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곳에
어머니의 유품을 두고 가면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기뻐하실까?
.
.
.
폰세바돈에서 철십자가 언덕까지
순례길 31일차
라바날 마을을 출발해서
제일 먼저 도착하였던 포세바돈 마을
그런데 다시 되돌아와서
점심식사까지 하고 또 떠나야 하는 계획은
오늘 일정상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는 데. . .
차분히 배낭을 매고 식당을 나와
오르막 길을 올라간다,
처음 이 길을 청년과 같이 올라갈 때
분명 저 노랑색 화살표 팻말을 보았는데
왜 길을 잘못 들었지?
@.@
조금 더 올라가니 두 갈래길
그때 청년과 어느 길로 올라가는 게
철십자가로 가는 길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무래도
왼쪽길은 자동차길이니까
오른쪽 길이 순례자들이 걸어가는 길이 맞을 거라며 . . .
그래서
오른쪽 길을 선택하였던 게
결정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걸 . . .
조금 더 올라가니
저 아래
조금 전에 식사를 하며 쉬었던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이 보이고
아주 조그만 산위의 마을인
포세바돈의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엔 알베르게가 있기에
사정이 허락된다면
이 공기맑고 풍경 좋은 산위의 마을에서
하룻밤 지내고 가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훗날에
다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난 이 곳 산위의 마을 포세바돈에서 하루를 꼭 머무를 것 같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빛날 것 같기에
.
.
길은. . .
흙길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자동차 길로 걷게 하는 철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
1킬로미터 남았다는 길위의 친절한 안내표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어간다.
제대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 . .
보라색 야생화들은 여전히 만발하고 . . .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만나지 못하였던
보라색 꽃들의 향연
보기만 해도 좋아서
저절로 꽃산의 풍경에 매료되어 가고 . . .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큰 십자가 가 눈에 들어온다.
저 십자가 가
그 유명한 철십자가?
그러나 키가 작은 걸 보아
아닌 듯 . . .
십자가 있는 곳에서
흙길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꽃들은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나도 꽃과 가까이 하며
터벅터벅 산길을 올라가고 . . .
계속 오르다보니
점점 산위로 올라가는 듯?
조금 더 올라가니
저 멀리에
철십자가 보인다.
엉?
왜 내가 도착하려는
철십자가 가 저 멀리에 있는거지?
지금쯤이면
저 철십자가 밑에 도착되어야 할 거리인데?
아 . . .
또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 . .
내가 걸어가고 있는 산길은
이미 끝이 나 버린 상태에서야 눈치 챈
이 엉뚱함이라니???
허탈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다시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오늘 왜 이러지?
제대로 걸어도
오늘 하루 일정이 빠듯하거늘
자꾸 실수를 하다니?
내 기억엔
1킬로 정도를 엉뚱한 산길로 올라간 듯 ...
그러니까
다시 되돌아오는 길 역시
똑같은 1킬로......
에이~
아마도
내가 낮술에 취한 게 아니라
꽃술에 분명 취한게야~
#@#$^$%^$#
산길을 모두 내려와
처음 방향을 잘 못 생각하였던 곳에서부터
자동차길을 따라 걷는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고
걸어가는 순례자도 보이지 않는
적.막.강.산
.
.
조금 걷다보니
산타이고 노랑표지판이
길 오른쪽에 보인다.
참으로
반가움이라니~
^.^
잠시 후
오른쪽 오솔길처럼 작은 길로 가라는
산티아고 안내표지판 발견
그런데 조금 전에
이렇게 작은 산길을 걸어가다
엉뚱한 곳으로 간 까닭에
과연 이 길은 정확한걸까?
하는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돌비석위에 올려져 있는 돌들과 꽃을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갔다라는 생각에
안심하는 마음으로 좁은 길 안으로 들어간다.
- 그러나 굳이 순례자길로 가지는 않아도 됨
어차피 자동차길로 걷게 되면
결국 마을로 다 이어지므로 -
하지만
진정 순례자길을 걷기로 자신과 약속을 하였다면
먼 옛날부터 순례자들이 걸었다는 그 길을 걷는 게
좋을 것 같슴 -
그 좁은 길을 걸으니
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여전히 나를 매혹하였던
보라색 산꽃들의 퍼레이드는 계속 되고 . . .
그러다
결국
자동차길과
산길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게 되고 . . .
조그만 언덕을 넘으니
눈 앞에 나타나는
그토록 고대하였던
철십자가의 우람한 모습이
바로 눈앞에 . . . !!!!
먼저 도착한 누군가
철십자가 앞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
드디어
철십자가 앞에 도착하다니 . . . !!!!
나 스스로도
감격해지는 순간 ~~
한발 한발 그 앞으로 올라간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이는
철 십자가 상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엔
사연이 있는듯한 사진들이 붙여져 있고 . . . . .
그 편지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꽁꽁 묶여놓은 이도 있고 . . .
누군가는
긴 긴 편지를 비닐로 커버해서
빗물에 번지지 않도록 걸어두었고 . . .
어떤 이는
사랑하는 아가의 사진을 붙여두기도 하였고 . . .
십자가 아래엔
각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놓고 간
수 많은 작은 돌멩이들이 수북히 쌓여있고 . . .
며칠 전 어느 마을의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함께 마셨던......
헝가리에서 혼자 왔다는 안네가
다정스런 목소리로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 철십자가 언덕에 도착하면
그 십자가 아래 놓고 갈 돌멩이를 가져왔냐" . . . . 고.
자신은
집에서부터
조그만 조그만 돌멩이를 준비해 왔다며 . . .
집에서 출발하기 전
준비물을 챙길 때
이미 읽었던 여러 권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통해
이 철십자가 상 아래에 순례자들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자신의 고향이나 집에서 가져온 조그만 돌멩이들을 놓고 간다라는 글을 읽었기에
준비할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돌멩이를 준비하는 대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둔 어머니의 유품을
십자가 아래에 묻으리라 . . .
생각하고
그 유품을 나의 배낭 아래에 깊이 간직하고
집에서 출발하였는데 . . .
돌멩이에 예쁜 꽃을 정성껏 그려서 놓고 간 사람 . . .
자신의 마지막 성 ( Last Name) 만 적은 사람 . . .
중국 사람인듯 한문으로 사연을 적고 간 사람
날짜를 보니 이틀 앞서 이 곳을 다녀간 사람인 듯 . . .
어떤 이는 미처 돌멩이를 준비하지 못하여서인지
와인 코크 마개를 두고 가기도 하고 . . .
무거운 돌을 올려두기도 하고 . . .
그러다 수 많은 돌멩이들 사이에
한글로 적은 세월호 ....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Save Nepal
Save 세월호
그 아래엔
리본 모양과 바다에 침몰하는 세월호 형상
날짜를 보니
2015년 4월 27일
그 당시에 네팔에 사상 두번째로 큰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이 한국 분은
네팔의 지진으로 희생된 사람과 아직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세월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을
돌멩이 하나에 짧은 글과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다니 . . .?!!!!
이 돌멩이를 발견한 순간
가슴이 쿵! 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보다 이틀 먼저 이 길을 다녀간 사람
사실 이 까미노를 걷는 내내
누군가 세월호의 흔적을 남겨두고 간 걸
뒤따라 가는 내가 발견하기를 벌써 몇번째인가?!!!
난 어머님의 유품을 이 곳 십자가 아래에 묻어두고 갈 계획이 있었기에
준비해 온 어머님 유품을 꺼내었다.
어떻게 묻어야 할까?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 살피며 장소를 고심하는 데
십자가 아래에 너무도 많은 돌멩이들이 흐트러져 있고
그 흐트러진 돌멩이 위를
사람들이 지나간 발자국들이 선명하고 . . .
최근에 다녀간 사람들의 돌멩이들은
아직까지는 잘 정돈되었지만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면 여기저기 흐트러지고
타인의 발아래에 짓밟일 걸 생각하니
어머니의 유품을 과연 이 곳에 두고 가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의 갈등이 든다.
만약 내가 이 곳에
어머니의 유품을 두고 가면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
.
.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흔쾌한 마음이 아니실 듯 . . .
나 역시
내 맘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다시 배낭속 깊이 집어 넣는다.
십자가 상 앞에 위치한
에르미타 성당
조그만 성당이 아담하고 참 예쁘다.
그러나 역시 문은 잠겨져 있고 . . .
오래전엔 분명히
문이 열려져 있었을 듯 . . .
그래서 이 철십자가 언덕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잠시 머물다 떠날 수 있도록 배려도 하고
묵상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제공도 해 주고 . . .
그러나 지금은
성당의 나무로 된 기둥은 많이 낡아져있고
저 낡은 나무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면
아마도 현대식 재료로 튼튼하게 재건축을 할지도?
아무리 보아도
운치있고 예쁜 성당
그 옆엔 석조로 만들어진 벤치와 테이블이 있기에
그 곳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쉬어가도 될 듯 . . .
몇몇의 순례자들이
풀밭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
평온한 그림처럼
나의 눈엔 비쳐지고 . . .
참으로 높은 십자가 이기에
그 십자가 아래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주 작은 존재로 느껴져 . . .
떠나기 전
한번 더 되돌아 본
철십자가 상
어머니의 유품을 이 곳에 놓지 못하여
다시 매고 가는 나의 마음
어머니의 유품과 함께 걷고 있는
이 산타아고 순례길은
과연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
수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던 돌멩이들과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바위로 눌러두거나
십자가에 꽁꽁 묶어 둔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들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나라를 위한 기도를 올리고 떠난 사람들
세상은 악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철십자가 상 언덕을 떠난다.
포세바돈 마을에서
철십자가상 언덕까지
순례길 3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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