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심리학자가 쓴 글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한 두번은 거짓말을 한다고한다. 그 학자의 말을 빌리면, 이 세상에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단다. 나이, 성별, 직업, 지위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허구한 날 거짓말을 한다는거다. 뭐 그닥 놀랄만한 연구결과는 아니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지않아도 뜨끔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하루에 한 두번 거짓말을 한다는 건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거짓말에 매일 속고 산다는 소리기도 하다.  그 이는 또 많은 이들이 거짓말을 하지만, 대부분의 거짓말은 다른 이들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가 되지않는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해도 상대방에게 해가 되지않는다면, 거짓말을 하는 나는 도덕과 윤리의 테두리안에서 자유로울수 있는걸까?  그 거짓말이 진실이 가져올 수있는 파장을 덮을 수 있다면, 나보다는 상대방을 그리고 가족을 위한 것이었을땐 어떨까?

남에게 해가 되지않는 거짓말, 오히려 거짓말만이 누군가를 보호한다고 믿는 가족들과 도무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 빌리의 이야기 “The Farewell”. 오늘은 이 영화 속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미국에 여섯 살에 이민와서 뉴욕에 살고있는 빌리.  빌리는 거의 매일 할머니와 통화를 한다. 할머니의 빌리에 대한 사랑이 큰만큼 빌리 또한 할머니를 무척 사랑하고 따른다. 할머니는 빌리가 행복할때도 어려울때도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어느날 빌리는 그런 할머니가 폐암 4기로 앞으로 살 날이 3 개월 남짓하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듣게된다.

빌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지만,  할머니에게 이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빌리의 부모님은 빌리와는 생각이 다르다. 할머니도 진실을 알아야 하는거 아니냐는 빌리의 말에 빌리의 엄마는 암에 걸린 사람들을 죽이는건 암이 아니고 두려움이라고 말하며 빌리의 말을 일축해버린다. 그리고는 의아해하는 빌리에게, 빌리의 부모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 즉 빌리의 고모와 삼촌들은  할머니에게 진실을 알리는 대신, 빌리의 사촌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거짓을 꾸며 할머니가 살고계신 중국에서 다같이 만나기로 했다고 전한다.  물론 진짜 목적은 할머니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빌리는 자신도 할머니를 보러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빌리의 부모는 속 감정을 쉽게 감추지 못하는 빌리에게 뉴욕에 남아 있을것을 종용하고 중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빌리도 곧 그들의 뒤를 따라 중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방에 흩어져 살다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위해 다같이 모인 가족들, 삼촌, 고모, 사촌들, 이모 할머니, 그리고 그리운 할머니. 빌리는 터지는 울음을 집어 삼키며 할머니와의 하루하루를 버틴다.  자신의 병은 모른체 오랜만에 다같이 모인 가족들이 반갑기만 한 할머니는 손주 결혼식에 혼신의 힘을 쏟고,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빌리는 갈등한다. 하지만 빌리의 부모처럼 삼촌도 고모도 진실보다는 거짓이 할머니를 위하는 길이라면 빌리를 설득한다. 빌리의 갈등과 가족들의 철처한 은막 작전 속에 예정된대로 성대한 결혼식과 피로연이 진행되고 가족들은 할머니와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성대한 결혼식을 가장해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마친 빌리의 가족들과 친척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집으로 가기 전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마주한 빌리도 많은 말을 삼킨채 할머니의 건강과 안부만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오른다.  택시 안, 빌리는 멀어져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못내 아쉬운 작별인사를 고한다.

영화자체는 평범하다.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듯, 특별한 것도 딱히 꾸민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시끌벅적한 우리 이웃같은 사람들이 그들 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는 모습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적절하고도 “옳은” 방법으로 어머니이고 할머니이고 또 언니이기도 한 빌리의 할머니를 보호한다.  선의의 거짓말, 한 사람을 위해 모두가 짊어지기로 한 고통과 책임, 그로 인해 그 한 사람, 할머니는 행복하다. 가족들이 모여 행복하고, 손주의 결혼식을 당신이 계획한 대로 성대히 치룰수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빌리는 의문한다. 누구를 위한 거짓인가? 왜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걸까?

할머니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할머니에게도 죽기전에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를 주는게 맞지 않냐고 묻는 빌리에게 빌리의 삼촌은 개인의 인생이 철저히 개인 한사람의 것이라고 믿는 서구사회와는 과 달리 동양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가족의 일부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가족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할머니자신도 이런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그들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빌리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저 할머니를 속이는 거짓에 지나지 않아보인다.

한 티비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 Lulu Wang 은 이 영화가 실제로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라고 밝힌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할머니 본인에게 알리기 두려워해 영화속 빌리의 가족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되는 자신의 가족과 그 가족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감독은 자신의 뿌리가 있는 그 곳, 집단주의 사회인 중국에서는 공동체가 개인보다 우선하고, 보다 더 큰 집단 즉 가족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거짓말은 자연스러우며, 이런 사고방식이 생각보다 여러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개인주의 사회인 이 미국에서는 어떨까?

어려서 미국에 이민와서 자란 주인공 빌리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한 가족들을 보면서 갈등한다. 가족보다는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어야한다고 믿는 주인공 빌리와 가족이 먼저라고 밀어부치는 가족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빌리는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 질문하고 할머니의 알 권리에 대해 자문해보지만, 답을 얻지는 못한다. 진실을 알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가야하는 할머니, 할머니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지키기위해 가족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짓말. 과연 가족들은 할머니를 위해 옳은 결정을 한 것일까?

피노키오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설사 피노키오가 어떤 스토리인지를 몰라도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때마다  늘어나는 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다.  피노키오의 코가 왜 늘어나는지 알던 모르던간에, 우리는 거짓말은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배웠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또 그렇게 다음세대들을 가르치면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려고,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용기를 심어주려고 본의 아닌 “선의”의 거짓말들을 한다. 때론 살짝 죄책감을 느끼며 때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조차 않으면서 말이다.  친구를, 직장 동료를 , 남편과 아내를,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내 아이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우리가 날마다 하고있는 선의의 거짓말. 과연 어디까지 용납이 되는걸까?

빌리의 가족이 할머니에게 한 거짓말도 선의의 거짓말이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에게 진실을 가린채 손주의 결혼을 거짓으로 꾸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 일은 단순한 거짓말 그 이상이다. 아픈 할머니가 홀로 느껴야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가족 모두가 대신 짊어지기로 한 결정, 그것은 한 사람을 속이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선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이며 연결고리다. 빌리가 가족들의 결정을 이해할수 없었던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일거다. 개인주의 사회 속에서 자란 빌리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가족전체가 결정하며, 어떻게 개인의 알 권리가 보호라는 이름 하에 너무나도 정당하게 박탈되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 일것이다. 빌리와 가족간에 생기는 생각의 차이는 개인의 자유와 진실이 갖는 가치와 그 무게에 있다. 빌리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진실이 거짓을 앞서고, 할머니와 그 가족들은 빌리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진실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외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 고통은 고스란히 할머니 혼자의 몫이된다는 믿는 가족들. 그래서 그들은 거짓을 택한다. 거짓이 진실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다. 

어떤 이들은 진실보다 거짓이 나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로 이어지고, 진실이 밝혀졌을때의 고통은 거짓으로 가려진 진실보다 더 깊고 아프다는 이유로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은 용서될수 없다고도 말한다. 어느 한 편을 들어 그래 니 말이맞다 하기가 어렵다. 세상에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듯 우리네 삶도 옳고 그름의 잣대만 가지고 보기에는 석연치않은 일들이 많기때문이다. 하지만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남에게 해가 되는 거짓말을 밥 먹듯하는 사람들을 TV로 연일 보면서 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 이 세상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나 싶어 회의가 들고, 그래서 거짓말이 더 더욱이 치가 떨리도록 싫고,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이고 따뜻하지 못했던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아 어쩌면, 때로는 거짓이 진실 못지않게 진정성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하고 느꼈다면 너무 감상적인걸까?    

왕 감독은 2013 년 암 선고를 받았던 할머니는 아직도 살아계시고 이 영화 덕분에 할머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되었지만, 감독 자신은 중국에서 영화가 개봉된 후 아직 할머니를 뵙지 못해 할머니가 영화에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할머니가 홀로 감당해야했던  고통과 짐을 기꺼이 나누기위해 거짓말을 선택했던 가족들, 개인보다는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 할머니를 보호하려했던 그들의 거짓을 할머니가 기꺼이 이해해 주셨길 바란다.