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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기도

기도와 성령의 은사 오 은정 (sungshim7614) 2014-8-7  09:28:16

저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오프라인을 통해서 직접만나기도 하지만 미국의 지역적인 특성상 전화로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어느 자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기도과정중에 체험하게 되는 맛보기체험에 걸려서 그게 은사라고 밀어부치고 있는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진실로 주님을 마주하러 앉아있게 되면 주님을 체험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처음에 오는 아주 초신자로서의 체험은

저의 경험상  거의가 대부분은 주님으로부터오는게 맞아보입니다.

마귀가 할일없이 

갈급한 영혼에게 단비를 부어서 주님을 만나게 하지 않을거라는게 제 믿음이지요.

그래서 아주 초신자들이 성체조배나 묵주기도, 또는 성령대회에서 체험한것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나가기를 

권합니다.

초신자들은 한동안에 대단한 충만함속에서 기쁨으로 나가게 되지만,

또 그안에서 말할수 없는 지식의 갈증속에도 있게됩니다.

여기서 자기들이 가진 성격으로 길을 가게 되기도하고,

그것이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서 지식의 욕구를 체우게되면,

우리는 영적인 교만의 단계에 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자는 알수 없죠.

아직 이 시간에서는 자기를 볼수 있는 내면의 눈이 뜨지 않기때문에

이때부터는 좌충우돌 하면서 공동체안에서 분란의 대상이 되어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주님의 이끄심이라도 표한할수 있는것은 

자신이 원하는 길안에서도 충분히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때문입니다.

여기서 많은 기도자들이 분별과 식별의 시간속에 있게 됩니다.

물론 기도자의 인격은 여전히 자신그대로입니다.

아직은 기도자 자신이 자신을 보지 못하기때문에 인격이 개선되지는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분별과 식별을 논하게 되면서

기도자는 마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악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과거의 많은 성인성녀들이 이부분에서 고통을 강요당하였고,

그래서 순종으로 성화를 이루었음을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참많이 하고 있습니다.

모든학문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개방되었고

인식들이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들이 생겨나고

우리들은 그런 문화속에서 생각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해로, 저는 

기도자의 인격과 성령을 생각합니다.


전화를 한 자매의 핵심내용은 

기도자의 인격이 완전치 않다면, 그안에 깃든 성령은 악령이라고 자신합니다.

과연 그러할까를 아주 잠시 생각해보고는 

제가 생각하는 답을 해주었답니다.


"자매님은 참 잘살고 계실것 같군요!

제 체험으로 저는 성령을 제 안에 담을 그릇이 안됨을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부족하고,

인격도 상처가 많아서 꼬여있습니다.

그런데그동안에  제안에 오시는 성령은 이런 저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저의 인격을 넘어서서 당신의 일을 하시기때문입니다.

만일에 성령께서 저의 인격을 보시고 저를 사용하신다면

저는 정말 해당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저를 움직이시는 성령은 성령이 아니라 악령이라고 말해야할까요?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는 제안에서 저를 움직이시는 분이 성령인지, 악령인지조차도 잘 분별을 못하겠어요.

자매님으 판단으로 보면 

성령은 성인, 성녀들만을 쓰셔야할건데,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가는 마당에 그정도로 인격이 되어서 훌륭한 도구가 될만한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넘어서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당신의 뜻을 드러내기때문에

기도자 각개인의 인격만으로 성령이다 악령이다를 우리가 말할수 없을것 같은데요.

기도자의 인격도 각자에게 온 성령을 따라서 그 빛으로 자기를 주님께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선이 되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특히 성령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인격을 고치고자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성령의 빛을 받으면

자기가 조명되어지니까 고치지 않을수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성령받았다고 모두가 다 자기를 볼수 있을까요?

기도과정중에 감성이 열리고 온갖체험으로 몸으로 하게 되는 시간까지 기도자는 자기를 볼수 없어요.

그때까지는 열심히 자기가 하느님인양 길을 가게 되는게 

저의 경험입니다.

설령 기도하는 사람이 분란의 가운데에 있다고 해서 그가 악령이 깃들어있다고 말해선 안됩니다

기도자가 자기안의 것들을 풀어내느라 그런시간을 보낼수도 있거든요.

그런 과정도 각사람의 시간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기도자가 좋은 인격이 아니어도, 그가 분명히 주님앞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다면

그는 그 시간들을 잘 격고서 자기를 보게 될것입니다. "


그 자매는 저의 이야기를 수긍을 했고, 

가만이 더 들어보니, 이 자매는 기도과정중에 여러가지 체험하는 단계에서 

그냥 지나가는 체험들을 붙잡고, 성령의 은사니 아니니 하면서

거기에 대한 감성을 확대시키는 바람에 소용돌이에 빠져있게 된 경우로 보였어요.


몇번의 전화를 통해서 그자매가 많이 진정이 되었고,

저에게 이런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해서 

저의 생각들을 여기에 적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모두가 주님안에서 풍요로운 열매를 키우는 8월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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