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이 결혼은 절대 안 돼!” 잘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남자 쪽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아들이 말을 안듣자 아예 머리를 싸매고 눕기까지 하셨단다. 반대의 이유는 집안도, 직장도, 학벌도 아닌 ‘궁합’ 때문이었다.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 화근이었다. 점쟁이는 “여자가 도화살이 있어 남자가 끊이지 않겠고 결국 집안을 망하게 하겠다. 아들이 맘고생을 엄청나게 할 텐데 괜찮겠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금까지 연애한 게 놀라울 만큼 상극인데다 여자가 양 손에 남자를 쥐고 흔들다 결국 다른 남자한테 간다고 했단다. 남자 쪽 어머니는 그 말에 진행하던 결혼을 당장 중단시켰다.

이 말을 전하는 K양의 표정은 그야말로 멘붕.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궁합 때문에 결혼을 반대하는게 말이 되니?” 우리가 건넨 위로의 말로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K양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신 내림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신빨’ 좋기로 유명한 무당을 찾았으니 함께 가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껏 점이라고는 포춘 쿠키나 사주카페에서 재미로 봐본게 전부였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향내가 물씬 풍기는 리얼 ‘무당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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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 OO보살. 약 100m 만 걸어 나가면 가로수길이 나오는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에 간판도, 卍자도, 깃발도 없는 가정집이었다.맞게 찾아온 건지 긴가민가하는 내게 K양은 이렇게 은밀하게 운영하는 곳이랴 말로 진짜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보살은 우리 또래의 젊은 남자였는데 부스스한 머리에 빛바랜 티셔츠에 삼다디스 추리닝을 입은 모습이 ​비주얼만 보면 방금 전 만화방에서 짜장면을 흡입하고 나온 백수 삼촌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K양은 '신빨' ​강한 보살들은 겉모습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노라 재차 나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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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시작은 반말이었다. 오 카리스마. 보살은 K양과 남자의 생년월일시를 묻고 난 뒤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친척중에 요절하신 양반이 계시네” “집 근처에 대추나무 있지? 없어? 그래.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등의 말로 날 실망시키더니 "남자 엄마가 반대하지? 란 말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정말 강력한 한 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의 궁합은 무척 좋게 나왔다. 게다가 여자 덕분에 남자 운이 더 잘 풀린단다. 자식운도 좋고! 갑자기 내 운명도 궁금해졌다. 진짜든 가짜든 어떻게 나올 지 궁금했다. 나는 초보티를 팍팍내며 묻지도 않은 내 신상정보를 쫙 읊고 난 뒤 연애운과 결혼운에 대해 물었다. 정보를 다 알려줬으니 나는 너무나 쉬운 손님이었다. 30대 초반 싱글 여자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을터. 보살은 나에게 “돈이 남자를 대신하는 사주라 화려하지만 외로운 팔자”라며 “결혼운은 20대에 두 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를 놓쳤으니 힘들겠다”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당황한 내가 “그럼 저 결혼 못해요? 평생 혼자 살 팔자에요?”라고 되묻자 “38살에 한 번 더 있긴 있는데… 그냥 혼자 사는게 나" 라며 쐬기를 박았다. 로또에 당첨된다던가, 동쪽으로 가면 백마 탄 왕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괘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씩씩거리는 나를 보며 K양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후에 K양은 남자의 어머니를 모시고 그 보살집을 다시 찾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다. 그리곤 딸 쌍둥이를 낳더니 시댁 식구들의 아들 타령에 다시 그 보살을 찾아갔고 굿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전주에서 아들을 7명이 낳은 여자의 속옷을 얻어와 몸에 두르고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굿을 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또 딸을 낳았다. 아이고, 한심하다 한심해.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명색이 잘나가는 광고회사 과장이나 되는 여자가 점을 믿었냐며 비웃지만 난 그녀에게 욕을 해댔다. “나보고 혼자 살 팔자라고 했던 그 사기꾼한테 그 큰돈을 들여서 굿을 했단 말이야? 미쳤다 미쳤어!”

그때의 기억은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가 그린 <점쟁이>와 많이 닮아 있다. 젊은 청년은 지금 점쟁이의 거짓말에 속는 중이다. 오른쪽에 터번을 쓴 늙은 여인이 점쟁이인데 그녀는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로 그에게서 금화를 받아냈다. 그 사이 이국적인 차림의 젊은 집시 여인들이 청년을 둘러싸고는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날렵한 손놀림으로 지갑을 훔치고 있다. 점쟁이의 언변에 ​정신이 팔린 청년은 이 모든 속임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다. 저 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어쩜 이리 똑같은지 웃음이 나온다.

이 남자를 계속 만나야할까? 연봉은 언제쯤 오를까? 지금 회사를 옮겨도 될까?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가 불안해서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남자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내가 다니는 회사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내 미래를 안다고. 생각해보면 애매하고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 속에서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였다. 그는 그저 예상 가능한 몇 개의 상황을 늘어 놓았을 뿐인데. 그러니 보살이 울상이 된 나를 보며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말이야…”라는 말을 흘린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방법은 예상대로 굿 또는 부적이었는데 이를 설명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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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점이란 것이 정말 조금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믿을 게 못되는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K양은 딸만 셋인 딸부자 엄마가 되었고 나는 4년 뒤 32살에 결혼을 했다. 흥! 김보살 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