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어쩌면 이렇게 말이 통하질 않냐...'
'아 놔~ 진짜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하는 없네...'
'에고, 이건 또 어떻게 말하냐...'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세요?
전, 완~전 많아요. 그래서 이 글은 이런 생각을 해본 딱, 저 같은 분들을 위해서 정리한 글입니다.
<<대화의 5단계>>
상담이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대화에는 5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계단처럼 5단계를 차근차근 올라갈 때 건강한 관계,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화에 단계가 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모든 사람과의 대화가 같은 단계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즉, 상대방에 따라 나눌 수 있는, 나눠야 하는 이야기의 적정 수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와다다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해대는데 내 마음속에는 '뭐 이런 이야기까지 내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반대로 좀 가까워졌다 싶어도 도무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사람... 양쪽 다 그 사람과 내가 서 있는 대화의 단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만나면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내 친구와 나는 어느 단계에 서 있을까? 우리 남편과는? 우리 아이들과는? 대화의 5단계를 통해 나와 배우자, 나와 이웃, 나와 동료들 간의 대화 단계를 점검해보시는 기회 되시기 바랍니다.
<1단계 : 인사 단계>
"안녕"하고 인사하는 단계입니다.
전문가에 따라 level of acquaintance(지인, 안면식이 있는 사람) 또는 Small Talk 단계라고 표현합니다.
대화의 가장 기본 단계로 아는 사람과 가볍게 인사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2단계 : 정보 단계>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신문에서 봤는데..."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단계입니다.
Sharing of Information 또는 Factual Conversation 단계라고 표현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안면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갈 때, 나의 이야기가 아닌 제3의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제3의 이야기라 하여 소위 뒷담화라고 하는 제 3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뜻하진 않습니다.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연설, 각종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의 관심사를 찾고 정보를 교환하는 단계입니다. 서로가 같은 관심사가 있는지, 관심사에 대한 서로의 의견은 어떤지, 상대와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첫 데이트에서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나누는 대화들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개인 신상에 관해, 가족에 대해 자세히 묻는 대화 말고, 살짝 겉도는 듯한 느낌의 주제들 말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클릭(!)이 되면 급 친근감을 느끼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배우자에게 "어디가?(Where are you going?)"라고 물었는데 "나가(Out)"하고 사실만을 말한다면 바로 이 단계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3단계 : 생각 단계>
"내 생각에는..." "나는 ... 이렇게 생각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Sharing of Idea 또는 Personal Opinion and Beliefs 단계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들은 이 단계부터는 친밀감이 나타나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조금 더 오픈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친밀감이 시작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나에게 ... 이런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드러내기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데이트 상황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방이 나와 같이 생각을 하는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나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부부 사이라면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인에게 벌어진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말하는 단계가 여기에 속합니다. 아이들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이고요.
<4단계: 감정 단계>
"좋았어" "속상했어"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Sharing of Emotions 또는 My Feeling and Experiences 단계라고 부릅니다. 남들의 의견, 겉으로 드러난 사실을 넘어 내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분이 바로 이 3단계와 4단계입니다. 3단계부터는 친밀감을 느끼는 사이의 대화이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거나 부부 사이의 대화는 대부분 3단계 정도에는 도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오늘 점심에 칼국수 먹었어" "오늘은 부장이 무척 화를 내네"로 3단계 대화를 많이 하는 반면 여성들은 "오늘 점심에 칼국수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 "오늘은 부장이 화를 내서 짜증 났잖아" 등과 같이 <사실+감정>을 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남편들은 "점심 먹었어?" 물으면 "응", "맛있었어?" 물으면 "그냥 뭐.. 응"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위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이 경우 남자의 대화는 3단계, 여자의 대화는 4단계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쌓이고 쌓여 갈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5단계 : 필요 단계>
"~게 되었으면 좋겠어" "~이 필요한 것 같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깊은 성찰이나 생각, 내면들을 깊게 나누고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My Need 또는 Deep Insight 단계라고 부릅니다.
상대와 충분한 교감이 있었다는 확신 속에서 나를 더 많이 내어 보이는 단계입니다.
혹시 나를 위해서 당신이 ~을 해줄 수 있는지, 나에게는 어떠한 감정적 지원이 필요한 데 이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뜻합니다.
데이트를 하는 사이라면 앞선 4대 단계를 모두 지나와 나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I want to spent my life with you)"라고 나의 필요, 바람을 담아 프러포즈 하는 단계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봅니다.
부부 사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조금 더 존중받기 원해요"(영어 번역이라 표현이 매우 어색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마음이 아파요"(그렇게 말하지 않기를 요청하는 표현이기에 4단계를 넘어 5단계 표현입니다) 등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5단계의 현실 적용>>
전문가에 따라서 5단계를 지칭하는 말이나 각 단계를 구별하는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맥락은 같습니다.
보통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하는 3단계부터 소위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친밀감이 생기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감정을 넘어 자신의 필요를 요청할 수 있는가에 따라 대화의 단계가 어디까지 깊어져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아내들은, 또한 엄마들은, 아마도 여성들은... 3~5단계를 넘나드는 대화를 합니다. 아기가 울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요.
아내는 남편에게 "아기가 울고 있는데 뭐하고 있어(3단계 사실)? 시끄럽지 않아(4단계 감정)? 아기 좀 봐줘~(5단계 필요)"를 한 번에 말해 버립니다.
많은 경우 이미 짜증이 나있으니 상당히 앙칼진 목소리로, 신경질적으로요. 물론 아기가 울고 있어서 시끄러운 상황은 엄마에게 위급한 상황(!?)인 만큼 3단계부터 5단계까지 한꺼번에 뛰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듣고 있는 남편은 평소에 집에서 "갔다 왔어" "밥 먹자" "잘래" 등 3단계 대화만 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한국 남자들은 4단계 대화도 힘들어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한국 남성 문화에서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남편, 그냥 옆집 아저씨같이 집에서는 "하이(Hi!)"만 하는 1단계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3단계(혹은 1단계?)에 서 있는 남자에게는 3단계부터 5단계를 순식간에 뛰어 올라가는 아내의 말은 같은 한국말이라도 외계어 같을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때론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말이 통하는 대화를 하려면 일단 내 말을 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나에게 어떻게 말을 하는지, 상대방과 나의 대화는 어느 단계에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단계가 다르다면?>>
바로 여기에서 대화의 갈등이 발생합니다. 소위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가 서 있는 단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몇 단계 대화를 하고 있는가는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의 기준으로 책정됩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5단계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남편은 "오늘 날씨가 좋네" "나 나가" 등의 2~3단계에 머물고 있다면, 이 부부 슬프게도 2단계 또는 3단계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한 대화 세미나에서 들었는데 그 때 한 참석자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남편과 말이 안 통한다던 그 분은 "그럼 어떻게 하면 남편을 5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나요?"라고 물었던 거죠.
강사께서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1. 남편의 대화 단계를 파악할 것
2. 남편의 대화 단계에 같이 설 것
3. 조금씩 같이 위로 움직일 것
4. 윗 단계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면 일단 후퇴할 것
5. 시간을 두고 다시 시도할 것
그러니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말이 안통하는 상대방을 일단 파악한 뒤, 눈 높이를 맞추고, 윗 단계로 이동한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현재 3단계의 남편이 있다면 이를 한순간에 5단계까지 끌어올리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또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인 거죠.
<<너와 나는 어디에 있는 가?>>
제가 이 '대화의 5단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이 개념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관찰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그 사람과 내 감정(4단계)까지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혼자 자기 말을 막 하면서 화난거 속상한거 다 털어놓고 부탁까지(5단계) 한다면, 우와~ 이런 관계 진짜 부담스럽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왜 그렇게 부담스러운지 몰랐는데, 이 5단계를 알고 나니 나는 아직 그 사람과 3단계 혹은 2단계 정도만 머물고 싶은데, 그 사람은 혼자 5단계까지 가서 날 막 끌어당기니 감정적으로 싫은거였습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 뭐든지 자발적으로 해야 신나는 법이잖아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차근차근 눈빛 맞춰주고, 적당히 질문도 해주면서(우리가 몇단계에 있는지), 감정도 공유하면서(4단계 진입!) 대화를 잘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마음을 터놔도(5단계)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차근차근 5단계까지 오른 가까운 친구들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가 됐을 수도 있고요.
혹시라고 기회가 되신다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단계를 점검 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래 써놨던 글은 부부관계에 초점이 조금 더 맞춰있어서 남편의 단계를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나와 같은 단계에 머물 수 있을지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글이 길어져서 다음 편으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기본 원리는 비슷하기 때문에 자녀들과의 대화법도 비슷하겠지요? 기회가 되면 자녀와의 대화법도 소개해보도록 할께요. 저 맨날 못해서 무너지지만, 여전히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같이 답을 찾아가고, 같이 노력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린 곧 다른 글에서 다시 만나요~~ *^^*
괜찮으시면 댓글 달아주셔도 완~전 좋아요.
제 글을 어떻게 읽으시는지... 솔직히 쓰는 사람 입장에서 궁금하긴 해요.
근데 글이 너무 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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