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어차피 난 언제나 혼자였고,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세삼스러울거 없어.

얼굴? 얼굴 좀 달라졌다해서

내가 어디로 간것도

아니고.

그까짓 미친녀석 왜 이런짓을 했는지 알아내는것 조차 에너지 소모고 쓸데없는 짓이지.

나는. 그냥 나의 갈길을 가면 돼.

그는 힘을 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둘러 기차역이 있는곳으로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그들이 먼저 진을 치고 있었다.

가드 복장은 아니었지만 서성거리는 경호원 몇이 보였다.

별수없이 뛰어서 도착한 곳은

버스 정류장인가…

시골의 작은 정류장이었다.

버스를 타려다가 보니, 버스안에서도 서성이는 몇몇이 보였다.

민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뒤를 돌아보니 털털대며 택시가 하나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는 우선 택시를 잡아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사실은요.”

운전 기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서울에 가야하는데요...제가. 지금은 가진것이 없습니다.”

“그럼 내리세요.”

“부탁드립니다. 나중에라도 꼭 지불하겠습니다.”

아저씨는 잠시 그를 돌아보더니,

“빨리 안내려?”

“아, 저...저 이 코트...이걸..드리겠습니다."

그는 급히 기사에게 Gucci 라고 써있는 코트의 레벨을 보여주었다.

“가짜죠?”

“아닙니다. 진짜...맞아요. 확인해 보시면 될것입니다.”  설마...장관이라는 사람 아들이...짝퉁을 입고 다니진 않겠지.

“헛. 참나.... 어차피 내가 서울 가던 길이었으니 속는셈 치지뭐. 대신 합승 받을거니까,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민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민우가 한국에 아는 사람은…

그래.

형...그 돈에 환장한 놈과 희주 뿐이다.

물론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서울에 도착한 그는 우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그를 받아주는 곳을 찾는것이 당연히 힘들었지만,

거의 빌다시피 하여 거절하지 못하는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겨우

어느 작은 시장 근처

골목식당에서 청소하는 일을 시작할수 있었다.

돈도 처음에는 받지 않고, 그저

청소를하고, 부엌구석에서 잠만 얻어자면 되었다.

우선은 숨어지내는 것이 급했고,

그다음일은 아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아이고...씻어놓으니 멀끔 하구먼? 왜 그렇게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녔데?”

식당 아주머니는 맘 좋으신 분이었다.

그래서 민우는 성심 성의껏 청소를 해드리고, 식당일을 도왔다.

“어째 저렇게 착하고 이쁘노...멀끔한 놈이 왜 그렇고 돌아댕겼데? 너 혹시 나쁜짓 하고 도망다니는겨?”

민우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웃었고..

그런 그를 아주머니는 점점 더 믿고 의지하셨고,

아주 아껴주시면서 잘해주시기 시작하셨다.

식당에서 일하며 조용히 지낸지 한달쯤 되던 날...

“이봐 젊은이. 오늘은 내가 백화점엘 좀 가야 허겄어.”

“네. 다녀오세요.”

“아니. 니랑 같이 가야허겄다고.”

“..예?”

“그니까 내가...혼자 시내 나가본지가 오래라. 니가 좀 빠릿빠릿하게 데리고 댕길수 있것남?”

“식당은 어쩌구요. 그리고 저도 서울을 잘 몰라서...”

“아이고, 아침에 쬐께 닫는것이 무슨 대수라고. 우리 손녀딸이 오는 날이라 내가 좀 빼때고 광내야 쓰겄거든.”

“아...그렇지만..”

“목욕탕도 댕겼다가, 백화점가서 좋은 선물도 하나 사둘려고 잉?”

“아...예…”

“아이구...어서 저리 이쁜놈이 굴러 들어왔누.”

식당 아주머니는 민우를 참 예뻐라 하셨다.

그는 우선 무사히 숨어지낼수있어서 감사했고.

아직 그 놈들이 인석을 찾고 있을것이니…

지금 이대로가 차라리 좋았다.

다른 계획은 없었지만…

늘 조금 안심이 된다 싶으면, 시아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 어딘가가 아프게 쓰려오곤 했다.

아주머니를 모시고 백화점에 도착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민우는 어릴때 한국을 떠나와서 이렇게 까만 머리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에 나온게 처음이었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이것저것 만져보시는 식당 아주머니 곁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인석씨!”

민우는 어깨를 잡는 손길에 온몸이 굳어지는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듯 피부가 엄청나게 고운 여자하나가 놀란 얼굴로 그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녀의 뒤로 백화점 직원들이 줄줄히 따라 서 있는것을 보니, 그녀는 이 백화점에서 높은 직위를 맡은 사람인것 같기도 했다.

“인석씨!  인석씨 대체….?”

“아...아닙니다. 잘못보셨습니다.”

“인석씨 이꼴이 뭐예요?”

“잘못 보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민우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야! 니 어딜가노!” 아주머니가 그를 덥썩 붙잡으셨고,

그녀도 질세라 쫓아왔다.

“인석씨!”

그녀는 민우를 돌아세웠다.

여자를 밀쳐낼수도 없고, 민우는 두손을 들고 그녀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잘못...보셨습니다.”

“제정신이 예요?  내가 어떻게 인석씨를 잘못 봐요?”

이 여자는 누구지?

“자, 다 샀응께. 가자.”

아주머니가 민우의 손을 끌어내셨다.

그러다가 그녀를 보셨고,

“뭐여. 애인인겨?”

“아...아니요. 모르는 사람인데요. 가시죠.”

그녀는 황당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민우를 계속 쫓아 뛰어왔다.

“인석씨! 이봐요!”

서둘러 뛰어나오긴 했지만, 그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급하게 어딘가에 전화를 걸으며 계속 그를 쫓아 뛰어왔다.

아무리 서둘러도 아주머니는 느리셨다.

“왜 그러는겨?”

“저기요, 아주머니. 이따가 식당에서 뵐께요. 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여기서 식당을 어떻게 찾아가라고?”

아… 민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택시...택시 잡아드릴께요. 자, 이쪽으로요.”

“너...정말 무슨 나쁜짓 했냐? 왜 그리 당황해서 도망질이여?”

“그런게..아니예요. 아닌데,”

이미 늦었다.

어디서인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민우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머니가 타신 택시문을 닫아 드리고,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지만.

막다른 골목.

그는 이제 더 이상 피할수 없는 구석에 몰려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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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페에서 식사를 마치고 민우는 서둘러 시아를 호텔에 내려다 주고 오피스텔을 보러간다며 도망(?)하듯 뛰어나갔다. 마치 아주 급한일이 있는 사람처럼.

시아는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민우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어서…

미국에서 쭉 살아서 한국사정을 잘 모를텐데 뭐든 척척 해내는 그의 모습이…

자꾸 시아가 잘 아는 누군가와 겹쳐서…

그러나 그럴리가 없어서 그녀는 고개를 내젖고. 또 가로젖고….

시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드디어 용기를 냈다.

신호는 계속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한국에 오면...꼭 연락한번 하라던…

차.인.석.

시아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내가 미쳤나봐.

아니면...왜 갑자기 차인석이 생각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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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를 골목길에서 붙잡아낸 그들은 그를 끌고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친 그의 앞에.

그 녀석…

그 미친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차인석.

“어후…”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놈...진짜…”

민우는 있는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두 팔이 단단히 잡혀버리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혀졌다.

굉장한 덩치에 키가 천정을 뚫을것같은 장정 두명에게 그의 두 팔을 단단히 붙잡힌채,

민우는 자신의 모습을 한 차인석을 마주보았다.

그는

피식 웃고 서있었다.

“야 이 멍청한 자식아.”

하며 그는 민우의 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창자가 튀어나올것 같은 쎈 주먹에 민우는 머릿속까지 하얘졌다.

“와...진짜 오랜만에 운동을 하게 만드네 이 자식이…”

신음하는 민우를 경호원들이 다시 꽉 붙잡아 세웠고, 인정사정없는 차인석의 주먹질이 계속 되었다.

민우가 정신을 잃을만큼 얻어 맞은 후 쓰러지자,

차인석은 여유롭게 땀을 닦고, 거울까지 들여다 보며 깨끗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얼굴은 차마 못때리겠네..…어?”

차인석은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완전히 낙 아웃되 쓰러져 있는 민우의 턱을 집어 들었다.

“니 머리가 나쁜걸 원망해라. 멍청한 짓을 한 니 탓을해. 난 너랑 다시는 보고 싶지 않거든? 우리가 만나면 늘 이런식일수 밖에 없는거니까… 잘 살아보라고 했지? 대체 왜 쓸데없는 짓을 해?

나는...이런짓하는거 정말 싫어하거든? 맞는 너보다, 연약한 내 손. 그리고 이 여린 내 마음이 더 아팠다고. 응?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다시는 서로 만날일 만들지 말라고.

알았어?”

그때였다.

이제 다 끝났다 싶었던 그 때.

“인석씨!”

아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인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야, 다들 어서 튀어.”

그의 명령에 모두 서둘러 뛰어나가기 시작했고,

꺄악!!!!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민우의 곁으로 뛰어들어왔다.

인석이 그녀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니들 뭐야!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인석씨! 괜찮아? 괜찮은거야?”

인석이 당황한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열받은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봐, 이런 누추한곳에 돌아다닐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여자 혼자 여기서 뭐하는거야?”

“야! 너 이 나쁜놈! 누구야! 이 사람이 누군줄 알고. 감히!”

경찰차와 싸이렌 소리가 울렸다.

인석은 정말 열받은 표정으로 잠시 하늘을 원망하듯 노려보더니, 어두운 창고뒷문으로 뛰어 도망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잡아! 잡아요!!!”

그녀가 미친듯이 소리질렀고,

동행한 경찰들이 그를 쫓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민우를 보며 그를 붙잡아 안았다.

이 여자는….

대체 뭐야?

“어떻게 된거예요, 인석씨. 이게...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내가...묻고 싶은 말이군요.

하는 생각을 하며 민우는 힘겹게 일어섰다.

“병원으로 가요! 깡패들을 만난거예요? 대체!”

“나를 좀…” 그는 숨을 거칠게 내 쉬며 쓰러질것 같은 몸을 겨우 지탱하고 일어섰다.

“인석씨!”

“데려다 줄수...있어요?”

그녀는 조용히 운전하기 시작했고,

옆좌석에 앉은 민우는 신음이 새어나오는것을 애써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왜 병원에 안가려는건데요? 대체…”

그녀가 잠시 그를 돌아보더니,

“아무것도...대답해 줄수가 없어서. 미안하네요”

“인석씨!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예요? 왜 연락도 없이 그렇게 사라진거예요?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기나 해요?”

민우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애인? 친구?

차인석의..여자?

“차...세워 줄래요?”

그녀는 기가막히다는듯 한숨을 쉬었다.

“왜요?”

“미안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제가 갈께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혹시...기억...상실증? 드라마에서만 보던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거예요?”

그럴까? 차라리 그렇다고 할까?

민우는 기가차서 피식 웃었다.

“미안합니다. 저는 차인석이 아니예요.”

“인석씨 정말… 이상하군요. 인석씨가 아니라면서 -차- 인석이란건 또 어떻게 아는데요?”

“어쨌든. 차나 좀 세워주시죠.”

그녀가 급정거를 하며 끼이익...차를 옆으로 틀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신데요? 인석씨랑 쌍둥이 형제라도 되요?”

“내 이름은. 주민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