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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친절한 미술관

여름과 가을 사이의 저녁 산책/ 펠릭스 발로통 줄리아 리 (victoria808) 2015-10-7  08:46:04

Felix Vallotton

​Evening on the Loire

1923

 

 

 

 

요즘처럼 바람의 냄새가 달라지는 여름과 가을 사이 계절이 되면 종종 저녁 산책을 나가곤 합니다. 열어둔 창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거나 입고 있는 니트의 감촉이 유난히 포근하다고 느껴질 때 혹은 동네 소박한 선술집의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날 때 길지 않은 산책을 나가는 것이죠. 이 계절은 너무나 짧아서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금방 추워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생긴 버릇입니다. 소란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간 자리는 호젓한 분위기가 떠돌아다닙니다.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강변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잔잔히 일렁이는 강과 그 위로 드리워진 긴 그림자, 서서히 퍼져 나가는 붉은 노을을 떠올려보세요. 어때요, 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시죠?

​해가 지고 나지막한 어스름이 내리고 있습니다. 하늘은 저문 해가 남긴 빛으로 가득하고 강에는 긴 나무 그림자가 넘실댑니다. 초가을의 무성한 숲에서 번진 가을 냄새를 실은 바람이 강물을 거쳐 싱그럽게 스칩니다. 노을 빛에 따라 어디는 분홍색, 저기는 노란색을 띠는 모습들이 참 곱고 정겹습니다. 저 멀리 추수하는 사람들도 보이는군요. 잔잔한 프랑스 시골 강가의 풍경이 차분하면서도 장식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펠릭스 발로통(Felix Vallotton 1865~1925)은 스위스 출신의 나비파 화가입니다. '나비(Nabi)'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하는데요, 나비파 화가들은 고갱의 영향을 받은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회화를 그렸습니다.

사실 가을 저녁 강가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강을 지켜보는 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런 일처럼 느껴지고 쌀쌀한 기운은 몸속으로 파고듭니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멀리까지 걸어갔다가 방향을 바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면 '이제 집에 가야하나' 싶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저는 참 좋습니다. 지난번 산책길에서는 이곳에서는 흔치 않은 길고양이를 두 마리나 만났습니다. 낡은 벤치 위에 서로 떨어져 앉아 있는데 딱히 할 일이 없는 저는 그 모습도 유심히 바라보았지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 함께인 듯 따로, 지나가는 계절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뭐 그런 것이 궁금해졌거든요. 말을 걸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들은 휙 달아났는데, 제가 그들의 사색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괜스레 미안해졌습니다.  다른 곳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 되어버렸는지 모를 여름과 가을 사이. 샌디에고도 이 짧은 계절 사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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