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에도 항상그랬던것처럼 한 일주일 전부터 김치를 담고, 녹두빈대떡을 부치면서 설날에 먹을 음식을 준비를 했습니다. 김치를 만드기 전에 혹시나 고추가루가 충분한지 소금이 있는지를 알아 보고는 장에 가서는 필요한 배추와 무를 박스채 사 와서는 김치와 깍두기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식구들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몇명이 먹겠다고 이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잠깐 나기는 했지만, 이제는 환갑이 되는 나이인지라, 얼마나 더많은 설날을 더 보낼수 있을까 라는 마음과 함께, 이왕이면 설날기분은 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이런 일을 준비 하면서- -이왕이면 동네 아줌마들이라도 함께 할수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내가 어렸을때의 설날 준비를 하시던 할머니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 친척들과 이웃 아줌마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했던 기억이 난 것 입니다.
설날 한달 전부터, 보통때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 놓았던 광에서, 제사상에 놓을 놋그릇들을 다 꺼내 하나씩 광을 내기 시작했고, 커다란 제사상을 꺼내서 칠할것은 칠해서 말려놓은 후에 마른 행주로 닦고 하면서 설을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쌀을 물에 불려 떡방아간에 보냈었고, 만두속을 준비해 만두를 만들어 놓고, 상에 올릴 백김치를 만들고, 대추와 밤을 사서 정리 해 놓고, 나물을 하나씩 정성껏 준비를 했었습니다.
물론 이런일들을 할머니 혼자서 하시지는 않았었습니다. 집에서 할머니를 도와 주시던 아줌마가 계셨었고, 특히 전을 부치던 날은 동네의 여럿 아줌마들과 가까이 사는 친척들이 와서는,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면서, 부엌과 마당 여러곳에다 연탄불을 준비해서 후라이 팬을 올려 놓고는 일을 했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는 기름냄새 맡고 얼쩡거리던 어린 우리들에게 먹어 보라고 금방 부친 전 한점씩을 집어 주시기도 했었고, 젯상에 올릴 전을 준비한 후에는, 혼자서 살고 계시는 이웃들에게 한접시 씩을 싸서 보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도 혼자서 빈대떡과 야채전을 부치다가 (나중에는 일하고 있는 딸대신 딸친구가 와서, 가르쳐가면서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런 생각이 난 이유는 어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 갑자기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 Kitchen table wisdom ( 부엌 식탁에서의 지혜(?)" 라는 책으로 이런 글이 있습니다.
"누구나에게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시간을 소비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삶의 가치를 기억할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수많은 편리한 기계를 갖고 사는 요즘의 우리들은 잘살고 있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의 이야기를 다시금 들어가면서 사는게 필요하지 않나라고 보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게 되면서 전문가들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식탁에서 나눌 시간이 적어질수록, 어떻게 하면~~이 라는 제목의 책들이 책방과 책장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은, 사람들의 실제로 일어 난 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중단하게 되면서, 듣는 방법을 잊게 되지 않았나 보고, 의미를 찾는 방법을 모르게 되면서, 별것 아닌 것들로 시간을 채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나누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방관하는 이들로서, 결국 외롭게 혼자가 되어 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들은 들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살아 왔던 모든 이야기들을, 기억 깊은 어느 곳에 숨겨 놓게 됩니다. 지니고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 우리가 준비가 되는 능력이 되었을 때까지, 우리는 읽고 있지를 못합니다. 언젠가 그런 때가 되면,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었던 의미를 느낄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일들은 알지 못한채 무심코 모아 놓았던 중요한 지혜의 한 조각이들이라고 볼수가 있을 겁니다. 삶의 충족함은, 보이는 성공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삶의 풍부한 경험을 하면서 그리고 다른이들과 함께하는 내면의 경험을 나누면서 오는 거라고 보게 되는 겁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되면서 그들과 함께 식탁이 앉아서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여러 다른 나라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나라의 풍습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 만나게 되면 문을 미리 조금 열어 놔서 내가 쉽게 들어가기 좋도록 하거나, 커피와 케잌 한조각을 미리 준비해서 내 놓으면서 손님에 대한 존중을 해 주곤 합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 그렇게 일에 대해 이야기가 식탁에서 시작이 되지만 결국 살아가는 이야기로 흐르게 되면서 더욱 친근한 관계를 맺을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병으로 누워 계신 부모님 이야기, 자신이 살았던 나라의 풍습,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들을 하면서, 후회, 두려움, 아픔, 기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공감대를 갖게 됩니다. 가발을 쓰고 긴치마를 입은 정통 유태인 아줌마도, 이집트를 떠나 이라크에서 오래 살다가 미국에 오게 된 아줌마도, 치매가 심해지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도미니카 아저씨도, 삶이 주는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 하지만, 함께 있어줌으로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쉴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결국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만 하는 나만의 문제일수가 있지만, 서로에게서 다시 설수 있는 기운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욱 준중하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더욱 수월해 지는 느낌도 받습니다. 일 때문에 만났지만, 결국은 한 인간이 다른 한인간을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이 되어, 이야기하는 동안이나마 따뜻한 우리만의 작은 세상이 되어주는 기쁨을 알게 됩니다. 눈을 바라보며 식탁에 앉아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누면서, 서로에게 안락처가 되어주어, 삶의 한 순간이나마 풍성해질수가 있다면, 후회가 적은 삶을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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