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in Austin Abbey - Potpourri, 1899
나는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여유도 생기고 이전보다 더 너그러워질 꺼라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늘어나는 나잇살만큼 고집이 늘고 불만도 늘었다. 특히나 요즘에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반말 섞인 을의 말투, 누군가의 잔소리, MSG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음식 등이다. 아, 그리고 좋지 않은 모든 냄새들. 특히 미국에 온 이후 이상할 정도로 냄새에 민감해졌는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집 냄새’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청국장 향이 살살 도는 된장찌개, 곰삭은 김장 김치, 생선 구이 등 남편과 내가 유난히 사랑하는 한식, 그 특유의 진한 냄새가 문제였다. 특히 외출했다 집에 돌아 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그 오묘한 냄새들은 정말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 그 여자네 집은 마치 방 안에 메주를 숨겨 놓은 듯 청국장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어” “짭조름한 젓갈 냄새에 생선 비린내가 뒤섞인 것이 마치 부산 자갈치 시장에 와있는 듯 했어” 누군가 우리 집을 이렇게 기억하는 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하지만 별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남들 하는 대로 집안 구석구석 향초를 피우고 틈나는 대로 탈취제, 방향제를 뿌리는 수밖에. 숯이 탈취 효과가 좋다는 말에 한 포대나 사기도 했다. 그러나 냄새를 완전히 없애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음식 냄새에 이런 저런 향이 더해져 오히려 역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일 요리를 했으니 악순환은 계속 되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열기였다. 하루 2~3번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30분 이상 충분히 환기를 시켰다. 청소는 레몬을 활용했다. 특히 싱크대, 세면대 등 물때로 인해 특유의 냄새가 나는 곳은 레몬 조각으로 닦으니 아주 효과가 좋았다. 소파나 쿠션은 베이킹 소다를 뿌린 뒤 청소기로 빨아들이니 냄새가 말끔히 사라졌다. 비우는 것도 중요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굳이 가지고 있기 않아도 되는 물건이 너무 많았다. 몇 번 들다 구석에 처박아 둔 가죽 가방, 겨우내 버티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화분, 옷장 속 안 입는 옷 등을 싹 정리했다. 어느 정도 냄새가 사라지자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떤 향으로 집을 채울 것인 가였다. 향초, 디퓨저 등 기존에 있는 일반적이고 인위적인 향이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공간에 스며들 수 있는 향이 좋겠다 싶었다. 바람결에 무심코 맡을 수 있는 산기슭의 향기, 담장 너머로 넘실대는 라일락의 향기 같은 그런 냄새.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향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자 소박한 돌집이 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니 온통 꽃 세상이다. 바닥에도, 탁자위에도, 바구니 안에도 핑크빛 꽃송이가 가득하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장미, 리시안서스, 라일락이 춤을 춘다. 진하고 풍성한 향기에 취할 것 만 같다. 집 안에서는 한 무리의 여인들이 함께 포푸리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하나 조심스레 떼어낸 꽃잎을 정성스레 잘 말린 후 향을 더해 예쁜 항아리에 담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책을 읽어주는 여인의 하늘거리듯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같은, 지금으로 치자면 ‘브리짓존스의 일기’같은 유쾌하면서도 달달한 연애소설이겠지. 미국화가 에드윈 오스틴 에비의 <포푸리>는 제목만큼이나 향기로운 작품이다. 아름답지만 과하지 않고 향기가 있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너무 말이 없는 요조숙녀도, 심하게 천방지축 말괄량이 같지도 않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들여다볼수록 마음에 꽃향기가 피어난다.
꽃마음을 가득 안고 시장에 나가 장미, 라벤더 등 향이 좋은 꽃과 세이지, 애플민트, 레몬그라스 등의 허브를 잔뜩 사왔다. 그림 속 여인들처럼 포푸리를 만들어 거실, 침실, 화장실 등 집안 곳곳에 놓아둘 생각이었다. 조금 넉넉히 만들어 예쁜 유리병에 담아 지인들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의 집은 늘 향기로 가득하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문득 코끝을 스치는 꽃내음에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곤 한다. 그러다보면 어디선가 달콤한 장미향과 은은한 재스민 향이 코끝을 간질거린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혼자 실실 웃는다. 바보가 따로 없다.
◆포푸리 만드는 법: 사실 민망할 만큼 간단한 방법이지만 나처럼 집 냄새로 고민하는 까칠 주부들을 위해 그 팁을 공유해본다.
①꽃잎, 허브, 나뭇잎, 과일껍질 등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하루 정도 말린 뒤 벌레나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넣어 30초간 열을 가한다.
②향이 진한 라벤더, 민트로즈 등을 주재료로 하고 허브나 스파이스 등을 조금씩 더해 좋아하는 향을 만든다.
③넓은 볼에 재료를 넣고 굵은 소금을 뿌린 뒤 에센셜 오일을 몇 방을 떨어뜨린다.
④소독한 유리병에 재료를 넣고 뚜껑을 닫은 후 어둡고 서늘한 곳에서 2~3주정도 발효시킨다.
⑤중간에 한 번씩 병을 흔들어주면 향이 고루 퍼진다.
⑥향이 잘 배어나오도록 면 주머니에 넣거나 바구니에 담아 원하는 장소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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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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