빠가 거의 7년을 넘게 그려서 완성을 하셨는데 등등…
말이 많았는데, 이슬비 떨어지듯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였다.
그녀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민우도 걸음을 멈췄다.
전시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민우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형이 그런건가...결국...일을 저지른건가. 민우는 두 눈을 감았다. 이것이 악몽이기를 바라면서.
“아빠! 아빠!”
쓰러진 화가는 힘없이 작은 액자 하나만을 품에 품고 있었고…
“시아...시아야!”
“아빠! 이게 어떻게 된거야? 왜 갑자기?”
“저 그림, 어서 숨겨. 다시 창고로! 어서!”
“응? 응. 알았어. 아빠. 아빠, 다친거 아니지? 괜찮지?”
“그래.. 어서 그림을!”
이미 늦었다.
“아이쿠. 민우 이새끼, 아까 헛소리 해대더니, 결국 니가 공을 세우는구나.”
형이 웃는다. 왜. 형이 이렇게 까지 된걸까. 돈이 뭐라고. 권력이 뭐라고!
민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아라는 그 녀의 눈물 가득한 두눈. 그녀는 어리둥절하다.
“뭐. 소란 피울거 없이 고이 가지고 와. 밴에 실어라.”
“형.”
“입 다물고. 너 오늘 왜 그렇게 말이 많냐?”
“이건. 안돼.”
“민우야. 이 형이 정말 많이 참은거 알지? 너 내가 예뻐한다고 간땡이가 엄청 부었나본데, 터트리기전에 쪼그라들어. 응?”
“형, 니가...이렇게까지 미친놈인줄 몰랐다.”
“뭐야? 이 새끼가!”
“형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가셔야 돼요!” 현수가 소리지른다.
“야, 이 그림 차에 실어.” 현수를 향해 형이 명령을 하고,
민우는, 그림을 들어 시아와 그녀의 아버지옆에 조용히 내려 놓는다.
몇몇이 민우를 향해 주먹을 쥐고 걸어오고,
“아잇, 저 새끼가! 시간없어요, 형님! 가야합니다!”
그림을 가로막고 서있는 민우를 주먹으로 쓰러뜨린다.
“가야해요!”
“너...각오해라.” 형의 눈에 분노가 가득차있다.
밴이 떠나고 곧 경찰들이 도착하고…
조사를 하던 경찰들은 다친사람이 없는걸 파악하고는 더 깊이 조사하겠다는 이소리 저소리...
갱멤버들과 연관되었냐는 등의 질문을 하고..
사람은 안 다치고 물건만 없어진거면...뭐.. 이런식으로. 뭐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 그림들?
하고는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 사라진다.
남은 사람들은
시아.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민우.
“이게...어떻게 된거예요, 아빠? 저기. 이게...다 뭐예요?” 그녀가 눈물을 삼키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다.
“시아야...괜찮아. 이 그림이 아직 있으니...괜찮다.”
시아와 그녀의 아버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고,
민우의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형이 이럴줄은 몰랐다.
힘없고 여린사람들에게서 빚을 담보로 협박으로 물건을 빼았고, 그걸 개조해서 다른이름으로, 미친가격에 팔아넘기고, 그 밑천으로 약을 사고, 또 미친 가격으로 팔아넘기고. 대강 이런 계획이었다.
민우가 더더욱 몰랐던건. 피해자들이 힘없고. 여린사람들 이었다는거.
민우 자신이 힘없고 여린 사람 아니었던가?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고 foster care 시스템에 맡겨지면서, 이집 저집 헤매이는 생활을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고 매를 맞기도 했고
썩기 바로 직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음식도 먹어야 했으며
목소리를 크게 내서 시끄럽다고 밤새 벌을 세우는 놈들도 있었고,
신고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에 숨을 죽이고 이불속에서 울며 잠든 밤이 많았었다.
그러다가 18세가 되던해.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태권도장에서 형을 만났다. 그때 형은 태권도장 마스터였는데, 어린 딸...그러니까 그때 12살이었던 희주가 있었고, 아내가 이혼하고 멀리 도망갔다는 좌절에 밤낮으로 술에 쩔어있는 사람이었다. 희주가 민우를 워낙 따르니까, 도장일을 민우에게 맡기다시피 했고, 그러다가 조금씩 회복이되면서, 도장에 자주오던 몇몇 사람들에게 이 짭짤하다는 비지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랬다. 희주 좋은대학 보내고. 큰 집도 사고...그런데 그게 자꾸 변하기 시작했다. 깡패같은 사내들이 더 자주 들락날락했고, 도장을 팔고는 아주 큰 건물을 사더니…
이제 저 미친놈이 된것이다.
민우의 유년기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다행히도 나침반...같은것이 있었다.
엄마의 육아 일기장이었는데, 영문도 모른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통보와, 잡혀가듯이 소셜 오피스로 끌려가던 그날. 그 품에 끌어 안을수 있었던 단 하나의 물건. 민우가 태어난 날부터 9살이 될때까지 꼬박꼬박 소중한 기억들을 적어놓으신.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그 안에는 엄마의 기도와, 바램과, 민우를 위한 꿈과 희망이 들어있었다. 마치 민우 너는 이렇게 살아야한다...하는 가르침. 그는 매일 엄마의 일기장을 읽었다.
시우와 그녀의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세요?”
“당신은...누구세요?” 시아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물었다.
“그 사람들과. 한 패거리...근데 우리때문에 배신 한거예요? 아니면…”
“죄송합니다. 가시는곳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시아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잘못이지...왜 그런놈들의 돈을 빌려쓴...다 내가 부족해서...그러니 걱정말아라 시아야. 이제...괜찮을거야. 그림이야, 또 그리면 되고. 도와줘서...감사합니다. 젊은이.”
시아와 그녀의 아버지가 사는집은 아주 작았지만 따뜻했다.
겉으로 보는것보다 안이 더 많이 예쁜...그런 집이었다.
민우가 가려고하자, 시아의 아버지가 붙잡았다.
“오늘, 젊은이가 아니었으면 이 가장 귀한 그림도 뺐겼을텐데… 식사라도 대접하게 해주시게나.”
“아닙니다.” 부끄러웠다. 정말 너무나 쪽이 팔렸다. 알고보면 민우도 형과 한통속 아닌가.
“여기, 앉으세요.” 시아가 힘없는 미소를 짓고 의자를 내어주었다.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 나가려는 그의 팔짱에 그녀의 팔이 꼬여있었다.
“우리 고집, 못꺽을껄요.”
그녀의 해맑은 웃음을. 민우는 자신의 눈으로 믿을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수가 있지? 이런일을 겪고도?
이상한 저녁이었다.
별 말이 오가지 않았는데 재미있었고,
뭐 불을 피운것도 아니었는데 따뜻했고,
화려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만족스러운 음식...그런 저녁이었다.
집밖으로 나오려는데, 시아가 쫓아 나왔다.
“저기요!”
돌아보는 그에게,
그녀는 또 그 웃음을 지었다.
왜 얼어붙는것일까. 그저. 인간들이 짓는 수많은 표정들의 하나일뿐인데.
“정말...고마왔어요. 자주...놀러오세요. 이거. 제 전화번호.”
“아...아닙니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거야? 뭐가 괜찮은거지?
“민우… 나랑 동갑이니까...반말 해도 되죠?”
반말은 무슨…
하는데 심장이 벌렁.
당황한 민우는 서둘러 그집을 빠져나왔다.
시아는 사라지는 민우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는데...그런데!
“아빠! 아빠! 어떡해요! 아빠!”
“시아야! 왜!”
오늘 이미 많이 놀란 날.
더 많이 놀랄일이?
시아와 그녀의 아버지가 서둘러 뛰어가 보았지만 이미 민우는 갑자기 나타난 차에 끌려 들어갔다.
시아의 아버지가 꾸물꾸물 느린차를 몰고 근처를 돌기 시작했지만, 민우를 찾을수가 없었다.
그 나쁜놈들이. 그 무서운 놈들이...아까 너 각오해라...하더니만 민우를 다치게 하는건 아닐까.
거의 세시간을 운전을 하며 구석구석 찾아 헤맸다. 물론 바닷가에 조개찾기와 같이 허무맹랑한 일이었지만 시아와 그녀의 아버지는 그렇게 꼼꼼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민우가 다치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빠! 저기!”
세시간이 지난후에. 정말 기적적으로 차갑게 얼어있는 민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후 몇달동안...죽기 바로 직전까지 심하게 얻어맞은 민우는 그 두사람의 지극 정성으로 기운을 되찾을수있었다.
시아의 아버지는 민우를 취직까지 시켜주셨다.
바로 이 주유소.
주인장이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묵묵히 그가 참고 일하는 이유는 바로. 시아.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어렵게 찾아 소개해준 직장이기 때문이었다.
“맞죠? 그 때 전시회장에서. 왜 그렇게 놀라시나?”
이 껄렁거리는 놈은 대체 누군데?
“지금. 시아네집으로 가는건가?”
“넌... 대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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