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순례자가 빠른 걸음으로

십지가 앞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제 숲길 어디쯤에서 만났던 

다리 아픈 순례자를 십자가 앞에서 다시 만나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던 . . .

어제 서로 얼굴을 익혔기에

다시 만남에 대해 어색지 않아 . . .

잠시 나누었던 이야기로는

부인이 원치 않는 병으로 아프기에

부인이 원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남편이 동행하고 있다고 . . .

부인의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걸을 예정이지만

몸 상태를 보아 중간 어느 지점에서는 차량을 이동하고

다시 어디쯤에서 부터 산티아고 까지 걸을 예정이라고 . . .

프랑스인 Yann씨 부부가

앞서 걸으며 . . .

부인의 건강이 이 길을 걸으며

회복되길 빌어본다.

아프리카 초원지대를 연상케 하는 

시원한 벌판위를

한 여인이 돌사이를 걷고 있다?

누가 이 돌들을 옮겨서

이렇게 원을 만들었을꼬?

눈에 띄는 빨강색 바지를 입은 여인이

벌써 몇번째 돌고 돌고 . . .

그녀의 발길 따라

내 눈도 같이 움직이고~

그녀는 계속 돈다~

무슨 소원을 가지고

탑돌이 하듯

돌돌이를 하는 걸까?

돌고 

돌고

계속 돌고~~

한참을 지난 후

그녀의 남편의 모습~

그만 돌아라~~~

하는 듯

뭐라 하는 데

그만

웃음이

ㅋㅋㅋ~~~

참 대단하다.

돌고 있는 여인이나

그 여인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이나~

처음엔 기념사진까지 찍어주던 남편도

지쳤을꺼나?~~~

열심히 돌고 있는 빨간바지의 여인이

마지막 돌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

이제 내리막 길~

참으로 오묘한 진리 터득~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꼭 있더라는 . . .

저 멀리에

오늘의 목적지인

부르고스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빼꼼하게~

그림같은 초원 사이에

아주 조그마한 마을이 보이고 . . .

산에서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데

한 길은 마을로 들어가고

다른 한 길은 그냥 들판을 걸어가는 길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마을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지는 들길을 따라 걷는다.

나 역시 들길을 따라 걷고 . . .

한국의 산에 피는 개나리꽃처럼

이 스페인 마을의 산 등성이에 만발한

이름 모르는 들꽃들

정겹다.

들꽃 한송이만 보아도

.

.

.

길 어디쯤에서

핀란드에서 온 포클 할아버지를 만났다.

포클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땅만 바라보고 걷는다.

고개를 든 적이 한번도 없이 . . .

그래서 포클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왜 땅만 보고 걷냐고?

그러니까 아주 심플한 대답

땅이 좋아서 . . .?

라고.

바람이 분다.

얇은 비와 함께 부는 이 바람은

서풍일까?

태양이 보이지 않는 이 날씨가 고맙고

굵은 비 대신 살짝살짝 뿌려주는

이 하늘이 고맙고 . . .

푸른 밀밭길 . . .

여전히 고개를 땅으로 향한 채 걷고 있는

포클 할아버지가 보이고~

젊은 청춘들도

유쾌하게 걸으며 . . .

아 ~~~

밀밭이 춤을 춘다~

덩실덩실 ~~~

꽃들도 춤을 춘다.

하얀 꽃잎을 휘날리며~

이름이 많이 길고 복잡한

까르데뉴엘라 리오 삐꼬 마을에 도착하며 . . .

.

순례길 17일차

5/4/2015

- 별빛속을 걸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