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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날이 있다

그런 날 어떤 미시 (cloee) 2018-8-8  08:18:00

                                                                                                

그런 날이 있다.

잡초를 뽑느라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잔디밭을 헤적이다 문득, 

그리도 예쁜 풀꽃이 

눈앞에 보이는 날 말이다


그런 날은 누군가 

내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만 주어도 

 ‘그래 그땐 너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하고 

누구든 용서 할 수 있을 거 같은 날.

지나간 인연일 수도 

계속되는 인연일 수도 있겠지만 

이유 없이 다 이해가 되는 

그런 날 말이다


용서에 용서가 꼬리를 물다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은 나 자신 에게로 향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처음 맞는 단 하루다.

인생은 마지막까지 처음들의 연속이다


처음으로 누구의 자식이 되고 

처음으로 누구의 무엇이 되어져서 

처음의 시간들을 살아가는 거다.

연습 된 하루는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변수들에다 

예측 불가한 주인공 때문에 그럴 거다.


삶에 중요한 몇 가지 정도는 

예행 연습이 허락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이 법칙에 예외가 없다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만 

수술이 허락되듯 

지구 여행 동의서 맨 위 자리 첫 조항이 이거였나 보다.

아니면 깨알 글씨로 

말미 어디쯤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연습이 없다. 모두가 처음이다.’


그때 좀 더 꼼꼼히 까탈을 부려볼걸 그랬다.

다가 안 된다면

누구의 자식이 되고 

배우자가 되고 

부모가 되는 

요 세 가지 만은 

연습 좀 하고 가게 해 달라고 졸라볼걸 그랬다

그저 여행 준비에 신이 나서 아무 생각도 없었던가.

세 가지가 많다 하면 

두 가지 만으로 줄여라도 볼걸.

그것도 많다 하면 

부모 연습 만이라도 허락해 달라

떼라도 썼더라면 좋았다.


그런 날이 있다.

설거지를 하다 문득 

큰 창 너머 저편 

파란 하늘 위에 

구름 한 점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

모든 것이 정지 한 것 같은 

그런 날 말이다.

 

그런 날은 누군가 

말없이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고 

한번만 쓸어 주어도

수만 가지 슬픔 위에 꾹 얹어두었던 

돌덩이 주저 없이 밀어내고 

속 시원히 울 수 있을 거다.


괜찮아 울어도 돼 그래도 되는 거야.

그렇게 실컷 울고 나면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 질거 같은 날.

이래 아프고 저래 억울하다 

해명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깊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 말이다

그저 울고만 나면 

모든 것이 아물고 되감겨져서 

다시 시작할 빈자리가 생길 거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그게 아니라도 

왠지 한번쯤 연습 된 듯한 

편안한 기대감 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일 수도 

견디고 있는 시간이나 

오고 있는 두려운 현재일 수도 있겠다.

그리움 일수도

내가 아프게 한 사람 때문 일 수도 있겠다.

부끄러움 일수도 

많은 밤을 훔쳐간 

가슴 조이던 분노 일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슬픔과 후회가 꼬리를 물면 

결국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또 내게로 돌아온다.

예행 연습이 안 된다면 

하나 쯤은 돌이킬 수 있는 옵션을 달라고 

말이나 해 볼 걸 그랬다

그러면 한 걸음에 내 달려서 내 아버지께로 가겠다.

그리도 좋아하시던 자식 얼굴 

맘껏 보시라 하고

실한 멸치로 국물 톡톡히 다실거다

그 국물 에다 콩나물 듬뿍 넣어 

시원한 김치 국밥 만들고 

청량 고추 다져 넣은 알칼한 양념 종지도 하나 놓을 테다.

닳아진 내 아버지 은수저 다시 한 번 닦아 

조심스레 얹은 밥상 

사뿐히 들고 가야지.

행여나 젓가락이 더 가시는 찬이 있나 살피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말 동무 해드리다 

구수한 숭늉도 정갈하게 내 올 거다

그릇 다 비우시고 

기분 좋게 웃으시는 내 아버지 

딱 한번만 이라도 더 뵐 테다.


그런 날이 있다.

마른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으로도 

바람이 부는지 비가 오는지 

가늠이 되는 날 말이다.

그런 날은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 편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어깨를 토닥이며 내가 다 안다고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밤엔 

잠든 사람의 이불을 살며시 끌어올려 

턱밑까지 당겨 줄거다.

발끝 쪽 이불도 살짝 눌러서 

발도 꼭 만져주고 

내일도 걱정 말라고 

그 날도 오늘 같은 날 일거라고 

말해 줄 테다.

잠든 얼굴 쓸어보며 고맙다고,

머리카락 만져보며 미안하다 고백하고

가슴에 가만히 엎드려 그 소리 한참 듣다 조용히 말하겠다.


네가 있어 

나는 괜찮고 

내가 있어 너도 


그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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