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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 타고 만나는 세상

종이벽처럼 얇은 삶과 죽음의 거리 Jenny L (yunkevin69) 2019-4-24  22:22:39
우리는 이 순간 살아있기에 죽음은 저 너머의 일로만 생각한다. 주변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들어도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거리는 종이벽을 사이에 둔 이쪽과 저쪽처럼 너무나 가깝다. 불어오는 한자락 바람에라도 휘청이면 종이벽 너머로 내 몸은 기운다. 온 힘을 다해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지 않으면 그 얇은 벽 너머 죽음의 저편으로 쓰러지고 만다.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고없는 강풍을 맞아 한번에 쓰러지고 말기도 한다. 
산다는것은 때론 전투같아서 언제 어디서 갑자기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 아직은 먼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죽음은 생각보다 늘 가까이 있었던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먼저 갈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것들이 많다. 사는 준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죽는 준비도 필요한 것이다. 어떤 준비를 해도 모자라겠지만 남은 이들이 더 힘들지 않게 최소한 서류적인 문제만이라도 정리를 해 두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혹사시키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누가 내일을 장담할 수 있는가....?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하자! 나중을 위해 아껴둔 일이 있다면 계획을 앞당겨 올 여름즘엔 시도해보자! 

오늘... 오래된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국민학교 동창생이라 어릴적 장나꾸러기였던 모습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친구다. 국민학교 졸업후 남녀가 따로인 여중/남중, 여고/남고를 다니는 동안 얼굴 한번 못보다가 고 3 학력고사를 치루고 국민학교 동창생들의 모임을 통해 다시 만났다. 어머니들끼리는 우리가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계모임을 하고 계셔서 우리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 질수 있었다. 훤칠한 키에 꽤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다. 우리 둘은 분명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친구와 연인 사이의 그 중간 어디쯤인 관계로 가끔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집앞의 바닷가도 함께 걸었었다. 
그러다가 난 대학을 들어 갔고, 그 친구는 재수학원을 가게돼서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입시 시험이 끝나면 연락이 와서 만나곤 했었다. 그러나 또 대학 입시에 실패한 그는 서울의 재수학원을 가게 됐다. 똑똑했던 친구라 그의 부모님은 S대학만을 고집했기에 다시 3수를 시킨 것이다. 3수를 해도 안됐던 S대학교 입학은 포기 하시고, 아들을 미국 유학 보내셨고 그 이후론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 내가 미국을 들어올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했다. 간혹 엄마를 통해서 전해 들은 소식은 그냥 그런 소식뿐이었다. 참 안 풀리는 친구라 늘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그러다 40이 되어서야 결혼을 했고 아이 하나 낳고 잘 산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불과 몇년전인데.... 

운전중에 갑자기 심장 마비가 와서 겨우 차만 갓길로 세우고 그길로 쓰러져 갔단다. 누구 하나 옆에서 손 잡아주는 이도 없이 혼자 외로이 고통속에 떠났단다... 

우리의 어렸던 나날에 대해서 난 오랫동안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그 친구의 재수 시절, 어느날 밤에 나를 찿아온적이 있는데 이미 대학생이었던 내게 차마 자신의 마음을 내 보일수 없는 답답함과 재수생으로서의 힘겨움,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함.. 등등의 여러 복잡한 얼굴을 하고도 웃고 있었지만, 난 끝까지 그 친구의 마음을 모른척 했다. 고작 20살이었던 나는 함께 감당하며 포용할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겐 절절한 사랑은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가끔씩 그 미소가 생각날때면 “제발 어디서든 잘 살아라!...” 바랬었다.

삼십년 가까이 못 보고 산 친구지만, 그의 죽음은 애통한 일이며, 또한 내 20살의 많은 추억까지 데리고 가는것 같아 허망하다. 서로의 속마음을 감추고 친구로서의 선을 지킨 덕에 좋았던 기억뿐이다. 눈빛으론 그 이상을 나눈적도 있지만 행동은 늘 친한 동무였던 것에 감사한다.
 “보고 싶다 친구야, 부디 이젠 좋은 곳에서 고민도 방황도 없이 평안히 쉬렴! 한번도 말한적 없지만 넌 정말 멋진 친구였어.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해주고 좋은 추억으로 체워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더 좋은 친구가 되어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년의 꿈' (친구를 생각하며 지어 봄. 스위스 몽트뢰 호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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