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주...중요하고. 높은사람?”

“미친놈.”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높은분이. 바쁘실텐데 빨리 빨리 할말 하고, 할일있으면 하고! 좀 꺼지시지?”

“흠….난, 너랑 할일이 좀 많은데?”

“난...아주 피곤하거든? 보시다시피. 컨디션이 좀 엉망이라서.” 민우가 음료수와 과자들로 범벅이되어 얼룩진 자신의 윗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다.”

민우는 기가차서 그 녀석을 보고 헛...하고 웃었다.

“그래 좋아. 어차피 쉽게 떨어져갈 껌딱지는 아닌거 같으니. 자. 해봐. 니가 하고 싶은 얘기.”

“여기선 곤란하지.”

“왜?”

“타라.”

“미쳤어? 내가 왜 너같은 놈의"

“이런말은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민우와 그의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시아에겐. 목숨이 걸린 문제야.”

“....뭐?”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시아는…

민우에게 어떤 존재인가.

전시회날 이후, 또 사경을 헤매도록 다친 민우를 집으로 데려가 지극 정성을 해준 시아는.

민우에게 어떤 존재인가.

민우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냥 사랑이란게 뭐지? …

싶은 생각이 가끔 문득 문득 떠올라 자신을 비웃기를 반복했다는것 말고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게 되고,

혼자 뒤돌아서서 피식 웃게되는…

따뜻한 손난로같은 아이였다. 시아는.

“너 지금...날 협박하는거냐? 시아를?”

“아니. 단지 니가 모르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거야.”

“내가 모른다는걸 니가 어떻게 알아?”

“니가 시아네 전시회때 왔던 놈이라는거...그때 죽을만큼 얻어터지고 그 이후로 쭉….시아네 집에 있었고,  그리고 얼마전부터 그 주유소에서 일했다는거. 난 너에대해서 꽤 많이 알고 있다.”

“넌 뭔데 시아에 대해 아냐고?”

“자 자… 그만 떠들고, 어서 서두르자고. 타라.”

그런 존재인가. 시아는?

민우가 앞뒤생각도 않고 그냥 이 생판 모르는 이상한 놈의 차에 탈만큼.

믿을수없는 이 요상한 상황에,

그래도 설마해서…

어떻게 해서든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아이인가?

“시아 있는곳으로 가는거야. 시아를 구하고 싶으면, 타. 시간이 없어”

민우는 잠시 생각했지만, 분명 가지 않는것이 좋을거라는것도 짐작했지만,

무슨일인지 몰라도 엮여선 안될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어쨌든 결국엔 자신이 가야할것 이라는걸 알았다.

개스 안넣어본 놈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피식 웃었다.

이 미친놈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 확률이 아무리 작은확률이라도, 정말 시아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더구나 위태롭다면…?

놈의 표정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민우는 어떻게 해서든 시아를 돕고 싶었다.

둘이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놈은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가더니, 커다란 홀을 지나,

넓은 수술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에는 이상하리만치 아무도. 없었다.

“여긴 뭐야? 시아는?”

그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차. 인. 석 이다. 난.”

“시아는 어디있는데?”

“저기. 유리창 건너에…”

시아가 수술침대에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민우는 놀라서 그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했고,

차인석은 그를 막아섰다.

“시아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수없어.”

민우는 알수없는 표정으로 차인석을 돌아보았고,

“너의...신장이 필요하다.”

“....뭐?”

그때, 두명의 의사들이 뚜벅뚜벅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아의 아버지…!

“아...저씨…?”

아저씨도 놀란듯 했다.

“민우야? 니가 여길 어떻게?”

민우는 차인석을 돌아보았다.

차인석은 아저씨에게 미소지었다.

“민우가...해주기로 했어요, 아저씨.”

“민우가? 민우가 왜?”

“시아를 위해서라면” 차인석이 민우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까짓거 아무것도 아니라던데요?”

시아의 아버지는 아니라는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렇지, 민우 너...젊은녀석이 이런.”

“시아가 신장이 필요한게...사실인가요?”
민우가 물었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거야. 의사선생님 의견도 들어봐야하고, 여러가지 검사도"

“이미 검사는 다 끝냈습니다. 피검사도 했고, 조직검사도 마쳤구요.”

차인석이 웃으며 말하다가, 곧 정색을 하고 돌아보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들어가야 해요.”

사실 민우는 신장이건 뭐건 빼주는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별로 아까울것도 없었고,

더구나 시아를 위한거라면…그녀가 위태롭다면.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차인석이라는 이 녀석이. 아주 많이...너무나 많이 이상했다.

그때 의사와 간호사 몇이 민우의 두 팔을 잡고 인도하기 시작했다.

민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인석의 표정을 놓치지도 않았다.

뭔가 한숨 놓아다는듯한 그의 표정. 안도의 숨...
이건 아니다.

이건 분명히 아니다, 싶었지만,

고요히 마취중인 시아를 돌아보며, 저항하지 않았다.

민우는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듯,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사, 간호사, 여러명의 그들은 민우와 마취주사를 준비하는 의사 한명을 남겨놓고 유리문을 단단히 잠궜다. 시아 아버지는 시아가 있는곳으로 사라졌고,

유리문 건너로 차인석이 팔짱을 낀채, 묵묵히 민우를 보고 서있었다.

민우와 의사가 남은 수술실에는 환자용 recliner의자만 하나 있었다.

“앉으시죠.”

민우는 의사와 마주보았다.

“뭐 하는겁니까? 수술을 이런곳에서 해요?”

“설명, 못들으셨습니까?”

“신장...이 필요하다구요?”

“아...신장.” 의사는 피식 웃었다.

분명 그 웃음에 답이 있었다.

민우는 지금 아주 큰 덫에 걸린것이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유리문을 깨고 나가야 한다고. 민우의 직감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죽더라도 설명은 듣고 죽었으면 하는데.”

“죽다니요? 우리들은 모두 신장을 두개씩 가지고 태어났지요. 하나쯤 없다고...죽지 않아요.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어 쓰면…” 그의 미소가 섬��했다. “더 오래 잘살죠.”

그는 민우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자. 여기 앉으세요.”

민우가 그의 팔을 내팽겨쳤다.

그러자 차인석이 싸인을 보냈고,

의사는 주머니에 숨기고 있던 마취약 솜뭉치로 민우의 코와입을 막았다.

그리고 민우는…

정신을 잃었다.

한참이 지나...정신이 돌아올듯 말듯... 따뜻한 햇살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통스러웠다.

모든것이 부서졌다가 다시 붙은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깨어나셨습니까.”

겨우 눈을 뜨려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조금 더 쉬시지요. 말씀하신데로 수면제 투입하겠습니다.”

“잠깐.”

“예. 말씀하십시오.”

“여기는...어디…?”

그 병원인가? 어두운 지하같은 곳이었는데.

“안정하십시오. 꿈을 꾸셨습니까?”

“뭐…?”  뭔소리야….

민우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도저히 일어나 앉을수가 없었다.

“수술은...끝난건가요?”

“수술이요?”

민우는 다시 눈을 뜨려 애써보았다. 따뜻한 햇살이 분명 느껴졌는데, 두눈을 뜰수가 없었다.

“아, 다치신것은 치료가 끝났습니다. 수술까지는 아니었구요.”

“뭔소리야!”

겨우 팔을 들어 만져보니 눈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오박사가 다녀갔습니다. 오늘은 안정을 취하시라구요. 수면제 투입하겠습니다.”

저항하려 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민우는 다시 잠들었고.

한편.

주유소.

“야 민우 이 자식! 오지말랬더니 왜 또 왔어? 며칠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그는 피식 웃었다.

“에이, 아저씨, 나 덕분에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놓고, 왜 그래?”

“뭐야? 이 자식이, 너 간 다음에 그 미친놈 난리 벌려놓은거 치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줄 알어, 내가?”

“그래도 그 미친분이 돈을 엄청 주셨잖아. 안그래?”

“야! 너 말하는게 왜 그래? 어디서 반말이야?”

“아, 나 말하는거? 아, 그쪽이 자꾸 반말을 하길래. 아...그냥. 좀 피곤해서. 사실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은 이만 갈께. 응?”

“녀석아! 온김에 걸레질이라도 좀 하고 가.”

그는 또 피식 웃었다.

“걸레질은 아저씨가 하셔.”

“엥? 저 놈이...대체 왜 저래?”

주유소에서 나온 그는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미..친...놈.” 아저씨는 화려한 스포츠카를 몰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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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는지, 다시 정신을 차린 민우는 애써 눈을 떠보았다.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았지만,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눈을 떠보니, 온통 어두움이었는데,

얼굴을 만져보니 붕대는 이제 없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는데,

폭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이 느껴졌다.

민우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불을 켜보려고 손을 주위로 더듬어 보았다.

작은 램프가 만져지고, 한참을 헤매다 작은 불을 켰다.

그런데, 호텔인가? 넓고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불이 희미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가구나 모든것이 아주 최고급 호텔의 그런것들 이었다.

아… 깨질것 같이 아픈 머리를 붙잡고, 민우는 일어섰다.

천천히 방안을 걸어다니다가,

벽쪽에 희미한 모습을 발견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구야, 거기!”

유리벽인가? 유리창?

그는 그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는데,

거울이었다.

그런데

희미하게 거울에 비춰진 모습에,

그는 비명을 지를수밖에 없었다.

믿을수가 없었다.

이건. 악몽이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좀 더 밝은 불을 찾아 헤맸다.

거울옆에 램프를 발견하고,

그가 불을 켰을때,

거울안에 서있는 모습은

그녀석.

차.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