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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 타고 만나는 세상

40여년만에 써 보는 두번째 반성문 Jenny L (yunkevin69) 2021-6-28  10:55:09

처음  ‘반성문’이란 걸 써 본건 12살, 초등학교 6학년때 였다.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애정 표현이 강하신 그 분만의 방식으로 처와 자식을 무척 아끼시는 분 이셨다. 그 시대에 누리기 힘든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시고 45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셨다. 

뇌출혈로 병원으로 들어가기 일주일전쯤 이었던 어느 날, 여느때처럼 내 얼굴에, 두 손에, 열 손가락에 뽀뽀를 퍼 부으셨고 까칠한 턱수염으로 볼을 부비시는게 따거워 막 사춘기에 들어선 계집애는 싫다고 강한 앙탈을 부렸다. 그런 어린 딸이 서운하셨던지 버럭 화를 내시며 버릇 없다고 반성문을 써 오라 하셨다.  ‘반성문’ 이란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무엇을 잘못 했다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나는 몇 시간을 끙끙대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앞으로는 아빠에게  버릇 없이 짜증을 내지 않겠습니다” 정도 였지 싶다. 그걸 읽어 보신 아버지는 흡족하셨는지 냉장고 문에 떡 하니 붙여 두셨다.
그 일이 있은 후 2주후에 하늘 나라로 가셨다. 아빠를 잃은 슬픔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어린 나이에도 집에 오시는 모든 방문객들이 냉장고에 붙여진 내 반성문을 읽어 보는 것이 창피해서 아빠가 원망스렀웠다. “쓰러지시기 전에 그것 좀 떼 주시지…” 그 반성문이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것처럼 느끼게 했고, 방문객들이 내게 무언의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아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워 었던것 같다. 아빠가 붙여 두신 걸 허락 없인 뗄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영영 허락을 구할수도 없게 돼 버려서 몇일을 고민하다 가족들 몰래 가슴 졸이며 떼어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난감했던 기억은 한동안 아빠를 그리워 하는 걸 방해했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누구의 강요도 없는 스스로 두번째 반성문을 쓴다. 

지금의 남편은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처와 자식을 무척 아낀다. 지식은 깊으나 현실 생활엔 어린 아이같아 집안 모든 대소사를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 하고, 내가 손을 놓으면 우리집은 그때부터 ‘일시정지’가 된다. 머리 아픈 일이 생기면 남편과 상의도 하고 의존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어 불평을 하곤 했다.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영어도 잘 하면서 왜 이런 걸 못해! 모지리!’ 라며 속으로 얼마나 궁시렁 됐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림만 하면 됐던 어린 시절의 내 엄마는 모든 걸 아버지에게 의존했다. 아버지는 하다 못해 동 사무소, 우체국 볼 일도 직접 하셨고, 집안 모든 대소사가 아빠의 관리하에  이루어졌다. 아빠를 통해 그려진  ‘남편’ 의 이미지랑 현실의 내 남편은 차이가 있다.
남편은 모자라서 순수하고 욕심이 없다. 욕심을 부려 볼 법한 일에도 전혀 그러지 않는다. 본인은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을만큼 행복하다며 많지도 않은 걸 아낌없이 내어 준다. 가족에게도 남에게도… 그런 남편이라 사랑하면서도 ‘헝그리 정신’이 없다며 답답해 하는 ‘나’이다.

한 해 한해 몸이 불편해지는 시아버님이 당신의 마지막 가족여행으로 올 12월에 이태리 크루즈를 가자고 하셨다. 집 한채 팔아서 20여명 전 가족의 경비로 다 쓰실거라며 호화 여행을 장담하시더니 베란다가 딸린 케빈을 예약해 주셨다. 우리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나의 첫번째 결혼에서 얻은 큰 아들이 12월이면 대학을 졸업할거란다. 아무래도 졸업식과 크루즈 여행의 날짜가 겹칠것 같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고생해서 얻는 학위인지 알기에 자랑스럽고 졸업식에 참석해 축하해주고 싶은 엄마인 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크루즈 여행을 포기 하잖다. 남편에겐 의붓아들의 졸업식과 자신의 부모 형제들과의 마지막 크루즈 여행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망설임도 없이 “당신의 자식이면 내 자식이고, 내 아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축하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역시 모지리다. 어떤게 더 달콤한 선택인지도 모르는 모지리! 달콤한 것 보다는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모지리!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남편을 무시했음을 반성하며, 다른 사람을 체워주기 위해 자신은 모자란 그런 남자를 현실성 제로라며 툴툴거렸음을 반성하며,  늘 시부모님이 1순위이고 난 그 뒷전이라고 서운해했던 나의 작고 성급한 마음을 반성한다. 
결혼생활 20여년에 아직도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이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수 있을까…? 비록 가끔 속 터지게 할지언정…


                                                        Step Father &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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