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줄리아의 친절한 미술관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 1 줄리아 리 (victoria808) 2014-5-27  09:36:33

Vincent van Gogh - Portrait of Pere Tanguy, 1888

빈센트 반 고흐 - 탕기 영감의 초상

 

 

“자네 나를 아주 멋지게 그려주어야 하네!”

“탕기 영감, 내 실력 몰라?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이 선물한 물감으로 내가 최고의 초상화를 그려 줄 테니!"

 

1888년 파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있는 작은 아파트. 비쩍 마른 몸, 튀어나온 광대뼈, 신경질적으로 뻗은 붉은 머리카락, 꾹 다문 입술, 광기 어린 초록색의 눈동자, 남루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이제 막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간밤에 먹고 마신 음식 찌꺼기며 술병들이 널브러져있었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쉰 살의 중년 남자처럼 폭삭 늙어버린 이 사내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다.

 

사내는 이제 막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느 노인의 초상화를 그릴 참이었다. 노인은 이미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노인의 등 뒤에는 고흐가 수집한 일본 판화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시 고흐는 여느 파리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판화, ‘우키요에’에 푹 빠져 있었다. 평면적 구성,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선 표현, 원색의 색상 등 우키요에의 독특한 매력은 이후 고흐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난 고흐가 캔버스를 펼쳤다. 손끝에서 시작된 긴장과 떨림이 캔버스를 맞닿아 있는 붓끝으로 옮겨갔다. 고흐의 거친 붓놀림은 점점 빨라졌다. 색채는 마치 태양 빛이 캔버스 위에 뿌려진 듯 밝고 강렬했다. 검은색, 회색, 갈색 등 어두운 색채만 사용해 그림을 그렸던 과거와 달리 캔버스 위에는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파란색 등 밝고 화사한 색들이 춤을 추듯 넘실거렸다. 고흐는 물감을 상당히 두텁게 발랐다. 그리고 그 색이 미처 마르기 전에 다른 색을 거칠게 덧발랐다. 캔버스에는 붓이 움직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겹겹이 쌓아 올린 물감과 휘몰아치는 격정의 붓 터치, 밝은 보색 속에 꿈틀대는 색채의 힘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초상화는 고흐가 특히 자신 있어 하던 장르였다. 초상화에 있어서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과 같은 정확한 묘사가 아닌 모델의 영혼도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델의 영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는 고흐의 꿈은 절친한 벗, 탕기 영감을 만나면서 이루어졌다.

 

 Self-portrait (Van Gogh, 1887).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stagram: @omitzek

 

Vincent van Gogh - Self Portrait,  1886

파리에서 지내면서 그린 자화상

 

 

2년 전인 1886년 2월, 고흐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파리에 왔다. 당시 모든 예술은 파리로 통했다. 오페라극장, 연극공연장, 공원, 카페 등이 줄지어 들어선 거리는 매일 잘 차려입은 멋쟁이 신사들과 한껏 멋을 낸 여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미술사 최대 혁명이었던 인상주의가 절정을 이루면서 세계 각국의 화가들도 파리로 모여들었다. 파리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창조력과 상상력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고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네덜란드 보리나주 탄광지대에서 올라온 가난한 촌뜨기 화가에게 파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눈부신 인상주의’가 있었다. 파리에 오기 전 네덜란드 회화와 프랑스 사실주의 회화만 알고 있었던 고흐에게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마치 혁명과도 같았다. 그들은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색을 화폭에 옮겨 담고 있었다. 자유분방하고 생기가 넘치는 인상주의 작품을 본 고흐는 그동안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이 얼마나 구식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Vincent Van Gogh - Portrait Of The Colour Merchant P&egravere Tanguy, 1887     

 

           Vincent van Gogh - Portrait of Pere Tanguy                

                               고흐가 그린 탕기의 또 다른 초상화                               

 

 

고흐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동생 테오가 한 노인을 소개해 주었다. 그가 바로 그림 속 주인공 탕기 영감,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Julien Francois Tanguy 1825~1894)였다. 탕기 영감은 몽마르트르의 클로젤 거리에서 물감, 캔버스 등을 파는 화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화가들이 돈이 없어 붓과 물감 등 화구를 집어들고 돈 대신 내민 그림을 그는기꺼이 받았다. 외상으로 캔버스를 주고 사람들이 인정하지도, 그래서 팔리지도 않는 그림에 기꺼이 미리 그림값을 내주기도 했다. 가난한 화가들의 사정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탕기 영감은 그렇게 가난한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밀레처럼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들을 위해서는 직접 화구를 짊어지고 그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화가들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화가들의 생활을 돕기도 했다. 당시 파리의 많은 화가들은 이런 그를 '페르탕기(Pere Tanguy·탕기 아저씨)‘라고 부르며 아버지처럼 따랐다.

 

마땅한 수입원도 없이 동생 테오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던 고흐에게도 탕기 영감은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그는 다른 화가들보다도 고흐에게 좀 더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탕기 영감이 고흐의 천재성을 알아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고흐가 돈이 없어 작품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탕기 영감은 캔버스도, 그 캔버스를 채울 물감도 사기 어려웠던 고흐를 위해 그림을 받고 각종 화구를 내주었으며 당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고흐의 작품에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흐의 그림을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기 위해 종종 그의 그림을 화방에 전시해주기도 했다.

 

탕기 영감은 고흐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여리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고흐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며 고흐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고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 해주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 탓에 화가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고흐를 위해 피사로, 베르나르, 로트렉 등 인상주의 화가들도 소개시켜주었다. 이들에게 고흐가 아직 파리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니 많이 이해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교류는 고흐의 회화 세계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고흐는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회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네덜란드 시절의 어둡던 그림은 점차 밝아졌고 강한 보색의 대비 등 대담해진 색채를 사용하게 됐다. 붓 터치는 여느 화가들처럼 짧고 간결해지다 마치 점을 찍 듯 가는 선을 반복하는 형태로 발전해갔다. 거친 터치로 화폭 위에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기도 했다. 훗날 거장 고흐를 탄생시키는 그의 독특한 회화 세계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2부에서 계속_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