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그런날이 있다

나무심기와 이사 어떤 미시 (Cloee) 2019-3-10  15:25:31


 

결국 나무를 심었다

살아 있는 걸 다 좋아하는 나지만

제 발로 걸어 다니지 않고도 주위를 두루 아우르는 나무는 더욱 그렇다.

쉴 새 없이 말하고 불러들이고 드리우고 품다 결국

 자신을 내어 주기까지 하는 넉넉함 때문인지 나는 나무가 좋다.


우뚝 서있는 것 만으로도 

모두를 제압하는 동네 어귀 정자 나무나 

까탈스런 노송의 독야청청이 좋다

냇가에 심기지 않아도 실버들을 출렁이는 버들 나무도 그렇고

한 철 잠간 피려고

일 년 내내 자리를 차지하고 섰는 목련의 지고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척박한 땅을 열고 올라온 

억척스런 잡목들이 

서로 버팅기며 우거져 있는 쪽이 내겐 한결 더 아름답다

한여름 땡볕을 조각 틈새로 냅다 던진 햇살 위에서 조잘대는 

비루한 잎사귀들의 팔랑 거림도 좋고 

겨울 등성이에 서서 

회색 몸 가지들을 서로 비벼대며 

대책 없이 겨울 바람에 훑어지는 그 가난함도 좋다.  


제 혼자서야 그 바람을 어찌 이길까 마는 

저 같은 비루 여럿 옹기종기 모여 

니 팔 인지 내 팔인지 구분도 없이 섞어 붙들고  설겅 설겅 부비다가 

너른 채망 같은 가지에 칼바람 부질 없이 걸러 가며 

봄을 기다리는 궁색함은 물론 이려니와 

동무들의 어깨에 능청스레 묻혀 가는 절박함 마저 참으로 좋다


그 사람이 좋아지면 

두둑한 뱃살까지도 좋아지는 것처럼 

이러저러한 연유로 네가 좋기 보단 

너를 좋아하다 보니 이러 저러함들 까지 좋더란 게 맞을 거다.


이래 이사를 하면 

난 더 이상 심을 자리가 없을 때 까지 나무를 사다 나른다

이제 되었다 싶을 즘 이면 

마당 어느 귀퉁이의 멀쩡한 돌 판도 좀 들려 나오고

앞마당 잔디마저 일부 벗겨 내고야 마는 나의 나무 사랑은 특정한 나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꽃나무와 울타리 나무 에다 

그늘 나무는 물론이거니와 

대나무에 이르러 과일 나무까지 아우른다

대나무는 심을 장소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허나 번식력이 조절된 품종을 고르는 걸로 시작해서 

구덩이를 파고 시멘트로 단단히 단도리를 하고도 

옆집에 허락을 구하기 까지가 나는 그다지 번거롭지 않다


그런데 나무들이 

제 설 곳에 서서 

꽃도 피우고 새도 불러들일 만하면 

꼭 예기치 않게 이사를 하게 된다

연이어 너덧 번 거듭되자 

이걸 저것이라 쉬 단정해 버리는 가벼움을 질색하는 나로서도 

징크스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음은 

명백한 자료에서 산출된 가능성 때문이다.


한번은 남쪽과 동쪽 전면이  산림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골짜기 숲으로 완만히 이어지던 터에

 내 좋을 대로 집을 지은 적이 있다

게다가 막다른 골목 안 쪽에서 펼쳐진 터(cul de sac)라 여간 내 맘에 드는 곳이 아니었다


모서리가 품위있게 둥글여진 돌들로 지어 올린 

독특하고도 기품이 있던 입구를 거쳐 현관문에 들어서면 

높은 층고 밑 적당한 길이의 회랑이 이어졌다

그 끝에서 만나지는 넓은 거실 너머로 

툭하고 펼쳐지던 숲의 시원함은 

지루한 공사 기간도 다 용서가 될 정도 였다.

 

여기서 오래 오래 살리라 마음먹자 난 슬그머니 나무 심기를 멈췄다

나를 그렇게 편안하게 만드는 각종 잡목들로 우거진 비탈 숲에서 벌어지는 

봄 여름의 싱그러움은 말로 할 수도 없다.


계절을 넘어 가을로 가노라면 

찬 비 마저 닿는 족족 태워버리는 불덩이들이 

이 구릉 에서 저 구릉 으로 우루루 몰려 다니며 불을 질러 댄다

그러면 불길은 

하늘로 옮아 붙어 석양이 되는가 싶으면

 황급히 제 곳으로 내려오곤 했다.


칼바람 겨울 언덕을 넘을라치면

또 다른 장관이 버티고 있어 

한 숨 돌릴 새도 없으니 딱히 나무가 더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늘로 벌리고 선 진 회색 가지로 내려앉은 눈발들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성 싶은 설 맥으로 미로를 만든다


멋 모르고 들렀던 겨울 바람이 우우 거리며 

미로에 갇혀 맴을 도는데 

거실 벽난로 한 켠에는 

세로로 길쭉하니 높다란 천정까지 

잘 마른 장작들로 빼곡하다


한 토막 씩 불 속으로 던지노라면 

타닥 타닥 제 몸을 태워가며 

바람아 잘 들어라 왼쪽이다 오른쪽이다 외쳐 댄다

종내는 불똥들이 

안타까운 눈물이 되어 튀어 오르던 그 겨울밤의 고즈넉한 소란스러움은 

가을이나 여름, 봄에 조차도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문득 하늘로 뻗어 둘러 친 이탈리안 노송에 내 맘이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정황 어느 한 군데도 

삶의 터를 옮길만한 이유도 낌새도 없다는 것을 재차 삼차 확인하자 

심을 곳이야 찾아보면 지천이고

아니어도 한 켠에 두 줄로 세워도 좋을 일이라 

냉큼 나무 수십 그루를 주문했다

그러고도 그 만큼을 더 사들였다


일주일 간의 나무 심기가 끝나고 

몇 날이고 쏟아지던 함박눈 속에서 

고구마를 구우며

나 이곳에 뼈를 묻으리 했던 그 해 겨울이 마저 끝나기 전에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다

선택의 여지도 

시간적 여유도 없이 결정된 일이었다


마침내 이사를 하기 까지 

누구도 징크스를 입 밖에 내지 않음으로 

내 슬픔을 더는 휘젓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그 겨울의 작은 위로였다.


징크스가 사실로 자리 매김 해버린 해였다.


이러니 이사를 하고 싶으면 

내가 집에 나무만 심으면 된다고 누가 말한들 

나로서는 부정할 수도 없고 

이사도 이젠 부치는 터라 

이 집에선 소소한 꽃이나 몇 포기 심던 차였다


그런데 며칠 전 문득 뒷마당을 보니 

오래된 나뭇가지 사이로 

창문 몇이 수영장을 언뜻 언뜻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면 안 되는데……


못 본 걸로 하자 

어차피 저 수영장이야 관리하는 이의 일터 외 

무슨 기특한 구실을 하는 물건도 아니다

내가 수영에 갑자기 꽂힐 리도 만무한 노릇이라 

단단히 다잡은 맘인 채 나무 값을 지불한 건 고작 일주일 후였다


결국 그렇게 또 

군데군데 옆집을 가린다는 핑계로 

키 큰 나무 여섯 그루가 뒷마당에 심겨졌다

올해가 겨우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말이다.


나무 심기가 마무리 되면 해를 못 넘기던  이사를 

준비해야 할런지 어쩔는지 모르지만 

이미 심겨진 나무를 파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로서는 감쪽같이 나를 숨겨준 내 나무들이 좋아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비록 내 손바닥으로 내 눈 가리고 돌아서선

너 네 나 안보이지?’ 할 뿐이란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사 갈 때 가더라도

내 나름 세상 한 귀퉁이로 숨겨진 내 집에서 꽁냥 거리고  놀아 보는거다.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