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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친절한 미술관

달랑거리는 겨울, 추억 Part 1 줄리아 리 (victoria808) 2014-3-1  13:29:01

피에르 에두아르 프레르(Pierre Edouard Frere 1819~1886)

<어린 가정부>

1857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한 풀 꺾이고 나서야 비로소 추웠지만 정겨웠던 어린 시절의 겨울이 생각났다. 창백한 눈썹 달 아래 구슬피 울던 부엉이 울음소리,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과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 문풍지를 울리며 불던 겨울바람, 사랑채 구석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누런 메주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품처럼 따뜻했던 아랫목….

 

#Part 1

 

난 여섯 살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남매를 키워주셨다. 시골집은 흙을 켜켜이 쌓은 담틀 벽에 한지 창호로 사방을 두른 ‘ㄷ’자 형태의 작은 기와집이었다. 그날은 새벽부터 잠이 깼다. 딸랑 딸랑 두부 장수의 종소리에 이어 “이보소, 여기요”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랫목의 뜨끈함과 솜이불의 포근함에 꼼지락 거리던 나는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추운데 뭐 하러 나오노" 할머니는 차가운 새벽 공기에 어린 손녀가 감기에 걸릴새라 부산스럽게 나를 안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가마솥에 담긴 따뜻한 물로 내 얼굴을 씻기고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둘러 주었다.

 

할머니는 매일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 때문에 연신 눈을 비벼댔지만 밥이 다 될 때까지 부뚜막을 지켰다. 할머니는 중간 중간 왕겨를 한 주먹 집어 아궁이 속에 던졌는데 그러면 바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불이 더 거세졌다. 그사이 할아버지는 앞마당에서 장작을 팼다. 도끼질을 한번 할 때마다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부엌 구석에 놓인 난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슬슬 배가고파졌다. 난로 위에는 작은 냄비가 올려져 있었는데, 이미 구수한 된장국이 끓고 있었다. “아가 이거 잘 저스래이” 아침에 산 두부를 썰어 넣으며 할머니는 내 손에 작은 국자를 쥐어 주었다. 할머니의 된장국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달큰한 향이 올라오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국을 한 국자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그 뜨거운 기분을 어떻게 말로 옮길까. 마치 입천장에 불이 나는 듯 했다. 난 소리를 빽 지르며 입에 든 그 뜨거운 덩어리를뱉어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할머니가 얼른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입을 홀랑 데인 것이다. 입천장이 부어오르고 물집이 잡힌 나는 며칠 동안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입 안의 뜨거운 기운을 없애야 한다며 읍내에 나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오셨다. 입 안은 얼얼했지만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먹는 아이스크림은 꿀맛이었다. 게다가 누나 덕분에 횡재한 동생의 그 존경어린 눈빛이란.

 

프랑스 화가 피에르 에두아르 프레르(Pierre Edouard Frere 1819~1886)의 <어린 가정부>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나름 도시적인(?) 여자가 되었지만 그 당시 난 코 밑에 검둥이 뭍을 때까지 아궁이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길 좋아했던 시골 아이였다. 할머니가 아궁이 안에 넣어 준 고구마가 시커멓게 탈 새라 그림 속 어린 여자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그 앞을 지켰다. 

 

프레르의 작품은 소박하고 잔잔한 일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살림살이가 넉넉해 보이지 않은 어느 가정집 부엌. 한 소녀가 요리를 하고 있다. 요리라곤 하지만 준비된 음식은 낡은 난로 위에 끓고 있는 스프가 전부다. 어쩌면 당시 가난한 서민들이 주식이었던 빵죽인지도 모르겠다. 빵죽은 콩이나 양파로 만든 스프에 딱딱한 빵을 넣고 끓인 음식으로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밥쯤 될 것 같다. 자기 손바닥보다 더 큰 국자를 들고 아이는 냄비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빵죽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다. 하얀 모자와 앞치마가 너무 앙증맞다. 발그스레한 뺨과 작고 통통한 손은 또 어떻고. 하지만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배경과 어린 가정부라는 작품의 제목을 떠올리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를 하고 있는 아이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럽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간을 보다 입을 데지나 않을지 걱정도 된다. 그러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정겨우면서도 자연스러운 그의 작품 속에는 가난에 대한 은유나 연민은 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후의 온화한 햇살이 쏟아지는 주방 어디쯤에 걸어두면 좋을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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