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어버리고 나니, 이젠 정말 이 곳이 내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하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질때가 있다.  가끔씩 눈에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차별과 선입견의 두터운 벽을 느낄 때는 그 뻐근함이 더하다. 

어딜가도 어떤 식으로든 차별이란건 존재할거고, 고정관념이라든가 선입견의 벽은 우리를 갑갑하게 하겠지만, 그걸 깨지 못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특히나 우리가 그 차별과 선입견의 대상이 된다면 말이다.

The Lunch Date, 이 영화를 처음 보게된건 한 교실에서였다. 

제목이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나는 이 영화가 로맨틱 코메디정도의 영화 라고 단정하고, 

왜 갑자기 수업시간에 이런 영화를 봐야하냐고 툴툴거릴려고 입을 여는 순간 영화가 끝나버렸다.

이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짧다. 시간상으로는 고작 10여분 밖에 되지 않는 독립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여느 영화 못지 않다. 아니 그 어느 영화보다 길다.  

그래서 쉽사리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가 뇌리에 와서 박힌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 본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기차를 타기위해 바쁜 걸음을 옮기던 한 중년의 여자가 복잡한 기차역에서 어떤 남성과 부딪혀 가방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지고, 그 일로 여자는 기차를 놓치고 지갑도 잃는다. 다음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이 여자는 한 카페에 들러, 가지고 있던 잔돈으로 샐러드를 주문하고, 샐러드와 가방들을 자리에 놓고 포크를 가지러 간 사이 홈리스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주문한 샐러드를 먹고있는 황당한 모습을 보게된다. 다른 음식을 주문할 돈이 없던 이 여자는 그 남자가 먹는 샐러드를 같이 먹게되고, 식사를 마친 이 남자는 커피 두 잔을 들고와 여자에게 권한다. 여자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기차시간이 되서 카페를 떠난다. 기차역에서 이 여자는 카페에 쇼핑백들을 두고 나온걸 기억하고 카페에 달려가고, 점심을 함께한 남자와 자신의 쇼핑백들이 사라진걸 알고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잠시후 자신의 쇼핑백들과 자신이 주문한 샐러드가 그 다음 테이블에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게된 여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되고, 다음 기차를 따고 떠난다.

1989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주 짧은 흑백 영화다. 거기다 대사도 거의 없다. 

배경에 흐르는 음악과 흑백의 영상을 통해 우리는 영화 속 시간이 1989 년 보다 훨씬 그 이 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뉴욕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에서 시작하고, 언제나 처럼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역에 주인공인 중년의 백인 여자가 등장한다.  옷차림새와 들고 있는 쇼핑백에 쓰여있는 로고에서 우리는 이 주인공 여자가 꽤나 부유한 여자임을 짐작할수 있고, 사람 많은 기차역에 혼자 나온게 마냥 편하지 않음을 이 여자의 몸짓을 통해서 보게된다.  

또 영화는 기차표를 구매하는 기계에서 동전을 찾는 홈리스로 보이는 흑인 남자를  꽤 긴 시간 –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10여분 남짓한걸 고려한다면 -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기차를 타러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주인공 여자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흑인 남자와 부딪히는 장면,  그 남자가 주인공 여자를 도와 흩어진 물건들을 같이 집어 주려하지만 여자가 이를 매몰차게 거부하는 장면과 여자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당황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영화가 이 만큼 진행이 되면, 마치 마법에라도 걸리듯 우리의 머리속엔 자연스럽게 고정 관념이 고개를 들고, 선입견이 스믈스믈 자리를 잡는다. 

지갑을 잃어버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음을 깨달은 주인공 여자가 들른 카페에서도 영화는 선입견과 편견의 그물을 놓고 우리가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관객들은 주인공 여자가 포크를 가지러 간 사이 홈리스 처럼 보이는 흑인 남자가 그녀가 주문해 놓은 샐러드를 먹고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와 함께 황당해 하면서도 그 상황을 어렴풋 이해한다.  영화가 쳐놓은그물에 보기 좋게 걸려드는 거다. 하지만 그 남자가 두 잔의 커피를 들고와 여자에게 권하는 장면에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주인공 여자의 당혹함은 이내 옅은 미소로 변하고, 관객들도 그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유로와지려는 순간, 주인공 여자가 자리를 뜨고,  두 잔의 커피와 함께 홀로 남겨진 남자의 표정에서 우리는 그 남자의 실망한 얼굴과 그 남자가 가진 또 다른 고정관념과 선입견을본다.  느슨해졌던 주인공 여자와 관객들의 편견과 선입견은 카페에서 사라진 남자와 주인공 여자의 쇼핑백으로 더 견고해지지만, 그 견고함은 마지막 반전으로 산산 조각이 난다. 적어도 그 순간엔 그래보인다.

영화는 매 순간 매 장면 관객들을 시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편견이, 선입견이 그리고 고정 관념이 우리를 얼마나 옭아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여자가 자신을 실수를 깨닫고 웃음을 터뜨릴때만 해도 관객들은 변화를 기대한다. 주인공 여자의 변화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변화를.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보기좋게 무시당해 버리고, 주인공 여자도 관객들인 우리도 편견과 선입견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30 년전에 만들어진 비교적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오래 전 영화같지 않은 까닭은 이 영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직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The Lunch Date.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아무 거부감없이 기꺼이 걸려든 편견과 선입견의 그물, 그 그물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걸어나올 용기가 있는지를 오늘 이 한 편의 짧은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영화 제목을 클릭하시면 보실수 있어요.  

THE LUNCH 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