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그런날이 있다

천재의 귀환 어떤 미시 (cloee) 2018-8-21  21:20:05

나는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이미 내 소유가 되어버린 시간과 그리운 이들이 있는 곳을 사상이나 관념의 이유로 바꿀 수가 없기에 그렇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내 오랜 동무들이 국민학교에 있고 어린 나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운 추억의 장소를 다시 이름하자 한다면 그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내 동무들과 내겐 가혹한 일이다

그러니 그곳은 우리들의 공간이다.


내 어릴적 동무 귀자는 지금껏 만난 천재들 중 단연 으뜸이다

공부는 물론이려니와 언어세계와 사고의 깊이는 이미 어른의 수준을 능가 하고 있던 아이여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에게 동무였는지는 모르겠다

설사 그에겐 아니라 할지라도 내게는 동무였다

보통사람은 천재 못 이기고 게으른 천재는 열심인 사람 못 이기고 이 사람도 팔자 좋은 사람 못 이긴다던가

부지런한 천재였던 동무를 어디쯤에 두어야할지 모르지만 

무척 총명해서 선생님조차 버거워 하던 야무진 아이였다


우리가 자란 곳은

 봉황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는지 군데군데 봉황의 흔적들이 있었다

시를 싸안고 있는 산의 이름이나 시내 복판을 차지한 봉의 알자리가 그랬다.

그 곳에는 화석으로 굳어져 돌이 된 알 세 개가 철 담장 안에 있었는데 크기가 어른의 머리만 했다

봉황이 알을 품으면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는데 

불사조인 봉황은 새끼를 버려두고 어디로 갔을까

그 곳을 지날 때 마다 행여나 저 두터운 돌을 깨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맘이 쓰였다

그 돌을 깨고 나온다 하더라도 

봉황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가고 없는 낯선 도시에 남겨질 새끼 봉황 때문에 울적해진적도 있었다.


정작 봉황 그림을 본 것은 한참 후였다. 낯설지 않았다.

용의 그림을 보았을 때도 물고 있던 여의주가 아니라 낯설지 않은 눈매에 시선이 갔다

내동무의 눈매와 닮아있었다


주검이라던가 

100도를 오르내리는 미열 등의 생소한 말들을 열 살의 동무는 글에 섞어 넣곤 했다

그러니 동무의 글은 종종 어른의 대작이라고 심사위원들의 오해를 샀다.

뛰어난 재주를 믿고 잠망스레 구는 가벼움도 없었던 동무는 또래들의 놀이에도 기꺼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연극을 하기도 하고 마분지와 종이에 예쁜 공주와 옷들을 그려서 오려 입히곤 했다.

나는 그때 물결치는 드레스 밑단을 그리는 법과 공주의 섬세한 손가락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이 부분은 아주 어렵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는 동안 동무의 이름이 묻혀져 나를 의아하게 했다

이과와 문과로 나뉜 탓에 만날 기회마저 줄었지만 대학 진학 후에도 동무를 영영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향을 갈 때면 봉 알자리에 들르곤 했다.

새끼 봉황은 대학 1년후 휴학으로 소식이 끊긴 내 동무처럼 여전히 돌 속에 갇힌 채 미동도 없이 놓여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만화책을 좋아하는 내가

 운 좋게 심상치 않은 필력이 담긴 만화를 발견한 곳은 

약속 시간을 채우느라 들른 서점이었다

듬성거리며 읽은 몇 장이 만화는 허구라는 사회적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구체적인 역사를 타고 방대하고도 서사적으로 풀어내는

남자들과 여자들과 인간들의 흥미진진하고 탄탄한 얘기가 대단한 필력의 그림과 더불어 지면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이 책을 만화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가들도 사랑하지만 만화가의 이름은 뚜루루 꿰고 있는 사람이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림만 보아도 누구 책인지 혹 문하생의 작품인지도 안다

그 중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 동무가 떠올랐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만화가의 이름은 달랐지만 내 동무라면 이런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그냥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무의 작가 명이었다


우리들의 국민학교는 생각보다 많은 흔적과 정보들을 내 직감과 기억 속에 새겨 놓았던 것이다.

나는 구하는 데로 단숨에 읽어 나갔다. 역시 내 동무는 천재다

동무의 눈이 아니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것들을 페이지 마다 채워놓아서 거듭 읽어도 재미가 있었다.

내게는 이사 때 마다 챙겨 다니는 애장만화 골 마을 사람들이 있다

동무의 만화도 끼워 넣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동무는 곧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후속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맘을 태웠다

깊은 사고와 통찰력이 담긴 동무의 책을 읽는 동안 동무가 놀다 떠난 빈자리가 비로소 메꾸어 지기 시작했다

소식 없이 사라졌던 왕의 귀환을 기뻐하는 이처럼 

사랑하는 천재의 귀환에 그냥 웃음이 벙긋벙긋 나왔다

순간 이제는 봉황의 알자리를 지나더라도 더는 답답하지 않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락을 하려다 비밀스런 반쪽짜리 해후를 조금 더 즐기고 싶어졌다

때가 차기까지 묵묵히 묵혀둔 내 동무의 꿀단지가 이제부터 하나씩 열릴 것을 생각하니 좋아서

 다른 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동무의 필명이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릴리나 유리는 아니었지만 맘에 들었다

결국 반쪽짜리 해후만 하다 시작된 나의 긴 타국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동무는 운동권에서 조차 필독 도서가 될 만한 만화의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다

자기 계발에 열심인 천재가 팔자 좋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쥐락펴락 하는 판이니 그 들의 앞 거기가 바로 동무의 자리일 것이다

나는 올 가을에는 꼭 동무를 만날 생각이다

그리고 말할까 싶다.

너와 함께 한 내 국민학교는 풍성했었다고.


그리고 가만히 물어 볼 참이다.


네 국민학교는 너무 외롭지 않았냐고…….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