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는 2월이 되면 남편과 나는 갑자기 영화광팬인양

노미네이트된 영화들을 한 번에 몰아본다. 그리고는 점수를 매기고 누가, 어떤 영화와 배우들이 상을 받을지를 점친다.

이러기를 수 년, 매 년 반복이지만, 늘 흥미롭다. 가끔씩 내기를 하고 돈도 딴다.

내돈 니돈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고나면 신닌다. 돈 보다는 수상자를 맞췄다는 일종의 성취감일거다.

이젠 꿈이니 야망이니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그러진 나이가되서인지, 

이런 식의 성취감이라도 얻으면 그날 하루는 기분이 들뜬다. 그래서일까?

라라랜드. 이 영화가 마음에 와서 콕 박힌 이유가.

 

La La Land. 이 영화는 꿈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며 살고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라라랜드를 살아본, 이젠 그저 추억속에서나 가능한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 위한 이야기다. 

다락방 한 구석 먼지쌓인 상자 속에 꼭꼭 싸서 숨겨놨던 기억,  영화 La La Land는 그 걸 살포시 꺼내 보여준다.

이런시절이 있었잖아, 우리도 이랬었잖아 라고 속삭이며.

 

Mia 는 영화 스튜디오안에 있는 커피샵에서 일하는 영화배우 지망생이다.

엘에이서 누군들 배우를 꿈꿔보지 않았겠냐마는, 이 아가씨 아주 당돌하기가 그지없다.

자기표현 뚜렷하고, 엉뚱하고, 생기발랄하고, 이쁘다. 오디션 보는 족족 다 떨어져도 포기할수 없는 꿈이 있다.

관객들이 '나도 한 때는 너 같았어' 라는 말을  절로하게 만들만큼, 젊고 매력이 넘친다.  

 

Sebastian, 재즈를 사랑하는 남자.

정통 재즈만이 갈 길이라고 믿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오늘도 여기저기 다녀보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않고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많이 없지만, 그래도 꿈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남자, 

관객들은 이 남자를 통해 또 다시 그들의 젊은 시절을 본다. 

 

이 둘이 우연찮게 여기저기서 자주 부딪힌다. 그것도 별로 달갑지않게 말이다.

그 달갑지 않음이 인연이 되고, 인연은 사랑이 된다.

사랑의 힘은 역시 무섭다.

첨부터 '난 재즈가 싫어요'를 외치던 Mia가 재즈를 사랑하게 되버린거다.

거기다 사랑하는 이 남자의 '꼬드김'에 빠져 어려서부터 재능를 보이던 연극 대본쓰기에 돌입한다.

그뿐인가

정통재즈만 고집하던 Sebastian은 보다 안정적 직업을 위해 새로운 재즈 분야를 선도하려는 학교친구의 밴드 영입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지금껏 연주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음악을 연주해 Mia를 당황케한다.

 

그렇게 어렵지만 서로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두사람은 어느날, 둘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걸 깨닫는다.

서로가 가는 길이 같은 한 길이 아닌 갈래길임을 암암리에 느껴버린 두사람은 아쉬움속에 서로를 보낸다.

 

그리고 5년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래서 이젠 나름 성공한 모습의 그들이 또 우연찮게 만난다.  

그리고 Sebastian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오픈한 재즈카페에서 그의 피아노 선율을따라 그들은 La La Land 로 잠시 돌아간다. 

서로에게 틱틱거리고, 설레고, 사랑하고, 웃고, 울고, 가슴아팠던 시절, 

그리고 또 그 둘은 갈래 길이 아닌 같은 길을 선택한 자신들도 본다.

이렇게 떨어져 한 사람은 객석에서 한 사람은 피아노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둘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라라랜드는 그렇게 그들에게 남아있다. 아련한 기억으로, 아프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그래서 이번에도 두사람은 미소로 서로를 보낸다.

그 들의 기억속에 La La Land가 존재하는 한, 그들은 사랑은 영원할테니까.

 

꿈이 있었고, 그로 인한 절망과 아픔이 있던 시절, 갈 길을 몰라 방황할때도조차도 패기를 잃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무었보다도 사랑이 있었던 그 시절

영화는 우리네의 그시절을 La La Land 에서 이야기한다.

 

La La Land 하면 주로 엘에이와 헐리웃을 떠올린다.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라라랜드는 어떤 특정 장소가 아닌, 우리가 아직도 간직하고있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이고 추억이다.

그래서 영화속의 배경도, 의상도, 음악도, 그리고 춤 동작들까지도 모두 상당히 복고풍이고 게다가 화려하다.

현실과 매치가 됐다 안됐다한다. 추억이니까.  추억속에선 뭔들 가능하지 않을까...

영화 끝에 "The End"도 마치 아주 오래전 무성영화나, 50, 60년대 영화 엔딩처럼 슥 올라간다.

 

연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스토리도 나쁘지 않다. 연출도 탁월하다.

Manchester by the Sea 도 근래에 보기 힘든 수작이지만, 이 영화 우리를 갈등하게한다.

남편과 나 둘 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La La Land 에 걸어본다. 우리 이길 수 있을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