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그런날이 있다

이런 밤도 있어야지 어떤 미시 (Cloee) 2019-6-21  07:42:29


사람은 한군데쯤 허물어질 수 있는 곳을 가지는 게 좋은 거 같다.

긴장으로 뻣뻣해진 감성이 부드러워 질수 있다면 무엇이어도 좋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겐 그런 쪽문이 없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어서

모범적인 어른의 모양새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때론 너무 다큐 같은 인생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 든다.

드라마도 있고 예능도 있어야지.

학습으로 얻기 어려운 것 중 으뜸이 타고 나지 못한 것 인거 같다.

내겐 음주가무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기운을 품은 친구나 지인을 좋아한다.

난 그녀들의 약간은 몽환적인 흔들림이 좋다.

어떤 땐 그녀들이 만들어 내는 일렁거림만으로도

내 감성의 물꼬에 박혀있는 무엇이 부유하다 떠내려가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 집 노래방은 

그녀들의 귀여운 몽환의 곁불이라도 쬐어볼까 하는

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못하고 너는 잘하니 네가 해라 난 볼게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래서 내 나름 대안이 그녀들을 위해

그리고 나처럼 

의도와 상관없이 다큐를 찍으며 사는 또 다른 그녀들을 위해 

와인파티를 연다

여인들의 밤(lady's night)이나 뭐 그런 것이다.

 

느슨해도 되는 날로 이어지는 저녁쯤에

아내도 엄마도 아닌 여인으로 그녀들을 부른다.

이른 밤 어느 시간과 드레스 코드만 주고 RSVP를 받는다.

간혹

습관적으로 또는 태생적으로

약속시간을 자, , , 묘 단위로 줘야 하는 여인도 있는데

이 여인은 이 파티만은 초대되지 못한다.

 

어둠안의 노란색 불빛은 자애로와

여인의 주름이나 

추운 한기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감쪽같이 숨긴다.

정원의 빛바랜 돌이나 

벗겨지다 만 껍질이 지저분한 

나무밑둥을 가리며

기억 속 한 장소로 보여지게 한다.


그녀들이 올 때 쯤

수영장 속에 박힌 전구에 불을 켜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편백이 둘러친 뒷마당을 향하여 

시원하게 앉은

다이닝 룸의 커튼을 활짝 밀어 양 옆으로 몬다.

샹들리에 밑 

나선형 계단을 따라 흐르는 

공주의 우아한 드레스자락 마냥

커튼의 허리를 

자주색 실과 금줄 술을 느슨히 묶는다.

 

오래된 격자창 너머로 

푸른빛이 일렁이는 수영장과

정원등 아래 비치는 

잔디를 둘러선 키 큰 나무들이

파티 개최를 기다리는 집사들처럼 서있다.

다이닝 룸과 현관에서 이어지는 복도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지 않도록 불빛을 조절한다.

 

음악은 색소폰 연주로 할까.

노래도 가끔 준비하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어느 틈엔가

그 가사를 따라 부르며

자기만의 세계로 빠지는 여인이 있어서 연주 정도가 좋다.

지난번엔 

멜라니 사프카의 가장 슬픈 노래를 곡 사이에 넣었다가

몇몇이 과하게 지나간 시간을 회고하고 성찰 하는 바람에

와인을 찾아 차고까지 뒤져야 했다.

 

스피커는 소파 밑이든 커턴 뒤든 두어 

발 목쯤에 음악이 걸리게 한다.

그리고 셜록홈즈가 다니는 길에 있을 듯 한 바깥등을 켠다.

녹슨 회초록의 몸통이 배구 공만한 등 세 개를 받쳐 들고 서 있다.

신전을 떠 바치던 

이오니안 양식을 맘에 둔 이태리출신 디자이너 작품일 것이다.

정원 초입 등이다.

도굴꾼에게 보쌈된 나약한 신은 그렇게 도시 집들 앞에 우두커니 있다.

낮게 걸린 세 개의 달이

밤비를 맞고 있는 듯 한 운치를 느낀다고 이웃들이 좋아하는 등이다.

 

파티 시작 시간 10분전에서 5분후 사이에

냉장고와 팬트리를 뒤진 것들을 정갈하게 든 여인들이 모인다.

하나, , , , 다섯 때론 여섯.

상 받은 와인이라며 럼주 병 같은 와인을 든 화영이가 온다.

치마와 립스틱이 말린 장미 같다.

세 아이를 돌보느라 분주한 엄마는 벗어두고 여인으로 온다.

정시 직전의 벨은 리언니 아니면 정현이다.

리 언니는 한 아름의 꽃과 낯익은 와인을 들고 온다.

어디에 있나……. , 빨간 구두.

난 언니가 빨간색 차를 타고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오랜 경력 때문인지 무엇을 하던 기내 서비스를 연상시키는 정현 이는

빨간 액세서리로 드레스 코드를 맞추어서

크래커가 담긴 가방을 들고 맵씨있게 들어선다.

솜씨 좋은 연지는 

특급 호텔 주방에서 금방 요리된 듯한 연어 샐러드를

빨간 블라우스에 맞춰 액세서리처럼 들고 온다.

연지는 싱싱한 연어 샐러드를 가져오기 위해

파티 오기 삼십분 전에 장을 봤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늦기도 한다.

 

무엇을 가져오라거나 가져가겠다는 말도 이 파티엔 없다.

무언가가 없으면 내 팬트리를 열면 되는 것이지.

시간을 어기거나 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거의 없는 여인들이다.

 

공통 화제를 벗어나거나 괜스레 떠도는 얘기나 산만한 안부로

이 밤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짧은 인사와 

자기가 가져온 음식이나 물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제비뽑기 진실게임으로 시작된다.

 

유리컵 안에

그날의 드레스 코드와 깔 맞춘 종이 20개가 길게 세로로 접혀서 꽂혀있다.

다음에 태어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인연으로

가장 슬펐던 순간과 기뻤던 순간은

맘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두 가지라면

다시 돌아 갈 수 있다면 언제로? 뭐 그런 것들이다.

소녀들이 늦은 밤 

이불 속으로 부챗살처럼 발바닥을 맞추고 

둘러앉아서 하는 진실게임 같은 거다.

 

친밀감은 좀 유치한데서 자생하는 꽃이다.

그 사람의 고백정도에 따라 

진문진답이나 우문현답이 

현문우답이 꼬리를 문다.

제비를 뽑은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목하고

결국은 모두가 자기 얘기와 근황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와인이 한 모금씩 비워지고

여인들의 나이테도 한 줄씩 옅어져 

소녀가 될 즈음 헤어진다

.

내 파티는 신데렐라 규칙이다.

그날의 여인들은 나의 초대를 받은 신데렐라들이다.

그래서 내 집 부엌에서 그녀들이

설거지나 요리나 테이블 세팅을 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그 밤은 여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파티로 이미 맘이 설레는 신데렐라들은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기 전에 집으로 바삐 가고

보쌈 된 신이 들고 있는 

세 개의 달 아래에서

마지막 차가 사라지는걸 보고 있는 내 어깨를 남편이 가만히 만진다.

 

이런 밤도 있어야지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