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말, 전 세계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두려움과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하던 그때, 

지금은 남편인 당시 남자친구와 나는 호텔예약도 없이 새로운 세기를 베가스에서 맞으리라 외치며 차에 올랐다.

새 밀레니엄이 주는 설렘이 그만큼 컷던 탓이었을까 아님 소위 말하는 'Sin City' 베가스로 향한다는 흥분에 겨워서였을까?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무모하고 철딱서니없던 시절, 20년전 이야기다.

 

미국에 온지 3년, 아직은 모든게 신기하고, 새롭고, 낯설던 시절,

우리는 털털거리는 차에 올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엘에이를 지나고 베가스로 향했다.

Welcome to Nevada 사인을 보고 주 경계를 넘었다는 사실에 흥분해 사진을 찍고,

또 그렇게 얼마를 달려 도착한 라스 베가스, 그 곳은 듣던대로 별천지였다. 더구나 그 시기가 세기말이었으니...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거리며, 술집들, 그리고 식당들

사람들은 마치 오늘만 살것인양 먹고 마시고 떠들고, 그리고 거리를 배회했다. 

우리도 질세라 그 무리속으로 빠져들어 이내 그들과 하나가됐다.

21세기가 다가오는 밤 11시를 지나 자정이 가까와지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고

노래도 부르고, 환호도 하면서 다가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 희미한 기억이지만, 우리가 있어던 곳은 Paris 호텔 근처였던거 같다.

그렇게 다가온 새해를 흥분속에 보내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보이는건 거리에 쌓인 술병들, 쓰레기더미들과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후 영혼없이 서 있는 건물들 사이로 황량한 바람만이 불고 있는 겨울 사막이었다.

 

그리고 불현듯 기억이 난거다. 우리가 잘 곳이 없다는거.

그 많은 호텔중에 우리가 갈 곳이 없으랴싶어 가서 알아보자 하고 왔는데

노느라 정신이 팔려 호텔은 생각지도 못한거다.

기억에는 그 새벽에 호텔 여러군데를 다니며 알아본 것도 같다.

다녀본 몇몇 호텔엔 아예 방조차 없었고, 그나마 남은 방이 있었던 호텔은 당시 우리 주머니 사정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가격을 부르는 까닭에 우리는 도저히 하룻밤 묵을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갑지기 처한 황당함에 그저 웃지요 상태로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던 우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리 차, 차가 있잖아!"

 

우린 차를 끌고 CircusCircus 호텔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날밤을 차 안에서 보냈다.

새벽녁에 추우면 잠시 히터를 틀어 몸을 데우고 또 자고, 가져간 담요로 몸을 감싼채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우리는 베가스를 떠나왔다.

 

그리고 베가스는 우리 기억에서 지워졌다.

늘 생각은 있지만 단 한번도 다시 가보자하지 않았던 곳.

엘에이로 이사를 온 후에도 단 한번도 우리 여행계획에 들어오지 않았던 베가스를

남편이 가보자한다. 그래서 또 다시 차에 올랐다.

가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는 묻는다. 베가스가면 뭐 할거냐고.

'뭐하긴, 먹고 마시고 돈 잃겠지'

 

21세기 문턱을 넘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 나서야 다시 오게된 베가스는 20여년전과 많이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여전히 먹고 마시고 떠든다. 거리도 식당들도 술집들도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슬롯머신앞에서 어쩔줄몰라하며 서있는 우리는 그때와는 또다른 별천지에 얼이 빠져버렸다.

크고 화려한 호텔방도 뭔가 불편하고 로비에서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도 내가 보던 익숙하던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 혼자 덩그마니 마치 영화속에서 보았던거 같은 그림이 스친다.

나, 여기서 뭐하는거지 지금?

 

추억여행이라도 해보자싶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우리가 갔던 곳들을 가보기로했다.

우리의 하룻밤 거리 호텔이었던 CircusCircus 호텔 주차장도 찾아갔었다.  그런데 그 곳이 흔적도 없다. 우리가 잘못 찾아왔나 싶어 몇 번을 돌아봤지만, 우리가 차 안에서 21세기 새 해 첫날을 맞이한 그 곳은 이미 없어져버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그림을 기대했던 우리가 잘못이겠지.

 

소비와 배설의 도시

라스 베가스는 그런곳이다. 적어도 내게는.

담아오는 곳이 아닌 뱉어내고 쏟아내고 오는곳

그래서 돌아오고나면 추억할 게 없다.

과거로의 기억 여행조차도 허락이 안되는 곳

 

인간의 욕심이, 욕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리 공룡 라스 베가스

그 곳으로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뒤돌아 비열하게 웃고 있을 '그들'의 얼굴이 보이는거 같아 불편하다.

 

베가스,

영혼없는 얼굴로 그 빈 껍데기로 나를 맞이하는 너를 보러

내가 다시 올 일이 있을까?

 

돌아오는 차 안, 베가스는 이제 그만 와도 되겠어라고 흘리는 내게 남편이 답한다.

'난 서커스쇼 보러 다시 오고싶은데?!'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더니, 역시, 남의 편인가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