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모르지만 난 자리는 안다고

택이가 가고 나니

봄이 봄이 아니다.

식목일이 낀 4월이 시작 됐건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는

주인 없이 휑한 방의 쓸쓸함까지 더해

내내 집안을 맴돌다

다시 또, 내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며

도무지, 잦아 들 줄을 모른다.

그래도 꿋꿋이 눈치 없는 남편은

부실한 저녁상을 보며 한소리 하신다.

"이거 택이 없다고... 요즘 상 차림이 너무 한 거 아냐?."

사실,

때 늦게, 택이 보내 놓고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느라 집안 일이 전부

'임시 휴업' 상태기는 한데

그 말을 들으니

새삼,

'아! 택이가 없네. 이젠 정말 못 보네.' 하는 생각에

눈물부터 후두둑....

밥을 뜨다 말고, 그냥 울며 방으로 들어 와 버렸다.

졸지에 여자를 울린(남편은 이게 제일 못난 남자라고 말한다)

남자가 되서

조용히 밥을 먹고 상까지 치우곤

무서워서? 미안해서? 힐끗 힐끗 눈치만 보는 남편 대신

아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옆을 채운다.

그러다가, 불쑥, 묻는다.(어쩜 이 질문하러 옆에 앉았을 수도....)

"엄마는 왜 그렇게 택이 형이 좋아?"

그러게, 왜 그럴까?

아픈 손가락 같아서 였을까?'

........................,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지만

'희망'으로 기다리는 것조차 사치 같이 느껴지던 그때,

이렇게( 험난한) 삶을 가지게 된 이유나 알자고,

전생을 봐 준다던 힐러며,

전생 체험 책에, 세미나까지,

한참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국의 무당이나 미국의 힐러들은

항상 내게 아들이 둘이 있다고 했었다.

딸 하나 아들 둘, 그것도 첫째인 내 딸 보다 5살이 더 많다는 아들.....

타로 카드를 뽑아도 내겐 항상 세 아이가 나타나니

어떨 땐 '남편이 큰 아들', 하다가도

어떨 땐 "어디다 애 하나 낳아 놓은 거 아냐? 그러기만 해봐......" 하면서도 찜찜해 하던 차, 최면으로 자신의 전생을 볼 수 있다던 전생 체험 세미나를 가게 되었었다.

그리고

19세기, 미국, 한 시골 마을의 개구장이 금발 머리 소년인 내 전생을 보게 됐다.

내가 참가 했던 세미나는 집단 최면 형식이라 1:1 최면 상태에 따른 맞춤형 유도 최면을 할 순 없어서

내가 본 전생들은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저 장면, 장면들에 더 가까웠었지만

보는 순간,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는 영화의 장면 처럼

여긴 어디, 저 건 누구.... 나는 ....

하는 식의 지식들이 저절로 다 떠올라서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영화의 예고편을 보듯,

장면 장면으로 지나간 전생들 속에서

가장 최근의 전생엔

나는,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 아이였었다.(8살~10살쯤?)

그리고, 내 옆엔 어릴 때부터 오누이처럼 붙어 다니던

내 소꿉친구 여자 아이가 함께 있었었다.

그날 전생 체험때 내가 만났었던 전생의  사람들은 다,

이 생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전생과 비슷한 공통점을 가진 채

나와 가까운 이들이었는데

그때 (전 생을 보던 날 부터 택이를 만난 날)까지의 내 삶에서

유일하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던 , 내 전생속의 인물은

그 여자애가 유일 했었었다.

(전생 속에서) 우리는

체크무늬 옷을 입고 딸기를 따러 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딸기 따고, 사과 따고... 하여간 따는 걸 좋아한다.

한편으론, 산골 마을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 그때,

마을에서 가장 부자지만, 심술궂고 거만해서

모두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백인 아줌마가 거드름을 피우며 산책을 나온 것을 보고

내 소꿉 친구는 "저 할머니 싫다'"고 숨어 버렸었다.

그런데, 으잉?

이건 웬일?

이 백인 할머니는 몹시 심술궂고 거만하지만, 부자라서

늘 사탕이나 쿠키 등을 가지고 다니며

자기를 찬양? 하는 사람들에게

거지 동냥 주듯 뿌려 주곤 했었는데,

나는 그만, 그 사탕을 얻어먹을 욕심에

그 할머니 앞으로 일부러 다가가

마을에 네가 있는 게 우리 마을의 영광이라는 등,

우린 다 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등....,

그야말로 알랑 방구를 뀌어대고 있는 것 아닌가? -_-

그리고 목적대로 한 주먹의 사탕을 얻는 것을 보며

(최면 상태의) 나는 저절로 알게 됐다.

"아! 저 할머니가 지금의 ____씨고,

저 거짓말 때문에 내가 지금 ___씨를 속으면서도 만나고 있는 거구나."

(____ 씨는 미국에 와서 알게 된 지인인데

이상하게 나는, 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끊지를 못 하고 만남을 지속하게 되던 , 그런 이웃이었다.

그런데 이 전생 체험 이후

얄밉지만, 이런 저런 인과 관계상 할 수 없이 잘해준다던

내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 질 때쯤

____ 씨가 멀리 이사를 가게 되면서, 지금은 서로 좋은 기억만 간직한 부자 친구 중 하나가 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사탕을 들고 희희 낙낙해서 내 친구를 찾지만

친구는 없고 , 내가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그 장면은 정확치가 않아서

내가 우물을 정말 본건지,

같이 있던 여자 애가 그 우물에 빠졌다는 건지....

그냥 목이 말라 우물물을 찾아 갔다가 들여다보게 돼서

왠지 두려워하던 건지(깊은 우물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면 이 뜻을 알거다) 정확치가 않은데

하여간 이 복잡 미묘한 당황, 슬픔, 막막함, 두려움, 아득함....

왠지 내가 한 눈 팔아서 일어난 일 인 것 같은 막연한 죄책감,

미안함, 후회, 서러움.(친구가 날 두고 간....?)...

그렇게, 대체적으로 blue에 가까운 감정들의 무거움을 못 이겨,

결국 내가 깨어나면서

(보통, 최면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뭔가 불편하거나, 답답하거나, 두렵거나... 하는 상태가 되면 ,

최면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깨어나도록 하는 자동 암시까지

한꺼번에 걸어서 최면 상태로 들어간다.)

그날의 최면은 끝이 났었었다.

그 후로 한참동안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이 그 여자 아이일까?

저 사람이 그 여자 아이인가? ‘ 혼자 상상을 해보며

전생에 내 소꿉친구였다던 그 여자아이를 찾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도 점차 잊어버리게 되었었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좀처럼 ‘이 사람이다.“하는 확신을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끝에

‘아마 이번 생에 그 애는 환생 하질 않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린 쪽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날 전생에서 본 (아이들이 입고 있었던) 체크무늬 옷은

갈수록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낙인처럼 남아서

나도 모르게 비슷한 느낌의 체크무늬 옷을 사 모으는

버릇 아닌 버릇이 생기게 되긴 했었다.

(정확히 똑같은 옷은 발견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택이가 오고,

처음엔 2~3달을 기약했었지만 좀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해서

하루 날을 잡아, 그 애 짐을 함께 풀던 날,

택이가 막, 집어든 좀 작은 듯한 옷. 오래 된

체크무늬 남방 ....

(나) 옷을 가리키며 : "그거....?"

(택이) "아! 이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라서....,

이렇게 작아 졌는데도 못 버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었네요.

어릴 때 산건데.... 이상하게 이 옷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특히 이 무늬가....“

순간 나는 번갯불에 정통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옷은,

바로, 내가 전생의 장면에서 본,

한때 그리도, 애타게, 목 마르게 찾던

전생의 내 소꿉 친구가 입고 있던

바로 그, 옷

그 체크무늬 남방 이었다.

(그리고 택이는 우리 딸보다 5살이 더 많다.)

그러니, 그 후, 어느 날

자살을 시도 하고,

뭔가 끝도 모를 우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고

택이가 말했을 때

그 애를 그 우물에서 빼내는 일이 내 사명이 됐던 건 ,

그야말로 운명이 아니었을까?

요즘 나는 싸이의 새 노래, '어땠을까?'를 좋아한다.

어땠을까?

그때, 택이 아닌 다른 아이가 똑 같은 문제로 우리 집에 왔다면....?

아니, 어땠을까?

똑 같은 택이라도

(내가 전생에서 본) 체크무늬 남방이나 우물 얘기는 안 하는 택이 였다면....?

날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넌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밤 잠 못 자며 애를 끓였을 거라고

그게 네 천성이라고...

나보다 더 나를 믿고 얘기 해 주지만

글쎄....

어땠을까?

젊었을 때, 단전호흡을 하셨던 한의사 선생님은

(이 분, 우리나라, 꽤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에도 단전 호흡 사부님으로 등장하신다는, 알고 보면 단전 호흡계의 마스터시다*.*).

사람이, 지금처럼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제법 철이 든, (겉만 어른으로, 애 만도 못한 어른들도 꽤 있지 않은가...^^) 현명함.., 자비, 겸손...이런 성품 보이며,

더해서,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가?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이런 등등의 고차원 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수준까지 오자면

적어도 300~400번 정도는 환생을 거친 영혼들이라고 하신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환생의 횟수가 많을수록

철이 들고 현명한 성격을 보여 주는 쪽이라는 뜻이란다.

나는 솔직히 아직도 이런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모습이든 내가 이 생에서 인연 맺는 사람들은

전생에서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연결 된 사람들이었으리라고는

믿는 쪽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나와 관계된 이들이

전생에서의 연을 이 생에서도 지속하길 원해서

이 생에서도 나와 연관 되는 그 마음이

‘후회’나 ‘실망’ ‘배신감’ 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래

항상 최선을 다하는 편이긴 하다.

더해서, 이 생에서의 만남이 꼭 좋지만은 않은

그러나 어쩐 일인지, 모른 체 살아지지가 않는

피곤하고 성가신 인연들은

마음공부 하는 친구의 명언을 되 새겨 보며 참는 편이다.^^

(친구)"따지고 보면 ,

그 사람이 하도 속을 썩여서 내가 이렇게 아직까지,

마음공부 하고 있는 거거든,

이 길 밖에는 방법이 없어서.....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러니 이렇게, 나 하나 깨우치자고 ,

내가 아직도 깨우치질 못해,

저렇게 자기를 망가트려 가며 미운 짓을 하고 있는 그 사람한테

생각하면

머리 조아리고, 백번이라도 사죄해야 할 일인 거더라고.

미안하다고.....

정말로 죄송하다고....

내가 아직도 잘 깨우치질 못해

당신이 그렇게도 미운 짓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엄마의 전생 속에 나는 없었어?”

택이와의 전생 얘기를 다시 해주고(우리 애들은 벌써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른다.^^. 내 생각엔 딱히 믿는 다기보단, 옛날이야기 듣듯 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생각에 잠겨 있는 내게 우리 아이가 묻는다.

딱하게도 우리 아들과의 전생을 본 기억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못 봤다고)

과연 없는 인연이었을까?

이렇게 부모 , 자식이라는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인연이....

(거기다), 나하고 애들은 사이도 좋은 편이다.^^

이제는 사랑스럽고 귀엽기 보다는

꽤나 듬직하고 믿음직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궁디 팡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내 아이를

꼬옥 끌어 안으며 말해준다.

“왜 없겠니. 그 많고 많은 전생 중에...

그러니까 이렇게 네가 우리 아이로 태어난 거겠지.

다음 생에는 우리, 어떤 사이로 다시 만날까?

그땐 택이 형아도 함께 , 우리 식구 할까?“

전생부터 이어져 온 마음이 통한걸까?

저녁엔 택이한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이모, 생신 축하 드려요. 전 건강히 바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이모도 건강하시고 또 연락 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달랑 서너 줄의 짧은 문장이지만

그래도 택이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줬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행복해 하는 내게 남편이 또 한소리 한다.

“(전생에) 소꿉친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디....”

호오~,

남편, 이거 지금 질투하는 것 맞지?

에잇, 기분이다. 내일 저녁은 스테이크 쏜다.

(택이와 내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