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연히 Night Train to Lisbon 이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화라 호기심이 생긴데다 기차라는 소리에 나의 호기심은 배가됐다. 기차에 관한 어릴적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 예닐곱이나 되었을즈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아주, 아주 짧은 기차 여행을 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곳을 구경시켜주신다며, 나를 데리고 기차역으로 향하셨고, 우리는 얼마안있어 기차에 올랐다.
아버지는 맏딸과 둘이서만 나선 나들이 길이 무척 신이나신듯 기차 차창 밖으로 지나는 것들을 이것 저것 보여주시며 열심히 설명을 하시고, 뭐 필요한게 없냐고도 묻고 하신게 아직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난 집에서 점 점 멀어져가는 기차 안에서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엄마와 떨어져 멀리 간다는 생각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 불안함과 두려움에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려 버렸고, 그 기차안에서, 엄마에게 가겠다고 울며불며하는 나를 보고 당황한 아버지는 몇 정거장 가지도 못하고 내려 나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던 내가, 엄마와 떨어져서는 몇 정거장도 못가던 내가, 태평양을 건너와 살다니 참 사람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될지 미리 알고 우리네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가끔씩은 다른 이들의 인생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나의 인생을 성찰할 기회를 얻게된다. Night Train to Lisbon, 이 영화도 그런 이야기다.
스위스 베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라이문드 그레고리우스,
언제나처럼 빈틈없고 틀에 짜여진 일상을 이어가던 라이문드는 비가 오는 어느날 학교로 향하는 길에, 자살을 시도하는 젊은 여자를 구하게되고 이를 계기로, 한 남자와 그의 인생을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된다.
그 여정은 자살을 시도했던 그 젊은 여자가 남기고 사라진 빨간 코트 속에서 발견한 한 권의 작은 책과 그 책 속에서 나온 리스본행 기차표에서 시작된다.
수업 중 사라진 여자,
라이문드는 그 젊은 여자가 남긴 빨간 코트 속에서 발견한 책을 들고 그 책의 출처를 찾기위해 단골서점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서점 주인으로부터,
그 빨간 코트의 주인공이 라이문드가 발견한 책을 읽고있었다는 것과,
그 빨간 코트의 주인공인 젊은 여자가 그 책을 읽고 나서는 몹시 놀라고 당황해하는것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서점주인 이야기에 라이문드의 호기심은 더 깊어지고,
빨간 코트의 주인을 찾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그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짐작조차 못할 일을 감행한다.
그의 일상을 깨어버리는 일,
그건 라이문드 자신조차도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지금껏 자기가 살아왔던 일상의 틀을 과감히 깨고,
수업도 다 미룬채,
그 책갈피에서 나온 리스본 행 기차표를 가지고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안,
거기서 그는 그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데 프라도라는 젊은 포루투갈 의사를 처음 만나게된다.
라이문드의 긴 여정은 기차에서 시작이 된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속에서 그는 아마데우의 글들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게되고,
그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의 이상과,
고뇌, 그리고 사랑을 읽는다.
아마데우의 글에 흠뻑 취한 라이문드는 리스본에 도착한 후 아마데우를 찾아나서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게된다. 아마데우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더 알아보고 다니던 라이문드는 자전거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부러진 안경테를 고치러 간 안경점에서 검안의 마리아나로부터, 그녀의 삼촌이 젊은 시절,
독재자통치 아래의 포루투갈에서 지하조직의 일원이었다것과 그가 아마데우와 지하조직의 리더이던 아마데우의 절친 조지와 가까왔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된다.
마리아나의 삼촌을 찾아간 라이문드는 그로부터,
아마데우가 독재정권아래 어마무시한 수의 사람들을 무차별 고문,
살인한 경찰총장 멘데즈의 생명을,
많은이들의 원망에도불구하고,
의사라는 사명감만으로 구했줘던 일화도 듣게된다.
그리고 조지와 그가 사랑했던 스테파니아,
스테파니아가 사랑했던 아마데우,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베일을 벗는다.
라이문드 여정의 마지막은 스테파니아를 찾아 가는 스페인.
거기서 그는 스테파니아를 만나고 멘데스가 눈에 불을켜고 찾던 그녀가 어떻게 무사히 스페인으로 넘어올수 있었는지,
왜 그녀가 아마데우와 함께하지 못했는지를 듣느다.
라이문드는 아마데우의 책을 스테파니아에게 남기고 돌아선다.
제목에 기차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어도,
제레미 아이언즈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덥썩 손이 가는 영화다.
그가 나온 영화들을 다 봤다면 거짓말이지만,
영화 단 몇 편으로도 그 진가를 발휘하는 몇 안되는 배우라 생각하기에 그야말로 믿고보는 배우중 하나이기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스위스 시계에 버금가리만큼 정확하고 틀에 박힌 일상을 사는 중년의 남자를 보란듯이 연기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곳에서 그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낸 젊은이들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 깊숙한 곳의 또다른 자신과 대면하며 당황하는 남자를 때로는 덤덤히 떄로는 드라마틱하게 스크린에 채운다.
그런 제레미 아니 라이문드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라이문드에 투영된 자신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게된다.
갑자기 우리네 삶에 물음표가 여러개 달라붙는거 같다.
이 영화가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유럽의 작은 나라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부연 설명없이 이해가 됐던 이유는 70년대의 포루투갈이 한국의 70년대와 참 많이 닮아있고,
그 시대를 살아낸 그 곳 젊은이들의 삶이 한국의 70년대를 살아낸 지금은 기성세대라 불리는 우리의 선배들의 삶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었다.
독재에 맞서 살아낸 그들의 열정과 용기 그리고 희망,
그 와중에도 잃지 않았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자세,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빛나던 그들의 우정과 그리고 사랑.
아마데우는 이 모든걸 한 권의 작은 책에 담아내고,
그 책은 우연인듯 필연인듯 라이문드를 찾아오게된것이다.
리스본행 기차에 오르면서 시작된 라이문드의 여정은 아마데우가 쓴 책을 통해 그와 소통하는 동안 계속되고,
스테파니아에게 아마데우의 책을 남기며 돌아서는걸로 끝을 맺는듯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라이문드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를 남겨놓는다.
스위스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나온 라이문드,
그 의 옆에는 그의 여정에 알게 모르게 동반자가 되어있던 검안의 마리아나가 서있고,
기차에 오르기 직전,
그녀가 라이문드에 묻는다.
아마데우가 그 여정의 시작에 라이문드에게 물었듯이. 라이문드의 대답을 관객들은 들을수 없다.
하지만, 감독은 마리아나를 통해 라이문드가 아닌 우리에게 묻는거 같다.
영화가 진행되며 우리네 삶에 붙어버렸던 여러개의 물음표들, 그 물음표들에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야할 차례라는 둣이말이다.
기차,
그 한 단어에 혹해,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한 영화.
그 단순하고 가볍던 호기심은 단 번에 감당하기 쉽지않은 내 삶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 속 장면들과 내가 살아온 인생이 눈 앞에 퍼즐조각처럼 떠다니던 영화.
미씨 회원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이 영화,
추천하신 분께 감사하다.
제레미 아이언즈를 좋아하신다면,
아니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라고 감히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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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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