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그런날이 있다

나는 장미여관에 가고 싶다 어떤 미시 (cloee) 2018-8-21  20:05:41

오락프로그램에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다름은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도 다른 이의 호불호에 사견을 얹지 않는다.


전 국민이 좋아한다는 모 프로그램은 연예인들끼리 즐겁게 논다.

이를 보는 나도 덩달아 즐거워야한다면 

진수성찬을 먹고 배를 두드리는 장면을 보며 

아 나도 배부르다고 공감하길 강요받는 거처럼 억지스러운 일이다.

 

음식점에서 누구는 국밥을 시키고 누구는 비빔밥을 시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는데 

유독 드라마나 예능, 연예인, SNS 등에 무관심 한 것은

 왜 특이 성격의 소유자로 분류 되어 혈액형까지 추궁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팬의 즐거움을 누려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난 나에 대한 약간의 오해는 그런대로 덮어두고 지내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다.

한 때는 나도 나를 이해시키거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떤 억울함을 설득해보려 애쓰기도 했겠지만 

종내는 ,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데로 보는 걸로 결국은 회귀한다는 걸 눈치 챘을 거다

아니면 내 노력에 비해 너무 미미한 결과 때문 일 수도 있고 

아예 그 퍽퍽한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지쳐버리며 의욕을 상실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다 내 열정과 시간을 쏟을 만큼 소중한 것들을 구별해 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누군가 어떤 면에 대한 내 무지와 결핍을 의심한다해도 저항할 생각이 없다.

아무튼 우격다짐이나 박제된 매끄러움은 

작은 원 하나조차도 그리지 못하고 

내 감성 아래로 가라앉는 돌멩이 같은 것이다.


세상에는 

예고 없이 모두를 불사르는 큐피드의 화살 같은 것도 있고 

멈춘 거 같이 지루한 시간의 낭비 속에서만 자생하는 그런 것들도 있다.

단정할 순 없지만

내 맘의 빗장을 여는 많은 것들은 대개 후자에 속한다


고이고 고이다 발효돼버린 시간의 퇴비를 먹고서야 자연스레 피어나는 

그런 무엇이 나는 그냥 좋은 거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내 편식을 돌아보게 한 일이 생겼다

뉴스나 볼까싶어 컴퓨터를 켜자 한 장면이 팝업 되어져 나왔다.

 60년대 허름한 다방에서나 만날 듯한 불량기의 남자들이 

커다란 빛바랜 하늘색 장미가 달린 분홍 양복들을 입고 있었다


밤새도록 베게에 비벼댄 부스스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한두 번 훓은 것이 틀림없는 헤어스타일에 꼭 맞는 

지저분한 코 수염의 남자가 헤벌쭉 웃고 있었다


금붕어 같은 착한 눈을 가진 네모난 얼굴의 남자는 

아래는 면도를, 위는 길러서 꽁지머리를 했는데 

시간이 제 아무리 용쓰는 재주를 부려봐도 여태도 앞으로도 유행할거 같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하루를 허탕 친 맘이나 달래자고 

초저녁부터 알딸딸해져선 아가씨들에게 추근대다 

또 별 수확 없이 구겨져 잔 혐의가 짙은 양복바지는 달람했다

흰 양말은 분홍구두와 바지 끝단의 공백을 채우며 촌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상상의 나래를 조금 펼쳐보자면 농한기의 한 날

담배를 손가락에 낀 채 와이셔츠 단추는 두어 개쯤 풀고 섰다

짝 다리를 하고선 수작을 부리고 섰는 불량총각들이 부리나케 담배 낀 손을 뒤로 숨긴다

꾸벅 조아리는 고개가 도무지 밉지 않아 

근엄한 이장님도 헛기침으로 미소를 꾹 누르고 지나가실 거 같다

투박한 손가락엔 네모난 돌이 박힌 철 반지 하나쯤 껴져 있을 수도 있겠다

'개그맨들 인가?' 하는데 갑자기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아침에 일어 나 보니 누가 내 옆에 있는 거야~

갈까 말까 망설이다 혹시 실수 한 것 있는지 

저기 잠간 일어나 봐요

 잠만 같이 잔건지 잠도 같이 잔건지~ "


나는 참을 수 없이 통쾌해져서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여름 땡볕꼬리에 달려온 산들 바람이랄지

 묵직한 체증이 갑자기 쑥 뚫린달지 그런 시원 상쾌다


신기도 해라…….

이토록 순전한 퇴폐가 

그물망 같던 새마을 운동과 삼엄한 계엄에도 용케 살아남았네

날렵,세련일변도의 시대에 당당히 공존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견하고 통쾌하던지 

난 본격적으로 시청하기로 했다.


미끄덩거리는 목소리는 빠다(버터라고 결코 표현할 수없다)의 느끼함과

팔월 무더위의 끈적함 ,녹다 만 눈 길의 질척거림이 있었다

늦가을 갈대숲의 휘파람까지 적당히 발라져 있다

이건, 이건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이 흠잡을 데 없는 촌스러움을 관찰하기로 했다

어중간한 나이의 우중충한 총각들이 나 바람 들었어하는 옷을 단체로 입고 있다

끈적이는 눈빛을 흘리며 원색적인 가사를 

유들한 구르브 위에다 척하니 얹고 부르는 노래가 능청스럽긴 한데 억지스러움이 없다


생판 모르는 너와 내가 부비부비 하다 보니 이 지경이 되었다고 그런데 기억도 없단다.

잠만 같이 잔건지 잠도 같이 잔건지

여자나 남자나 그까이꺼 하룻밤 괴로워 하는거 같지도 않은데 

또 그냥 가버리지도 못하는 순진함까지 있다

어리바리한데다 어리숙도 한데 도무지 어색하지도 않다

촌스러워서 세련되고 어슬프게 퇴폐적이어서 순수하다. 프로다.

화면 아래에서 친절하게 자막이 올라온다

밴드 장미여관. 화룡점정이다

꽃중의 꽃 장미와 지친 나그네의 쉼터 여관이 만나면 

왜 이리 다른 이미지가 되는지에는 

많은 사연들이 있겠지만 이 밴드 이름으로는 이견을 달수가 없다.

 

홀린듯 듣던 노래가 끝나자 

청취로만은 그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기 어려운 이 밴드의 예능프로를 뒤지기 시작했다

오랜 무명의 시기에도 촌스러움과 퇴폐정신을 고집한 총각들은 지상파를 타자 폭발적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못생긴 것도 참을 수 있고 못된 것도 참을 수 있지만 촌스런 것은 못 참는다는 세대다

그런 세련되고 개성있는 세대의 열광을 끌어낸 희한한 총각들이 내 사랑도 단숨에 가져갔다.


순수란 불순물이 없는 본래의 상태이다

그러니 만 가지 얼굴이다

꼭 흰색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욕망도 순수할 수 있는 것이다


순수란 어떤 무엇이 아니라 

이 무엇이 순수하냐 아니냐의 관점으로 보아야 이해가 쉽다

설령 훈련된 프로의 몸짓이라 할지라도 이 불량스런 밴드에게서 막 세수한 소녀의 말간 얼굴이 보였다


아름답고 순전하다

더러운 진흙연못이 피어내는 가시연꽃 같은 순수와 순전이 날 것으로 뿜어져 나와 

우리의 까다로운 사랑밭떼기를 속에서부터 뒤흔든다

그러면 세련된 팬들은 여울에 몸을 맡기고 켜켜이 쌓인 무엇들을 털어내 버린다.

촌스러움과 퇴폐는 원래 인간의 본성에 기반을 둔 인간의 생얼 인거다.

더 나은 무엇을 위해 사람들은 생얼을 꾸미고

 세상이 구르는 대로 쉼표 없는 문장을 써가며 헐떡헐떡 내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총각들은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것들을 구르는 바퀴위에 척 얹고서 백주 대낮에 나타났다

모두가 미치도록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애써 가리려던 것들 속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은 사람들의 감성 물길을 여지없이 뒤튼다

왜냐면 우리 안에는 

본래의 것 태생적인 것

순수한 것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깊은 샘이 있는 까닭이다.


나는 문득 장미여관에 가고 싶어졌다

신촌역 지나 어디쯤 있지 않을까

나는 독수리다방 쯤에 앉아 설탕과 크림을 잔뜩 넣은 커피를 마시며 

혹시나 

그 총각들이 들르지 않을까 간간히 출입문도 볼게다

운 좋은날 

그 불량총각들이 들어오면 

블랙커피 한잔에 실한 생계란도 하나씩 띄워 주라고 특별히 이르고 

카운터로 가 맵씨있게 계산할테다

그러면 개구리 눈의 총각은 두리번거리다 매력적인 팬의 뒷모습을 보게 되겠지. 하하하.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