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재 글/김재홍 그림 |창비|2005년 08월 15일 어느 비오는 날 아침,학교 가는 길에 영이는 담벼락에 기대 앉아 있는 거지 노인을 보았어요.짓궂은 아이들은 노인을 손가락으로 건드리고문방구 아주머니는 대놓고 '재수없다'고 했어요. 영이는 사람들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주저하긴 했지만자신의 파란 비닐 우산을 할아버지에게 씌워 드렸어요. 그리고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거지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영이의 파란 비닐 우산만 벽에 세워져 있어요. 영이는 조그맣게 혼자말을 했어요. 할아버지가 가져가셔도 괜찮은 건데.... ------------------------------------------------------------------------------------ 어린 시절, 동네마다 거지 한 둘은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분명히 기억 속에 살아 있지만, 기억을 하는 나조차도설마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내 나이 예닐곱살이었을까?담벼락에 모로 누운 거지 여자. 내 손을 잡고 지나던 내 젊은 엄마가 거지 여자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엄마가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여자 품에서 꼬물거리는 갓난아기.엄마젖을 찾는 듯 바둥대며 낑낑거리지만 모로 누운 거지 여자는 미동도 없다.어디가 아픈 건지, 생을 체념한 건지...어린 나는 그 여자의 감은 눈이 떠지지 않길 바랐다. 눈을 볼 자신이 없었다. 많이 무서울 것 같아서. 엄마는 지척에 있던 구멍가게로 달려가 동그란 빵을 두 어개 샀다.거지 여자의 늘어진 손에 쥐어주었지만 여자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엄마가 그 손을 잡고 힘을 주게 했다. 역시 힘이 없었다. 엄마가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아기 엄마. 엄마가 자식은 지켜줘야죠." 거지 여자가 빵을 쥔 듯 보였다. 힘을 준 것이다. 거지 여자는 여전히 모로 누워 있었지만 울거나 하지 않았다.우는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왜 우는 지 알 수 없었다.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꼭. 아프게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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